엉킨 고백ㅡ1
자꾸만 잊어버린다. 본질이 변하는 건 언제나 너무 쉬운 일이었다. 그건 정말 쉬운 일이라 쉬운 일이라는 것도, 잊어버렸다는 사실조차도 잊어버리곤 해서, 어느새 내 이름은 희미해지고 내 몸은 낯선 몸이 되어 나는 나를 잃어버린다. 그렇게 남의 말을 빌리고 남의 소망을 빌리고, 그럼 내 목소리는 도대체 누가 듣고 있는 거지.
모르겠다.
나는 당장 오늘도 몇 시에 뭘 했는지 또 뭘 먹었는지 천천히 되짚어봐야지만 알 수 있었다. 모든 말에 무표정으로 일관해도 별 말하지 않는 엄마가, 먹지 않는 밥을 억지로 권하며 화를 내는 아빠가, 괜히 농담을 건네는 오빠가 미웠다. 나는 내 의지인지도 모르면서 계속 도망가고 숨는데, 모든 것은 그대로 있었다. 치사했다. 그대로 있는 것들이 치사하다는 건지, 그대로 보지 못하는 내가 치사하다는 건지 알지도 못한 채 나는 치사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게 취미라지만, 이건 페이도 관객도 주최사도 없는 일인극이라는 생각에 괜히 비식거리고는 또
자꾸만 잊어버린다. 나는 이미 바다에 있으면서도 이곳은 물이라며 바다가 어디 있는지를 찾던 어린 물고기 이야기를 떠올렸다. 계속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거부했던 나의 무던한 노력들은, 바다에 가기 위함이 아닌 바다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나. 그러나 사실은 겨우 이런 것이 바다였나. 이렇게 볼품없고 약하기만 한 것이. 나는 바다를 아무도 모르게 물로 이름 지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모두를 속이고 싶었다. 여기는 바다가 아니에요, 나는 물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뿐이랍니다. 나는 자꾸만 잊어버리니까, 내가 알고 있었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내 다리를 베개 삼아 무해한 얼굴로 잠을 자는 내 고양이 깜지를 보는 날이면 겨우 이런 바다가 물이 되기엔 내 마음을 일렁이게 하는 것들이 꽤 많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깜지가 너무 좋고 귀엽다. 풀이 좋고 나무가 좋고 꽃도 좋다. 하늘을 보며 구름을 따라가고 시간의 이름을 정하는 것. 달과 별. 계절 냄새. 눈이 좋고 비가 좋다. 장화와 우비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직은 없다.
고유명사. 사람들의 이름이 좋다. 잠옷이 좋다. 꽃무늬 자수가 박힌 할머니 원피스가 좋다. 맨발이 좋다. 쪼그려 앉는 게 편하고 아빠 다리 하는 게 좋다. 노래 부르는 게 좋다. 피아노와 기타, 책.
그건 저항할 수 없는 행복이었고, 언제나 사랑스러운 것들이었고, 그런데 배은망덕하게도, 나는 내 바다를 자꾸만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주제에 치사해했다니, 진짜 치사한 게 누군데. 나는 이렇게나 소중한 것들을 지키지 못하는 내가 너무 무섭고 비겁해서 엉엉 울다가도 웃었고, 웃다가도 울었다. 언제 그 누가 내 색은 노란색이라고 이야기했던 것도 잊어버리고는, 나는 무엇이 되려 하고 있는 걸까
자꾸만 잊어버린다. 그래서 계속 바다를 쓴다. 자꾸만 잊어버려서, 그래서 매일 다른 방법으로 글씨를 쓴다. 아무런 규칙도 인과관계도 없이 쓴다. 후에 껍데기뿐인 글이 되어 나를 쓸쓸하게 할지라도 나는 지금이 몇 시인지도 모르는 사랑할 수 없는 시간 속에 살아서, 지금 바다가 말하는 대로, 두서없는 파도소리를 잔뜩 써 내려간다.
2021.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