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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Nov 13. 2024

부디, 살펴가세요.

후방주의.

전방주의.

좌우를 살피시오.


집안 구석구석 어딜 봐도 그의 물건이 남아있다. 책이, 컴퓨터가, 필기구가 손에, 발에 채인다. 연인에서 배우자로 내 옆자리를 지키면서 나를 가장 잘 알던 사람이 내 곁을 떠났다. 그가 우리집을 떠난 지 3개월이 다 되어간다. 우리 사이에 사형선고를 내린 지도 벌써 100일이 넘었다. 가족관계에서 떨어져 나간 그가 진짜 남이 되었는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 정부24 웹사이트에서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해볼까 싶지만 딱히 선뜻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엑스(구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은 스스럼없이 로그인하면서 왠지 민원서비스 탭은 클릭하기가 꺼려진다. 몇 해 전 구청에서 혼인신고를 하고 나서 부부라는 이름이 붙은 우리 사이를 확인하기 위해 기쁨에 벅차올라 바로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았었는데, 우리가 둘로 갈라진 이후로는 우리가 함께 한 세월만큼 낡은 마우스 커서를 이리저리 옮기며 정부24 메인 화면을 서성인다.


우리의 헤어짐을 눈치채기 전에 그에게 간간이 나의 꿈을 꺼낸 적이 있다. 혼자서 뭐라도 판을 짜보고 싶다며 콘텐츠 사업을 하고 싶다는 꿈을 밝혔더니 그는 뭐라도 해보라고 자신감을 실어주었다. 내가 꿈꾸는 건 뭐든 해보라며 등 떠밀어주는 지원군이었기에 내가 소파에 앉아 현실감 없는 순진한 생각을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도 그는 대부분 이렇게 말한다. “하고 싶으면 해 봐. 내가 네 나이라면 뭐든 하고 말겠어.” 그는 나보다 5살이 많던 사람이라 ‘내가 너라면’이라는 가정법을 종종 사용하곤 했다. 그러던 그가 우리집에서 다른 집을 찾아 떠나가는 마당에 이렇게 말한다. ”그럼 잘됐네. 우리 이혼하니까 이혼을 콘텐츠로 내봐. 너 글도 쓰고 싶고, 팟캐스트도 진행하고 싶고, 유튜브도 하고 싶다매. 이혼 콘텐츠가 넘쳐나는 세상에 너도 한몫 챙겨. “ 물론 이 문장엔 내가 편집한 과장과 허풍이 깃들어 있다. 하지만 그가 홧김에 뱉었던 “이혼을 콘텐츠로 내봐.”라는 단어의 조합은 진짜다. 그의 말에 자극받아 올여름 우리 사이에 횡행한 어지러운 일들을 이야기로 엮었더니 벌써 몇 편의 글이 나왔다. 브런치에 연재하는 글이 금전적인 이득으로 이어질지 미지수지만 어쨌든 그의 말을 동기부여 삼아 용심이 나서 그간 미뤄왔던 서사를 되새김질하며 응축된 감정을 백지에 쏟아내고 있다.


그는 짐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누구한테 쫓기듯이 허겁지겁 떠났다. 평소에 정리와 거리가 멀었던 그는 옷장을 열어 최소한의 옷을 챙기고, 신발장을 열어 내가 사준 호카 운동화와 자기가 고른 아디다스 운동화를 챙긴다. 거실 한가운데에 캐리어를 펼치곤 가방 속 제한된 공간 속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물건을 넣을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고 있다. 더 챙길 건 없는지, 덜 챙겨도 되는 건 무엇인지 생각을 골똘히 하더니 몇 번을 더 분주하게 움직이다 땀을 뻘뻘 흘린다. 그리고 정적이 흐른다. 마침내 그가 현관문 쪽으로 향한다. 회사동료가 선물로 준 멋들어진 광채가 나는 백팩, 인터넷에서 주문했다던 명랑함이 돋보이는 노란색 캐리어, 그리고 천가방을 멘 그가 그날따라 다른 사람처럼 보여 흠칫 놀란다. 업무 특성상 출장이 잦았던 그여서 배웅이 익숙했는데, 이젠 그가 이 문밖을 나서면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받아들이기 버겁다. 휘몰아치는 감정에 치우치는 사이에 그는 벌써 드르륵 무빙워크를 타고 나아가듯 서서히 그리고 아스라이 멀어져 간다. 그는 나를, 이 동네를, 서울을, 한시라도 빨리 뜨고 싶었던 사람이기에 나에게 모든 뒷정리를 맡긴 채 떠난다. 그의 뒷모습이 얄밉다가도 짜증이 났다가 울분이 치밀어 오른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죽은 자는 말이 없듯이, 떠난 자는 눈과 귀와 입을 닫는다. 그리하여 뒷정리는 철저히 내 몫이다. 여태껏 그와 살면서 그의 뒤치다꺼리를 했는데 내가 그의 가족도 뭣도 아닌 다음에도 그는 굳이 제 몫을 나에게 지운다. 양심도 없나? 아, 이건 질문이 아니다. 그래, 그는 양심이 없다. 신이 있다면 이 사실만큼은 내 편을 들어주지 않을까? 내 팔자려니, 내 운명이려니 하며 억지로 체념한 채 그가 없는 거실 구석에서 그의 물건을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한다.


그의 물건이 내 물건이 되고 우리 물건으로 변모하는 사이에 물건들은 주인 따라 떠나지 않고 내 곁을 지킨다. 가장 치우기 곤란한 건 우리가 결혼식을 올리기 전 야외 스튜디오에서 찍었던 사진이다. 배꼽 높이만 한 액자에 고정된 사진 속 우리는 2024년 여름에 일어날 일은 꿈에도 모른 체 사진기사의 손짓에 따라, 웨딩플래너의 환호에 부응하며, 한껏 행복에 젖은 얼굴로 카메라를 향해 웃고 있다. 우리가 같이 찍은 수많은 사진 중 단연코 최고의 사진이라 꼽는데 이견이 없을 텐데 공교롭게도 이 스튜디오 촬영날이 이맘때쯤인 것 같다. 둘 다 유난히 잘 나온 사진이라 폐기처분하기란 쉽지 않다. 누군가는 네가 버젓이 잘 나왔으니 그가 나온 부분만 찢어버리라고 한다. 누군가는 미련을 버리고 냅다 갖다 버리라고 한다. 누군가는 같이 불태워주겠다고 한다. 누군가는 파쇄해버리라 한다. 누군가는 그래, 버리기 어렵겠네… 한다. 그의 물건 중 쓸모없어 보이는 것부터 쓰레기통으로 직행했기에 많은 물건을 집밖으로 버렸지만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젊은 날의 순간을 담은 사진은 얼룩진 전신거울 뒤에 자리 잡고 있다. 그는 n 년 전 나를 떨리게 했던 보조개 패인 미소로 사진 속에 남아 내 옆자리를 독차지하고 있다. 물론 뒤집어진 채 말이다. 그와의 첫 만남은 오래전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며칠 전처럼 느껴진다. 그와 살면서 최선을 다하면 죽겠다는 생각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다짐은 허울 좋은 다짐일 뿐 언제나 그랬듯이 사랑하는 이에게 최선에 최선을 다했고 종국에는 최선의 최대치를 발휘하여 그를 붙잡았다. 애석하게도 그는 이별에 단호함을 보였고 지금, 여기, 나만 덩그러니 남아 빈 집을 독식하고 있다. 집안 곳곳에 촘촘히 새겨진 그의 흔적을 퍼내기 시작한다. 묵은 먼지를 털고 찐득한 이물질을 제거하며 수련하는 자세를 취한 뒤 그를 떼어내기로 결심한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깔깔대던 우리는 과거 속에 넣어두고 그저 일장춘몽이었다고 생각하며 그의 물건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그의 안녕을 바래본다. 부디, 살펴가세요.



들리는 에세이: 프롤로그

가수: 김윤아

노래: Going Home

https://youtu.be/gR4_uoJdOr0?feature=sh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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