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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PLAN Jul 28. 2021

불편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보플로리스트의 친환경 꽃놀이

  몇 주전 카톡으로 꽃 얘기를 하던 중 '아이 럽 수국'이라는 글을 남긴 동생을 위해 생일 축하 꽃으로 몽글몽글 수국 딱 세 송이만 사다 줄 생각으로 이른 아침 양재 꽃시장으로 출발한다. 짧은 시간에 꽃 쇼핑을 끝내려고 후다닥  한 바퀴 돌아 눈에 들어오는 꽃을 사 차 트렁크에 싣고 보니 보랏빛 강한 큰 몸집의 수국 두 송이에 화이트 과꽃, 소국 두 종류, 보라 아게라텀까지 꽤 다양해져 꽃다발에서 꽃바구니로 계획을 수정한다.

  집에 돌아와 얼음 동동 띄운 아아 먼저 벌컥벌컥 마시고 싶지만 내 목마름보다는 이쁜 꽃들의 목마름이 더 안타까워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제일 먼저 물통에 물을 반쯤 채우고 사온 꽃들을 펼쳐 놓고 컨디셔 님을 해 물통에 가지런히 담는다.

 투명 화병에 담긴 오늘의 메인, 수국. 이렇게 이쁘게 빛나는 수국을 빡빡한 플로랄폼 속에 꽃아 두기에는 날은 너무 덥고 특히, 물을 매우 좋아하는 꽃인 게 마음에 걸려 커다랗고 깊은 바구니를 놓고 '플로랄폼 대신 물통에 꽃아 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통꽃이는

이동 중 물이 출렁거려 넘칠 수 있어.

물통을 바구니에 넣으면 물을 갈아주기가 어렵잖아.

폼에 고정되는 것이 아니어서 원하는 대로 꽃을 꽂을 수가 없어.

그리고 폼 꽃이 보다 다양하고 예쁘게 꽃을 수가 없어.


참 불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구니에 맞는 플라스틱 빈 통을 찾아 바구니 가운데 넣고, 신문지 구깃구깃하여 물통이 움직이지 않게 고정한 후 물통 안에 재사용이 가능한 치킨 망을 넣고 물을 채워 넣으니 쉽게 분해되지 않는 플로랄 폼 사용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며 기분이 훨씬 가벼워진다. 이쁜 꽃들은 맑은 물 맘껏 먹을 수 있고 나는 친환경적인 꽃놀이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흐뭇해지기까지 한다. 오밀조밀 치킨망안에 모아진 꽃들이 서로 지탱하며 어우러진 멋진 생일 축하 꽃바구니를 등받이 곧게 세운 자동차 옆좌석에 놓고 바구니 쪽으로 안전벨트를 채워주니 이동에 크게 문제가 없다.

  뜨거운 한낮 직장으로의 깜짝 꽃배달에 놀란 동생은 한 송이도 아닌 두 송이의 수국에, 바구니 속 물통에 놀라며 물통 물 갈아주는 방법을 주의 깊게 듣는다.



  꽃바구니에 쓰고 남은 꽃들 중 긴 가지의 꽃들을 골라 찐 핑크 소국을 메인으로 엄마에게 드릴 작은 꽃다발 준비 중 얼마 전 구매해둔 종이 포장지가 눈에 들어와 또 고민에 빠진다.


비닐포장지가 포장하기가 쉬운데

쉽게 구겨지고 물에 젖을 수도 있는데

두꺼운 종이 포장지는 비싸서 아껴 써야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스럭 부스럭 소리 나는 얇은 종이 포장지 쭈욱 잘라 둘둘 말아 엄마 꽃다발 하나, 미니 꽃다발도 하나 만드니 꽃놀이하는 맘이 편해진다.



  길이가 짧은 꽃들을 모아 담은 투명 화병 속 물이 폭염에 한나절만에 탁하게 변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작은 바구니 두 개 찾아 각각에 맞는 작은 물통 넣고 골고루 섞어 꽃아 냉장고 한쪽을 비우고 넣어두었다가 바구니 하나는 다음날 친구에게 '오다가 주웠어' 느낌으로 전해주고 아주 작은 라탄 바구니는 나를 위해 남겨둔다.

 그리고 저녁 무렵 냉장고에 넣고 아침에 꺼내 테이블에 놓는 번거로운 일을 며칠 반복하고 있지만 사 온 지 6일이 되어가는 작은 꽃들과 싱그러운 초록이들 덕에 조금은 시원한 기분으로 여름 아침을 맞이 한다.


이쁜 꽃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불편하고 번거롭고 귀찮은 일들을 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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