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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싸이피 Oct 02. 2021

제발 참견 좀 하지 맙시다: 마이크로매니지먼트의 부작용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직장문화 (4)

회사를 그만두는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보유하고 있던 주식이나 가상화폐가 대박을 난 것이 아니라면 그 가지각색의 이유는 보통 '사람 문제'로 귀결된다. 특히 상사와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윗선에서 비전을 제시해주지 못하거나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느껴질 때, 그들과 업무를 진행함에 있어서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사람들은 떠난다.


관리자나 그 위의 임원까지 올라간 사람이라면 조직 내 성공경험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다 보면 자신감이 생긴다. 자신의 뜻대로 따라오지 못하고, 실수하는 직원에 대한 불신이 생기면서 심지어는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무능력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짧은 인생을 살아온, 경험이 부족한 나조차도 이런 생각을 살아오면서 몇 번 했던 것 같다). 자신이 옳고 뛰어나다고 생각하면 모든 일의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챙기는 마이크로 매니지먼트(micro management)를 하게 된다.


리더가 마이크로 매니지먼트를 하게 되면 실수가 줄고 사고 발생 확률을 급격히 낮출 수 있다. 다만 그 리더는 조직의 비전이 아닌 실무에 집착하게 됨으로써 리더가 아닌 실무자의 역할에 많은 비중을 두게 되고 조직에게 중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리더가 업무의 세세한 것에 참견하게 되면, 즉 마이크로 매니지먼트를 하면 아래와 같은 부작용들이 나타난다.


1. 실무자의 책임감이 저하된다.

우리가 직장을 다니면서 얻을 수 있는 행복 중 하나는 성취감이다. 내 일을 진행하고 진척되는 상황을 보면서 느낄 수 있는 성취감은 일을 게임처럼 재밌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기획한 상품에 대해 리더가 토씨 하나까지 일일이 간섭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나의 일이 아니다. 내 생각대로 기획을 해도 어차피 리더 마음대로 수정이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결국 책임감을 잃게 된다. 영혼 없이 그저 리더의 말을 받아 적는 로봇이 될 뿐이다.


마이크로 매니지먼트로 관리되는 팀원들은 점점 시키는 대로만 하게 됩니다. 일이 잘못 굴러간다고 느껴도 그대로 놔둘 겁니다. 자기 책임 아니고, 나를 힘들게 하는 상사의 책임이니까요. 다른 의견을 냈다가는 잔말 말고 시킨 대로 하라는 핀잔만 돌아오거나 보람 없이 일만 늘어날 뿐이니까요.
- 197~198p <마케터의 일>


2. 일 자체가 망가진다.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지금의 대학생들도 중고등학생의 문화를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그 어느 때보다도 변화의 속도가 빠르다고 느껴지는 시대다. 소비자가 좋아할 수 있는 상품을 적시에 내기 위해서는 트렌드를 공부하고 체험해야 한다. 경험 있는 리더의 직감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이러한 트렌드를 다 알 수는 없다. 20대 젊은 여성을 위한 제품을 50~60대 아저씨가 얼마나 잘 기획할 수 있을까. 바이럴 마케팅 목적으로 10대를 위한 이벤트를 기획하는데 담당 임원이 문안이나 디자인 하나하나 깊숙이 관여한다면 결과물은 불 보듯 뻔하다. 많은 기업에서 그저 유행하는 말 하나 붙여서 어설픈 콘텐츠를 양산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안타깝다. 리더가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고 그럴 필요는 없다.


많은 리더들이 여전히 '마이크로 매니지먼트' 하는  자신의 귀중한 시간을 쓰고 있습니다. 마이크로 매니지먼트,  시시콜콜한 사안들에 일일이 하는 리더들은 대개 자신이 모든 사안을 통제하고 결정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부서가 늘어나거나 지시하는 일이 많아지면 아무래도 잊어버리거나 번복하는 일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직원들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처음과 나중의 지시가 다르고, 뭔가 일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지하더라도 상사와 부딪히는 것이 싫어서 혹은 혼자 힘으로 해결해보려고 하다가 즉시 보고하지 않아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초기에 완치될  있는 병을 키우다가 4, 말기가 되어서 병원을 찾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 87~88p <초격차: 리더의 질문>


3. 직원들을 키울 수 없다.

특정 사람 밑에서 일을 하는 것과 그 일의 책임자가 되어 일을 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돌이켜보면 신입사원임에도 스스로 책임져야 할 일이 많았기에 고민을 거듭하며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부담스럽기는 해도 책임을 갖는 것은 생각을 하며 일을 해야 하는 세계에 들어온 것이다. 기획자나 마케터가 '일'을 한다는 것은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마이크로 매니지먼트는 직원들의 생각을 존중하지 못하는 방식이며 생각 없는 직원들을 양산한다. 결국 직원들은 성장할 수 없고 성장을 위해 떠나기도 한다.


큰 결정만 하고, 일의 목표에 맞게 제대로 가고 있는지 가끔 확인하고, 목표에 맞는 적절한 리소스를 결정하는 일만 하고, 나머지 작은 결정은 함부로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의견을 구할 때에만 '이건 그냥 내 의견' 정도로 말하려고요. 작은 결정도 조직장이 다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기면 팀원들이 스스로 생각을 못하게 됩니다. 결정할 수 있어야 더 많이 생각합니다. - 195~196p <마케터의 일>



4. 팀이 번아웃된다.

모든 것을 결정하는 상사 밑에서 팀원들은 어떻게 일할까? 스스로 성장하는 재미를 느끼면서 자기 일에 열정을 갖고 임할까?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사람은 그 어떤 일도 재밌게 할 수 없다. 거래처와 미팅을 하면서 아쉬운 점 중에 하나는 별 것 아닌 일도 그 자리에서 내가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소한 결정까지 다 보고가 필요하기 때문에 결정을 미루고, 그러다 보면 일이 속도를 내지 못한다. 결정해야 할 일은 점점 쌓이고 결정을 위해 작성해야 할 보고자료를 만드는 데 또 다른 시간을 써야 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일은 일대로 하고 그 어떤 재미도 느끼지 못하면서 팀은 번아웃된다.




물론 큰 조직의 리더에 자리에 가보지 않았기에 그들의 사정을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좋은 리더와 실제 리더들의 모습이 많이 달라 현실에 크게 실망해온 것은 사실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리더는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다. 조금 두렵더라도 실무는 과감하게 위임하되 결과물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피드백을 줄 수 있는 리더다. 답을 내부에서 찾지 말고 고객에게서 찾는 리더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리더다.


영화 <위플래쉬>, 2015, 하나하나 다 따지면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온 직원들인 만큼, 과감하게 책임을 부여하자. 사소한 것에 대해서는 제발 참견하지 말아달라. 그건 당신의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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