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도락 여행 - 3
현지의 사정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일명, 관광객 바가지 씌우기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여행하는 곳들을 다 살아보며 경험해 본 것이 아니기에 가끔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바가지를 피하기 위해서 미리 사전 조사 및 적당한 가격 흥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식당에서는 가격 흥정을 할 수 없기에 미리 메뉴판을 살펴보고 메뉴 종류와 가격 그리고 직원들의 친절도를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발리의 시골에서 마당과 길을 뛰어다니는 암탉들과 귀여운 병아리들을 질리도록 봤다. 아침마다 쩌렁쩌렁한 닭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곤 했다. 시골에서 벗어나 약간은 도심인 우부드에 도착해서는 작은 밭을 '꽥꽥!!'거리며 뛰어다니는 오리를 만났다. 이렇게 귀여운 아이들을 먹는다는 점에서 언젠가는 베지테리언이나 비건이 되고 싶지만, 그래도 여전히 닭의 맛을 포기할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사람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고기의 종류가 다른데, 나의 경우에는 양고기와 소고기 그리고 한국식 삼겹살, 닭요리를 매우 좋아하는 편이다. 남편은 양고기와 오리를 매우 좋아하는데, 인도네시아식 오리 구이를 먹어보고 싶어 했다. 평소에도 베이징 덕같은 튀긴 오리를 좋아했던 지라, 인도네시아에서 먹는 오리의 맛이 너무나 궁금했다. 그렇게 몇 군데에서 오리 요리를 봤지만 사실상 가능한 식당은 많지 않았다. 그렇게 우연히 찾게 된 식당에서 2시간 전에 미리 예약을 한 후에 시도할 수 있었다.
정말 시골 특유의 순수한 부부가 운영하시는 식당이었다. 환한 웃음으로 손님들을 맞이하는 그 모습에 마음이 훈훈해졌다. 그렇게 오리요리와 내가 주문한 카레가 나왔는데 카레의 맛도 나쁘지 않았고 삼발과 오리요리와 함께 나온 야채볶음도 나쁘지 않았다. 메인 요리인 오리의 맛은 일품이었다. 오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먹어도 깔끔하게 요리된 오리와 오리요리를 하면 만들어진 육수로 만든 수프의 맛이 정말 강렬했다. 하지만, 한두 점 먹고 나니 이게 오리인지 닭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나보다 오리 요리 경험이 많은 남편에게 물었더니, 오리가 아니라 닭이라고 했다. 하지만, 요리가 제대로 됐으며 맛이 있었기에 남편은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시종일관 환한 웃음으로 친절히 대해주던 식당 주인 부부에게 굳이 이게 오리인지 치킨인지 따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무슨 의미인지 알기에 나도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기분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분명히 식당 밖에 구비되어 있던 메뉴에 아주 크게 오리라고 써놨고, 남편이 오리를 주문했는데 왜 닭이 나온 것인지, 요리는 닭인데 오리의 값을 내야 하는 건지 마음이 약간은 불편했다. 그래도 마지막 디저트까지 잘 먹고 나왔기에 찝찝한 마음은 금세 사라졌다.
이날 먹은 오리 요리가 발리에서 먹은 첫 오리가 아니었다. 물의 궁전(water palace)으로 유명한 트리타강가(Tirtaganga)에 위치한 호텔의 식당에서 오리요리를 주문했었다. 그때도 오리 한 마리 전체가 튀겨져 야채볶음과 쌀밥과 함께 서빙되었다. 그 오리는 인도네시아 음식 특유의 향이 느껴지는 소스로 조리한 요리였다. 그 당시 남편은 너무나 감동받은 얼굴로 정말 맛있게 오리 요리를 즐겼었고, 한점 얻어먹었을 당시 그냥 누가 먹어도 오리의 맛이었다.
오리는 아니지만 오리로 둔갑한 닭요리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우리 부부는 이번 여행의 마무리 지역인 우부드(Ubud)에서 마지막 5일을 보냈다. 그리고 거기서 오리요리와 그릴드 랍스터 등 숯불에 구운 해산물을 판매하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었다. 아쉽게도 그날 랍스터가 떨어져서 먹을 수 없었지만(아무래도 이 말을 들은 순간 다른 곳으로 갔어야 했다). 다시 한번 오리 요리를 기대하던 남편의 기대찬 눈빛은 이내 테이블에 올려진 오리로 둔갑한 치킨 한 마리의 살점을 입에 가져가는 순간 실망의 얼굴로 변해버렸다. 누가 먹어도 치킨이었다. 남편은 너무 실망한 나머지 아무 말 없이 계속 밥만 먹었다. 그리고 한 번씩 실망스러운 얼굴로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남편의 마음이 이해가가 가면서도 , 이렇게 속아줘야 하는 상황이 약간은 짜증스러웠다. 특히, 그 레스토랑은 음식의 퀄리티에 비해 가격이 착한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지나가던 매니저에게 이 음식이 정말 오리가 맞는지, 음식 맛이 치킨인데 정말 오리를 사용한 것인지 물었다. 그는 정말 오리라며 장담한다고 했지만 음식 맛은 여전히 닭이었다. 밥을 먹으며 혹시 발리의 오리는 한국이나 다른 국가들이랑 다른 것인지 우리의 입맛을 의심하기도 했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예상치 못한 일을 겪으며 그 순간에 부정적 감정이 몰려오지만 어느새, 나 자신을 의심하게 되는 것이 정상적인 인간의 본능이 아닌가. 그렇게 기분 좋지 않은 닭이 오리로 둔갑한 사건을 또 겪게 되었다. 사실 그 저녁엔 그 지역에서 유명한 오리 음식점을 가기로 했지만, 오랜 시간 걷고 싶지 않던 나의 기분을 배려하여 내가 선택한 식당에서 밥을 먹다 일어난 일이라서 마음이 더 찝찝했다.
그렇게 발리에서의 마지막 날이 됐던 날, 남편이 그렇게나 먹고 싶던 진짜 오리 전문집을 찾았다. 그곳 또한 맛이 일품이었다. 첫 오리 요리 경험과 마찬가지로 누가 먹어도 오리의 맛이었다. 나는 떠나기 전 박소(backso)를 한번 더 먹고 싶어 오리 미트볼 박소를 시켰다. 아쉽게도 누들은 인스턴트 누들이었지만, 국물 맛과 신선한 미트볼의 맛은 인상 깊었다. 특히, 남편이 시킨 프라이드 덕(fried duck)의 맛이 아주 좋았다. 약간 옛날 통닭의 느낌이 나면서도 오리의 맛이었다.
아직도 한 번씩 오리로 둔갑한 닭 사건을 생각하면 헛웃음이 나온다. 아주 작은 해프닝이지만 여전히 알고 싶다. 발리의 닭(chicken)은 다른 나라들(the rest of the world)과 다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