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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보다 무서운 것”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by seungbum lee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

초겨울의 산비탈에 안개가 내려앉았다.

젖은 흙 냄새 속에서, 어린 사내 민수는 숨을 죽이며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바람결 사이로 잔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호랑이…!”


산중을 떠돌던 사람들은 이 골짜기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수군거렸다.

민수의 심장은 입안으로 튀어나올 듯 요동쳤다.

그러나 곧 그는 이상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호랑이는 그를 바라만 볼 뿐, 다가오지 않았다.

노란 눈동자만이 부드럽게 흔들릴 뿐이었다.

잠시 후, 호랑이는 민수에게 등을 보이며 천천히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날 밤, 민수는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집으로 돌아갔다.

굶주린 호랑이를 만났는데도 살아 돌아온 그를 본 어머니는 기적이라며 눈물을 보였다.


그러나 그 눈물 속엔 다른 두려움이 숨어 있었다.


다음날 아침, 관아에서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올해 세금이 부족하다. 집집마다 산림세, 군량미 세금을 한 가마씩 더 내라!”

관아의 이방은 말끝마다 곤장을 들이밀며 사람들을 협박했다.




민수의 작은 마을은 이미 오래전부터 세금에 짓눌려 있었다.

추수한 벼의 절반 이상을 내도 모자란다며,

어느 해엔 소가 끌려가고, 또 어느 해엔 집마저 압류됐다.


마을 사람들은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소문보다

관아에서 사람이 온다는 소식을 훨씬 더 두려워했다.




그날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이방은 민수의 집 앞에 멈춰 서더니 차갑게 말했다.


“올해 세금이 모자라다. 어서 내라.”

“관원님… 올핸 흉년이라 곡식이 없습니다.”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가져오게. 그렇지 않으면—”


이방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민수의 어머니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아이가 아파 약값도 없었습니다. 하루만, 하루만 더 시간을…”


이방은 그녀의 말을 듣고도 비웃었다.

그의 손끝이 곤장 손잡이를 스쳤다.


민수는 어머니 뒤에서 꽉 주먹을 쥐었다.

그는 산에서 본 호랑이의 눈이 떠올랐다.

그 눈은 두려웠지만, 이유 있는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지금 앞에 서 있는 이 관원은

배고픔도 절망도 보지 못한 빈 눈을 하고 있었다.


민수의 마음속에서 무엇인가가 무너져 내렸다.

그는 깨달았다.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을 옥죄는 이 가혹한 정치구나.”




그 순간, 멀리서 마을 장정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직 아무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모두의 눈빛이 같았다.


두려움이 분노로 바뀌는 데 걸리는 시간은

겨울밤의 찬 바람이 스치는 순간보다도 짧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 마을 사람들은 처음으로 한 목소리를 냈다.


“이대로는 살 수 없다.”


민수는 그 속에서 작게 중얼거렸다.


“호랑이는 사람을 한 번에 죽이지만,

가혹한 정치는 사람을 천천히 말려 죽인다…

정말로, 가정맹어호란 말이 맞구나.”


어둠 속에서 호랑이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민수의 발끝을 얼어붙게 하던 공포는

관아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에서만 비롯된다는 사실을

그는 또렷하게 깨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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