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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씨 Apr 2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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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뒤에 사람 있어요


“무슨 일 한다고?”

“영상 만들어요.”

 

30대 이상은 “아~ 프리랜서?” 10대들은 “유튜버에요?” 라는 대답이 뒤이어 나오는 내 직업은 영상제작자다. 5년 전만 해도 (그러니까 라떼는 말이죠.) 모바일 영상 제작자는 직업으로 인식되지 않고 SNS는 인생의 낭비라고 정의 내려지던 때. 영상은 TV에서만 나오는 방송을 일컫는 것이었고,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영상은 전공생들이 과제와 공모전을 위해 올리는 UCC가 다였던. 그런 2015년에 나는 SNS에 영상을 만들어 올리는 일을 ‘직업’으로 시작했다.

 

“재밌겠네!”

 

5년 동안 참 많이도 들었다. ‘좋아하는 분야니까 재미있게 일할 수 있겠다’라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경험상 저 문장에는 ‘다른 일보다 상대적으로 쉽겠네.’라는 속뜻이 들어있었다. 실제로 “나 포토샵 좀 할 줄 아는데 지원해도 되지 않을까?” “나도 페이스북 맨날 하는데..”라는 말을 반년에 한 번 정도는 꼬박꼬박 들어왔으니까. 무례한 사람들을 저격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그만큼 모바일 영상 제작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떻게 일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우리 가족도 내가 허구한 날 유튜브를 보며 회사에 다닌다고 생각했으니까.

 

일단 한번 만들어봐.”

 

사람들이 더 이상 TV를 보지 않는다는 소식이 뉴스거리가 되고, 핸드폰으로 짧은 영상만 본다는 것이 인사이트가 되었을 때 많은 방송국에서 부랴부랴 모바일 제작팀을 만들었다. 모바일 영상 제작이 누구보다 가장 쉽다고 생각한 사람들. 그들은 사람들이 어떤 영상을 재미있게 보고, 왜 보는지에 집중하기보다는 그저 짧고 짜치는(?) 형식에만 집중했다. 그곳에서 ‘비디오 크리에이터’ 로 이름이 붙인 나는 개인 컴퓨터도 지원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사람들이 클릭해야만 하는 (이게 왜 재밌는지 항상 PD 님들을 설득해야 하는) 짧은 영상을 만들어야 했고, 페이스북 조회수와 댓글은 그 영상을 계속 만들 수 있는지 없는지의 척도가 되었다.

 

진절머리가 났지만 그게 나의 일터였다. 일단 만들어보고 반응이 없으면 바로 없어지는. 성공적인 조회수가 있어야만 그제야 더 기획이란 걸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고, 계속 만들어갈 수 있는. 그때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링크를 전송하기 시작했다. ‘이거 한 번만 눌러주라. 보고 댓글도 달아주면 너무 고마워 ㅠㅠ’ 그렇게 몇 개의 페이스북 페이지가 생겨났다가 사라졌고, 만들어진 수십 개의 영상은 피드 한구석으로 가라앉았다.

 

다행인지 아닌지 모바일 시대는 빠른 속도로 변화했다. 연예인이 나오는 웹 드라마와 방송 퀄리티의 웹 예능이 많아지면서 모바일 영상 제작자를 인식하는 사람들도 주변에 꽤 많아졌다. 저마다 콘텐츠가 있다면 직접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는 세상이 되었고,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는 원데이 클래스가 생겨났다. 그런 2018년에 나는 영상 제작과 더불어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일이 ‘직업’으로 추가되었다.

 

“좋아요와 구독 알림 설정!”

 

수많은 영상 속에서 크리에이터들은 똑같이 외쳤다. 그런 크리에이터 중심의 유튜브 속에서 기업의 브랜드 채널을 이어가야 하는 게 ‘영상 에디터인’ 나의 임무였다. 초반에는 회사 채널의 타깃과 비슷한 채널이 많이 없었고, 2년 동안 다양한 기획 영상으로 14만 명의 구독자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점점 비슷한 타겟층을 가진 크리에이터 채널들이 많아지면서 결국 우리만의 정체성을 가진 브랜드 채널을 다시 새로 개설하게 되었다. 구독자 0명에서 시작하는, 제작자는 단 2명. 채널의 미래는 알 수 없다. 구독자들의 눈길을 끌어서 회사가 인정한다면 살아남을 것이고, 그 반대라면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또 없어지겠지. 채널이 없어진다고 당장의 일자리를 잃는 건 아니겠지만, 어쩐지 내가 이 허무한 사라짐을 견딜 수 있는 게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참 꾸준히도 나는 내가 홍보할 수 있는 모든 창구에 좋아요와 댓글을 구걸한다. 자극적인 영상들 속에서 의미 있고 건강한 영상이 눈에 띄기 위해서는 초반 반응이라도 필요하니까. 이런 영상이 필요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는 설득할 수 있는 숫자가 절실히 필요하니까.


은행에 다니는 사람이 ‘통장 하나 만들어주세요.’라고 부탁하는 것과 영상을 만드는 사람의 ‘좋아요  눌러주세요.’라는 부탁이 같은 무게가   있다는 . 혹시 시간이 되어 영상을   있다면,  영상이 계속 만들어지기를 원한다면 손가락을 한번 움직여 좋아요를, 조금  움직여 댓글을 작성해 주길. (라는 부탁을 오늘도 인스타그램에 남긴 1인의 긴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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