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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제 전용석 Jul 06. 2024

[장자16]양생주(3) 외발우사(右師)/진인사대천명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


[장자16] 양생주(3) 외발 우사(右師) /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


외발 우사(右師)


7. 공문헌(公文軒)은 우사(右師, 오른쪽 장군)를 보자 놀라면서 말했습니다. “이게 어찌 된 사람이오? 어이하여 외발이 되었소? 그것이 하늘이 한 일이오, 사람이 한 일이오?”


[누군가] 말했습니다. “그것은 하늘이 한 일이지 사람이 한 일이 아니오. 하늘이 나를 낳을 때 외발이 되게 했소. 사람의 모양이란 본래 두 발을 갖추는 것. 이로 보아도 외발임은 하늘이 한 일이지 사람이 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고.”


- 오강남 교수의 장자 번역본 중에서



여기서 [누군가] 의 ‘그것은 하늘이 한 일이지 사람이 한 말이 아니오’ 라는 말은 장자의 뜻을 대변한다. 그렇다면 하늘이란 무엇일까?


필자는 앞에서 하늘이 결국 도(道) 나 만물의 근원을 뜻한다는 말을 여러번 반복했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진인사대천명이란 말 그대로 인간으로서 할 일을 다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은 본래 삼국지에 등장하는 수인사대천명이라는 말에서 유래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아래에 발췌한 인용문을 살펴보자.



중국 삼국시대에 유비(劉備)의 촉(蜀)나라가 오(吳)나라와 연합하여 위(魏)나라와 적벽(赤壁)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촉나라의 명장 관우(關羽)는 제갈량(諸葛亮)으로부터 위나라의 조조(曹操)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예전에 그에게 신세진 일이 있어 차마 죽일 수 없었다. 결국 관우는 화용도(華容道)에서 조조의 군대를 포위하고도 퇴로를 열어주고 달아나게 하였다. 제갈량은 다 잡은 적장을 살려준 관우를 처형하려 했지만 유비의 간청으로 그를 살려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천문을 보니 조조는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니므로 일전에 조조에게 은혜를 입었던 관우로 하여금 그 은혜를 갚으라고 화용도로 보냈다. 내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쓴다 할지라도 목숨은 하늘의 뜻에 달렸으니, 하늘의 명을 기다려 따를 뿐이다.[修人事待天命]"


[네이버 지식백과] 진인사대천명 [盡人事待天命]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우리는 천하의 능력자로 알려져있는 제갈량처럼 천문을 참고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매사 진인사대천명 하기 위해 노력할 수는 있다.


평범한 우리들에게 진인사 함이란 무엇인가? 그저 ‘있는 그대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최선을 다한다는 말이 참 애매하다. 대체 어떻게 하면 최선을 다했음을 알 수 있을까? 최선을 다했다고 느끼고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 있을까? 나름의 노력을 한다고는 했지만 늘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는데, 더 모든 노력을 다할 수 있었는데... 하면서 말이다. 사실 이것은 사고의 함정이다. 이런 심리의 늪에 빠지면 최선을 다했다는 만족은 결코 얻기 힘들게 된다.


나에게 명상을 배우러 오던 30대인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쉽게 9급 공무원에는 합격해서 공무원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만족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공무원으로 생활하는 도중에 주경야독하여 7급 시험을 쳤지만 면접에서 번번이 떨어지고야 말았다. 휴직을 하고서 도전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결국 그는 9급 공무원을 아예 사퇴하고 배수의 진을 치는 마음으로 외진 곳에 있는 고시원에 들어가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첫사랑의 여인을 만났다. 공부에 집중해야 하는데 자꾸 그 여인이 생각나더란다. 그 어렵다는 7급 공무원 시험을 코앞에 두고도 범위 안의 책을 다 보지도 못하고 시험을 쳤다고 한다. 옆에서 소식을 듣는 나도 참 답답하긴 마찬가지. 그러길 두어번인가 했다는데, 이후로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이야기가 잠시 옆길로 샜는데, 물론 이런 경우를 두고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는 결코 없을 것이다.

지금은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경우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모든 이는 최선을 다한다.

- NLP


최고의 퍼포먼스를 내기 위한 심리적 요법들의 집합체를 뜻하는 NLP(신경 언어 프로그래밍)의 전제조건 중 하나이다. 어찌 보면 참으로 이상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나의 현재 일어나고 있는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나에게는 현재 고3인 아들이 있다. 그런데 부모의 눈으로 보기에 이 녀석이 참 그야말로 ‘한량’ 스럽다. 고3이면 최대한 많은 시간을 쥐어짜서라도 공부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그런데 너무 널널하다. 매사 쉬엄쉬엄 하고 유튜브는 여전히 절친이다. 일반적인 부모의 시각에서 보면 답답하기 그지 없을 일일 것이다.


그런데 NLP에서는 뭐라고? 모든 이는 최선을 다한다고 그럴 듯하게 둘러?댄다. 좀 더 과격한 예도 얼마든지 많이 찾을 수 있다. 누구도 이해 못할 범죄자라든지 테러범들도 있을 수 있다. 아, 너무 멀리 가지는 않더라도 바로 앞에서 이야기한 첫사랑에 정신 팔린 공무원 시험 응시생의 경우도 있다. 그들이 모두 최선을 다했을 거라고?


NLP는 그 시스템에 깔려있는 전제조건이 ‘진실’ 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 말은 그 어떤 전제도 ‘거짓’ 이 아니란 얘기다. 단지 그것의 ‘유용함’ 으로 인해 전제조건이라는 사실을 바탕에 깔고 있다. 뒤집어 생각해보자. 누군가는 최선을 다했고 누구는 아니라고 하면, 어떤만큼은 최선이고 어떤만큼은 아니라고 무엇을 기준으로 나눌 수 있을까?


나는 처음에 아들을 보는 관점에서 약간씩 오락가락 하곤 했다. 아니, 이 귀중한 시간에 왜 저렇게 한량 같이 지내는 거야? 그러면 화의 감정이 뒤따른다. 나는 뒷일을 생각해서 화를 참을 수도 있고 못참아서 낼 수도 있다. 굳이 화를 내는 것보다야 참는 것이 뒷일(인과관계) 측면에서 더 낫겠지만 어쨌든 화는 참든 내든 좋은 일이 아니다(여러 실험 결과에 의하면 화를 참으면 몸에 독소를 분출해서 건강에도 좋지 않다고 하지 않는가).


반대로 아들의 좋은 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면들을 인정하면서 나 또한 편안해졌다. 사실 좀 더 극단적인 문제아들이나 반항아들 - 심지어는 성인들 마저도 - 의 심리적 내면에는 외부로 보이는 성격만으로 판단하게 되는 것과는 다르게 수많은 개선점들이 내포되어 있을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가 부정적일지라도 그것은 그 사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행동인 것이다. 또한 이런 전제조건을 바탕으로 접근할 때 부정적인 행동의 교정 가능성도 커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NLP가 말하는 ‘유용성’ 이다.


내 안에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 가요 가시나무 가사 중에서 (시인과 촌장, 조성모 등)


나는 종종 남들을 대하는 마음이 자기자신을 대하는 마음과 다르지 않음을 본다. 복잡한 내면 심리는 타인들을 대하는 데도 갈등을 일으키지만 자기자신을 대하는 심리에도 다르지 않게 작용한다. 결국 마음에 있어서 나와 남이란 서로 완전히 분리되는 존재는 아니기 때문이다. 남에게 엄격한 사람이 자신에게 엄격한 경우가 많다. 반대로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이 남에게 엄격한 경우가 많다. 물론 나와 남에게 다른 경향과 행동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안(자기자신)과 밖(남)을 대하는 근본 성향은 대체로 비슷한 경향이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특히 자기자신에 대해 대체로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고 여기고 후회하는 경향이 잦은 사람이라면 지금부터의 대목을 꼭 눈여겨 읽어주었으면 한다.


“나는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당신은 항상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고, 현재도 그렇고 미래도 그럴 것이다. 마음에서 오만가지 핑계를 대며 아니라는 생각들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괜찮다. 마음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당신의 좌뇌가 그렇게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좌뇌의 역할(엄격한 관리자)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우뇌보다 좌뇌가 좀 더 활성화되어 있을 뿐 - 더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 - 당신의 잘못도 잘못된 행동도 아님을 이해했으면 한다.


스스로 게을렀다고, 정해놓은 시간과 계획에 엄격하지 못했다고, 친구에게 좀 더 친절하지 못했다고, ... 그 어떤 이유를 갖다 붙이고 싶더라도 상관 없고 괜찮다. 사람은 다 다르다. 지금까지 장자의 이야기를 충실히 읽어왔다면 자기자신에게도 장자 이야기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 세상의 모든 면들은 상대적이니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저 절대성을 향해 나아가라.


너무 짧은 시간에 크게 나아지려고 하지 마라. 그것이 욕심이다. 그렇다고 될 대로 되라고 방임하지도 마라. 그것은 포기다. 그저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하면 된다. 다만 자연스럽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면 된다. 여기에는 욕심도 포기도 없다. 장자도 붓다도 ‘중도’ 라 말하는 길이 여기에 있다.


당신이 지금 “이미” 있는 그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진인사> 이다. 물론 더 열심히 노력하면 좋을 것이다. 점점 나태해져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무슨 일이든 반복하는 일에는 기운이 붙어서 점점 더 커지게 되어 있다. 작게 뭉친 눈덩이를 굴리면 굴릴수록 커지듯이 말이다. 그렇게 현재의 작은(비록 스스로 보기에는 작아보이는) 노력 속에서도 더 노력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날 것이니, 그렇다면 남은 것은 <대천명> 일 게다.


사실 진인사 대천명이라는 말을 전후로 나누어 두 단계의 말로 볼 때 진인사 보다 대천명이 어렵다.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는 뜻인데 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인지 애매하게 느껴질 수 있으니까 말이다. 대천명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의역하면 결과에 대해 집착 없이 내맡기고 그저 기다리는 것을 뜻한다.


카지노에 있는 주사위 도박장의 풍경을 떠올려보자.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특정 숫자에 판돈을 건다. 주사위가 굴려지고 숫자가 결정되기 전까지 어떤가? 사람들은 온 마음이 다 긴장한 채로 바들바들 떨면서 기원할 것이다. 6에 판돈을 걸었다면 6나와라 6나와라 하면서 말이다. 이미 숫자가 정해졌다면 나와라 나와라 하는 행동은 마음의 긴장과 불안만을 증폭시킬 뿐이다. 이 예는 아주 짧은 시간의 예이지만 좀 더 긴 시간의 관점에서의 일에서도 전혀 다르지 않은 일들이 일어난다. 시험 공부에는 그다지 노력하지 않고서 결과가 잘 나오기를 바라는 일이 대표적일 것이다.


시험공부 이야기가 나왔으니 잠시 앞에 예를 든 공무원 응시생의 예로 돌아가보자.

그는 분명 시험에 대비해서 최소한의 충실한 준비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최선을 다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과거에 못다 이룬 첫사랑 여인에 대한 마음은 혹시 최선이 아니었을까? 분명한 사실은 그저 우연히 마주친 첫사랑 때문에 마음이 그렇게 흔들렸다는 것은 그의 내면에 잠재된 해결되어야 할 무언가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무의식 차원에서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또한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사실은 목표가 확고할수록 옆길로 새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의식에서 첫사랑에 대한 미련이든 사랑 받고싶은 욕구든 하필 중요한 시험을 코앞에 두고 굳이 마음을 뺐겨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런 일들은 나중에 다시 충족하거나 해결해도 될 일인데 그는 그러지 못하고 휩쓸렸다. 목표에 대한 마음을 더욱 확고하게 다졌어도 그 정도에 그쳤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8. 못가의 꿩 한 마리,

열 걸음에 한 입 쪼고,

백 걸음에 물 한 모금.

갇혀서 얻어먹기 그토록 싫어함은,

왕 같은 대접에도 신이 나지 않기 때문.



산 속에서 얻은 평화가 저잣거리에서 깨어진다면 그 마음이 제대로 수행한 것이라 할 수 있겠는가?


위와 같은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일견 보기에는 참 멋있는 말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편으로 보면 겉멋만 잔뜩 든 말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붓다는 제자들에게 숲으로 가서 나무 아래 앉거나 빈 집을 찾아서 그곳에서 홀로 수행하라고 하셨다. 마찬가지로 붓다 스스로도 자신은 공부가 다 된 사람이니 세상 일에 어떤 식으로든 참여해도 상관 없다고 하지 않았다. 큰 설법을 하는 경우 외에는 도심 바깥의 한적한 곳에 주로 머물며 설법 외에는 명상에 들어서 시간을 보내셨다.


마음은 기본적으로 외부에서 눈과 귀 등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눈과 귀를 활짝 열고 두뇌를 풀가동 시켜서 시끄러운 일에 관여하면서 절대적 평안을 누릴 수는 없는 법이다 - 물론 수행을 통해 외부의 영향을 최소화 할 수는 있겠지만.


그래서 장자는 갇힌 왕처럼 받는 대접이 아니라 순리대로 자유로운 꿩이 더 낫다고 이야기한다.

당장 천지개벽하듯이 바뀔 수는 없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처지는 갇힌 왕에 가까운가 자유로운 꿩에 가까운가?

그리고 차차 처지를 바꾸어갈 수 있다면 무엇이 되고 싶은가?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글쎄,

그저 진인사 대천명할 뿐......



- 明濟 전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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