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카루스 날개의 정체"
고통이 제시하는 의문들에 답하기 전에 고통을 제거한다면,
당신은 그 고통과 함께 있는 자아를 제거하는 것이다.
- 칼 융
--- 지금까지의 이야기 ---
현빈은 가난과 외모, 학벌, 그 어떤 것도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청년이었다.
좋아하는 여인에게 장미 한 송이조차 내밀지 못했던 어느 날, 그는 우연히 복권을 사고, 뜻밖에도 2등에 당첨된다. 그리고 그의 앞에 ‘천사’를 자처하는 신비한 존재가 나타난다.
천사는 원하는 건 무엇이든 현실로 만들어줄 수 있다고 말했고, 현빈은 점점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된다.
돈, 차, 명품, 상류사회의 삶… 그리고 스타트업 CEO의 자리까지.
그러나 욕망은 결코 그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했고, 결국 그는 공허함과 위선적인 인간관계 속에서 점점 무너져 간다. 부유하다는 이유로 폭력배들에게 폭행까지 당한 현빈은 천사에게 ‘힘’까지 요구하지만, 그조차 오래가지 않는데......
경영에 뜻도 능력도 없던 현빈에게 회사 운영은 고된 짐이었다. 궁여지책으로 전문경영인을 들였지만, 갈등은 끊이지 않았고 임직원들의 시선은 점점 더 싸늘해졌다. 내부 혼란은 지속됐고, CEO는 몇 차례나 교체됐다. 결국 회사는 구멍 난 침몰선처럼 가라앉으며 장외시장의 주가는 연일 폭락을 거듭했다.
스트레스에 짓눌린 현빈은 점점 회사에서 마음을 놓아버렸다. 어렵게 영입한 세 번째 CEO는 사세 확장의 욕심은 컸지만,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무리한 확장에 나섰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충격은 따로 있었다. 1년 가까이 매주 빠짐없이 당첨되던 복권이, 2주 전부터는 연속으로 당첨되지 않았던 것이다. 회사의 위기보다도 이 끊어진 ‘기적’의 흐름이 현빈에게는 더 큰 공포로 다가왔다. 그는 몇 날 며칠을 계속해서 천사를 불러보았지만 천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천사가 몇 차례 늦은 적은 있지만 이번에는 무소식의 기간이 불길할 정도로 길게 이어졌었다.
결국 무리한 확장 끝에 회사는 유동성 위기를 맞았고, 부도 직전까지 몰렸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현빈은 미희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차가운 표정과 함께 돌아온 건, 싸늘한 한마디뿐이었다.
'현빈 씨는 능력이 있으니 혼자서도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그녀의 말은 '나는 너 자신을 믿어'라는 글씨로 포장된, 얼음 조각이 담긴 선물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는 파산했고 현빈이 쥐고 있던 주식은 모두 휴지조각이 되었다.
천사가 사라진지 한 달, 현빈은 비싼 월세의 고급 오피스텔에서도 쫓겨났다. 이제는 편히 누울 잠자리조차 없었다. 그가 가진 것이라곤 포르쉐 한 대뿐이었다. 그 차만은 마지막 자존심이자, 언젠가 천사가 다시 나타나 모든 것을 되돌려줄지 모른다는 상징처럼 간직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결국 그가 처음으로 손에 쥐었던 부의 상징, 포르쉐마저 헐값에 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그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도 하나둘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미녀들도 아첨하던 이들도, 모두 사라지고야 말았다.
그는 술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었다. 이제는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만한 이도 없었다. 친구 민석의 얼굴이 종종 떠오르곤 했지만, 도저히 그를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자기 삶에 진심을 다하며 살아가는 민석 앞에서 돈 좀 벌었다고 우쭐거리던 자신을 떠올리면 너무나 부끄러워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는 싸구려 술집을 전전하며, 천사가 다시 찾아오길 바라는 희망 하나로 겨우 하루하루를 버텨나갔다.
‘괜찮아, 괜찮아. 조금만 더 버티면 돼. 천사는... 그냥 늦는 것뿐이야.’
희망과 두려움 사이를 오가는 진폭은 점점 더 잦아졌다. 하지만 두려움은 점점 더 오래 머무르고 있었다. 희망은 마치 정오의 시계를 쫓는 그림자처럼 짧아지고만 있었다.
*
“어이, 아저씨. 앞 좀 똑바로 보고 다녀.”
밤늦은 거리, 술에 취한 채 현란한 네온사인 불빛 사이를 정처 없이 떠돌던 현빈은 지나가던 무리와 어깨를 부딪쳤다. 비틀거리며 고개를 든 그가 마주한 건, 스무 살도 채 안 되어 보이는 젊은 남녀들이었다. 남자 넷에 여자 하나, 단정하지 못한 옷차림과 건들거리는 태도는 누가 보더라도 불량 청소년들이었다.
“어린 것들이 어디 어른한테 반말이야! 까불지 말고 집에 가서 공부나......”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시비를 걸던 녀석이 “지랄하네” 하며 주먹을 날렸다.
현빈은 날아오는 주먹을 똑똑히 보았다. 하지만 몸이 예전처럼 반응하지 않았다.
‘어, 이상하네?’
그렇게 생각한 순간, 퍽! 번쩍이는 충격과 함께 정신이 아찔해졌다.
주먹은 그다지 세지 않았지만 이상하리만치 몸이 무거웠다.
주먹과 발길질이 연달아 쏟아졌다.
그는 맞으면서도 계속 생각했다.
‘왜 이리 몸이 무거워졌지? 왜 이렇게 둔해진 거지?’
그리고 결국 하나의 결론으로 이어졌다.
천사가 심어주었던 그 ‘힘’조차 사라졌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를 폭행하던 아이들은 지나가던 행인들의 소리에 달아나버렸고, 텅 빈 거리에 그는 혼자 남았다.
얼굴에서 피가 흘렀지만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주저앉아 멍하니 허공만 바라볼 뿐이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을까.
그는 모노드라마의 독백처럼 혼자 중얼거렸다.
설마, 천사는... 완전히 사라진 걸까?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졌다.
절벽에서 실낱같은 나무뿌리 하나에 매달려 있는 심정이었다.
“천사는 돌아올 거야... 반드시 돌아올 거야...”
그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살려달라는 듯이 외쳤다.
아니, 어쩌면 천사를 부르는 주문처럼 소리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희미한 별빛 같은 희망조차 사라진 순간,
그의 마음도 함께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
같은 시각.
아주 멀리서, 한 사내가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청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무명’. 이름조차 없다는 뜻이었다.
지난 1년 동안, 그는 그저 멀리서,
그리고 조용히 그 청년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만약 현빈이 천사라 불리는 존재를, 메피스토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가 그토록 쉽게 욕망의 날개를 달아주지 않았더라면...
과연 지금,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래도 이렇게 추락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쳐갔다.
<작가의 말>
『로드시커』는 욕망, 마음, 영혼—세 가지 길을 따라가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주인공은 욕망의 길을 걷고 있지요.
그는 과연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게 될까요?
독자 여러분은 지금 어떤 길 위에 서 있나요?
잠시 멈춰 자신을 돌아보며,
현빈의 여정 끝까지 함께 걸어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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