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시커 1부 끝] 메피스토펠레스

"우리 모두의 어둠 속에서"

[로드 시커] Road Seeker : 길을 찾는 사람, 탐색자.

로드시커 1부 :

욕망의 길 - 이카루스의 날개


사탄조차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는 수가 있지 않습니까?

- 성경


고통이 제시하는 의문들에 답하기 전에 고통을 제거한다면,

당신은 그 고통과 함께 있는 자아를 제거하는 것이다.

- 칼 융



--- 지금까지의 이야기 ---

주인공 현빈은 그저 평범한 청년이었다.
좋아하던 여자에게 고백할 용기가 없어 복권을 사게 되고,
그 선택은 그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모든 소원을 들어준다는 ‘천사’라 불리는 존재의 도움으로, 복권은 계속해서 당첨되는 행운을 얻는다.
현빈은 점점 더 많은 욕망을 구체화시켜 나간다.

그는 고급차에서부터 시작해서 돈, 사회적 성공, 미녀 모두 얻는다.
하지만 그의 욕망은 충족될수록 더 커져만 간다.

자신의 능력 없이 너무나 쉽게 정상에 오른 그는

결국 경영 실패, 관계의 단절, 사회적 조롱 속에서 삶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불러도 나타나지 않는 천사의 부재로 인해 회사는 파산하고

싸구려 술집을 전전하며 폐인처럼 살아가던 중 다시 천사를 만나게 되는데......



[로드 시커 1-22] 메피스토펠레스

"우리 모두의 어둠 속에서"




“그래, 네가 원하던 대로 살아본 기분은 어때?”


고개를 떨군 채 흐느끼던 현빈의 앞에, 익숙한 목소리가 어둠을 가르듯 들려왔다. 고개를 들자 그곳에 천사가 서 있었다. 그러나 그 분위기는 예전과는 사뭇 달랐다. 검은 양복 차림에 눈매는 매섭게 찢어져 있었고, 입가엔 사악한 웃음이 비죽 올라 있었다. 예전엔 온화한 빛으로 가득했던 얼굴이 이제는 싸늘한 냉소와 조롱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현빈은 잠시 망설였지만 익숙한 존재에 대한 갈망이 앞섰기에 소리쳐 불렀다.


“천사님!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그 존재는 얼굴의 일그러진 표정에 걸맞는, 불쾌한 웃음소리를 낄낄대며 흘렸다.


“천사? 대체 누가 천사라는 거지? 나는 천사가 아니라—악마였어.”

“악… 악마?”


현빈의 눈이 커졌다. 믿기지 않는 현실 앞에서, 그는 그대로 얼어붙은 듯했다.


"분명히 천사라고 하셨잖아요!"


현빈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 어지럽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풀리는 다리를 애써 붙잡으려 벽을 짚고 버텼다.


"이 순진한 친구야. 그 정도 거짓말에 넘어간 건 너의 욕망이 눈을 가렸기 때문이었지.

이제야 눈치챈 건가? 나는 천사의 탈을 쓴 악마였어."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현빈은 넋이 빠진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악마가 머리에 뿔 달고 꼬리 달렸다고 믿나? 그런 건 동화 속 이야기일 뿐이야. 진짜 악마는 어디에나 있어. 겉모습만으론 절대 알아볼 수 없지.”


악마는 현빈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모습에 더더욱 신이 난듯 힘주어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나쁜 짓을 한 걸까? 아니야. 이 모든 건 자네 안에서 비롯된 거야. 나는 단지 자네가 가진 ‘무엇이든 쉽게 얻고 싶어 하는 마음’, ‘돈이면 뭐든 해결된다고 믿는 욕망’에 에너지를 불어넣었을 뿐이야.”

"......"

“자, 봐. 지금 자네가 빠져있는 이 절망의 늪을. 누가 만든 것 같나? 자네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카카카카카카! 이번에도 작전 성공이야! 이렇게 어리석은 인간들을 좀 보라고!"

악마는 기분이 최고라는 듯 이번엔 목을 젖히고 크게 웃어댔다. 그 음침한 웃음소리는 허공을 가르며 퍼져나가, 땅속 깊은 어둠 속까지 스며드는 듯 오싹하게 울려 퍼졌다.


“하지만 당신은 날 도와줬잖아! 내가 원하던 것들… 그걸 이룰 수 있게 해줬다고!”

“그런 당신이 어떻게 악마일 수 있어? 말도 안 돼… 거짓말이지! 전부 거짓말이야!”


“이봐, 세상 좀 분별하며 살지 그랬나? 지금 네 꼴 좀 봐. 아무것도 남지 않은 인간, 바닥보다 더 아래에 처박힌 네 모습을 말이야.”

“난 처음부터 네 마음을 간파하고 있었어. 네가 탐욕에 눈이 멀어 제 발로 덫에 걸려들길 기다렸지. 그래서 널 일부러 가장 높은 곳까지 올려놨다. 그리고 손을 놔버렸지.”

“왜냐고? 넌 혼자 힘으론 날 수 없는 놈이었으니까. 네가 스스로의 날개로 날아 올랐었다면 추락할 일도 없었을 텐데, 넌 내 손에만 의존했고, 그런 대가는... 크크크. 바로 이거야.”


악마는 마지막으로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더니, 연기처럼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남겨진 현빈은 무너진 폐허 속에 혼자 남겨진 느낌이었다. 다시 예전처럼 살아갈 용기도, 이유도 없었다.

한때 세상이 다 자기 발 아래 있는 듯했던 그가, 이제는 초라한 현실을 견디는 일조차 상상할 수 없었다. 아니, 더는 이렇게 비참한 모습으로 단 하루도 살 자신이 없었다.


그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택시를 세웠다.


“한강대교 쪽으로 가주세요.”


택시에서 내린 현빈은 푸르스름한 조명이 빛나는, 아치형 교각이 펼쳐진 한강대교를 천천히 걸었다.

가을바람이 스산하게 불었다. 늦은 밤, 도로에는 차들만 쌩쌩 달릴 뿐 주위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는 난간을 붙들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검고 깊은 물이 그를 향해 커다란 입을 벌리고 빨아들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약간의 현기증을 느끼며,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맑게 개인 가을 하늘임에도 어둠은 그믐달마저 삼켜버렸고, 도시의 매연은 별빛마저 빨아들이는 듯했다.


그 순간, 수많은 생각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그의 머릿속에서 아우성쳤다. 어머니, 아버지, 시골집, 아직은 꿈이 살아있던 어린 시절, 그리고......


‘얼마나 많은 물을 마시면 정신을 잃게 될까.
그건 얼마나 괴로울까.
잠깐만 참으면 되는 걸까……’


현빈은 깨달았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결코 실행하지 못하리라는 걸.


그는 난간 너머로 몸을 던졌다.

휙, 부웅-.


찰라의 순간이 영원처럼 느려지고 있었다.

그의 의식에서일 뿐이겠지만 몸은 아주 느리게, 마치 슬로우모션 장면처럼 끝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세월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빠르게 스쳐지났다.


그리고, 첨벙!

차가운 강물이 마치 콘크리트처럼 단단하게 그의 몸을 받아치는 듯했다.

주위는 칠흑 같았고 물속에서 나온 검은 손들이 그의 온몸을 잡아당겼다.

그는 반사적으로 허우적거렸다. 결국 힘이 빠지고 몸은 서서히 가라앉았다.


코와 입을 향해 물이 거칠게 밀려들었다.

가슴이 터질 듯 답답했지만, 들이마신 건 죽음을 재촉하는 검은 물이었다.


빛도, 소리도, 감각도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었다.

점점 더 검은 물 속으로 깊이 빨려들어가면서,

아직 조금은 남아있던 의식이 느끼던 최후의 강렬한 느낌,

그것은 원초적인 죽음의 두려움이었다.

자살을 결심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그는 잠시 죽음의 공포에 맞서보려 애썼지만,
결국 그것마저도 놓아버렸다.

그러자 의외의 평온이 찾아왔다.

고통 마저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었고, 어둠은 어릴 때의 담요처럼 포근하게 느껴졌다.

깊은 잠에 빠지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듯이,

욕망으로 타오르던 의식도 서서히 꺼져가고 있었다.



- [로드 시커 1부] 욕망의 길 - 이카루스의 날개


끝 -


- [로드 시커 2부] 마음의 길 - 연금술사의 장미 편에서 다시 시작됩니다 -

2부 연재도 정주행 부탁드립니다.



<작가의 말>


『로드시커』는 욕망, 마음, 영혼—세 가지 길을 따라가는 이야기입니다.
1부에서 주인공 현빈은 "욕망의 끝에서 이카루스의 날개를 잃고 추락" 했습니다.

이제, 남은 2부 마음의 길, 3부 영혼의 길에서

그는 과연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게 될까요?


독자 여러분은 지금 어떤 길 위에 서 있나요?
잠시 멈춰 자신을 돌아보며,

현빈의 여정 끝까지 함께 걸어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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