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adSeeker길을 찾는 사람] 2부: 마음의 길을 걷는 연금술사
가영은 어린 시절, 아버지인 우향의 부재를 떠올렸다. 우향이 오랜 세월 전국을 떠돌며 방황하던 시절이었다. 아버지가 가영에게 꼭 필요했을 때, 그는 지켜야 할 자리에 있지 않았다.
“아빠는 역시 언제나 현명해요. 이번에도 제가 몇 달이나 풀지 못하던 문제를 이렇게 쉽게......”
그녀는 잠시 울먹이느라 말을 잇지 못했다. 숨을 고르며 원망하는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평생을 머리로는 이해하려 애썼지만 가슴으로는 용서하지 못했다. 아버지를 볼 때마다 늘, 머리와 가슴이 따로인 이중적인 감정은 그녀를 더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곤 했다. 그녀는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더 이상 물러설 자리는 없다고 느꼈다.
“생각으로는 늘 아빠를 이해하려고 했어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으니까, 가족들을 돌보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중요한 목적이 있었으니까,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으니까! 이해하고 싶어 했어요. 하지만... 마음은... 감정은... 아빠를 원망하는 마음이 쌓여갔어요. 아픈 엄마와 나를 둘만 남겨두지 않았으면... 아빠를 그토록 기다리던 엄마의 곁에 있어주었으면...”
그녀의 목소리가 격하게 출렁이며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열아홉 어린 나이에 엄마의 임종을 혼자 지키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녀는 마치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던 과거로 돌아간 것처럼 오열을 터뜨렸다.
우향은 가영의 곁에 앉아 그녀의 들썩이는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래. 미안하다. 정말로 미안하구나."
우향의 따뜻하고도 나지막한 목소리가 가영의 가슴으로 스며드는 듯했다.
"네 마음에 억눌렀던 그 에너지들이 터져 나온 것이 나는 정말 기쁘구나. 이날이 오기를 오랫동안 기다려왔단다."
가영의 울음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원망의 찌꺼기들이 눈물과 함께 흘러나간 듯했다.
"세상 일들은 다 적절한 때가 있는 법이니까. 나는 늘 네게 미안한 마음을 가져왔지만 이제야 때가 온 것 같구나. 나도 네 엄마를 정말로 사랑했었어. 하지만 일이 그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니. 내 가슴도 많이 아팠단다."
우향의 눈시울이 잠시 붉어지는 듯했다. 딸인 가영조차도 그 모습을 생경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투명한 목석같은 그에게서는 잘 볼 수 없는 얼굴이었다.
"정말이지 모든 게 완벽할 수는 없다. 반드시 자신의 길을 가야만 하는 때가 있지. 희생도 따르는 법이야. 하필이면 그 희생이 너와 엄마에게 있었다니, 나도 너무 안타까웠어. 하지만..."
우향은 평안의 채널로 마음을 되돌렸다. 곧이어 그가 다시 투명한 모습을 되찾는 듯했다. 조금은 떨리던 목소리가 청아하게 울렸다.
"너도 나를 이해하는 마음이 반쯤은 있었으리라 믿는다. 너 역시도 나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이니까.”
우향의 말이 끝나는 순간, 가영은 온몸이 떨릴 만큼의 강렬한 공명을 느꼈다. 마치 얼음이 녹듯이 마음을 가로막던 경계가 부드럽게 사라졌다. 이와 동시에 가영의 마음과 우향의 마음은 하나가 되었다. 나와 너를 가르던 경계는 스르르 녹아내렸다. 자아의 경계를 콘크리트처럼 믿었던 생각은 착각이었다. 경계는 언제든 허물어지는 가벽에 불과했다.
그 순간, 하나 된 마음에 희열이 샘솟았다. 가영은 우향이 되었고, 그의 마음과 완전히 하나가 되었다. 가영은 마치 아버지의 기억과 감정이 자신의 내면을 통과해 지나가는 것처럼 느꼈다. 그의 슬픔과 외로움, 그리고 사랑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그것은 찰나일 수도, 영원일 수도 있었다. 의식의 공간에서 시간이란 얼마나 부질없는 개념인지 모른다.
마음은 다시 분리되었고 그녀는 다시 본래의 마음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마지막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향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녀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구도자(求道者)였다. 서로의 길은 달랐지만 둘 다 진리를 찾는 사람들이었다.
우향은 젊었을 적, 오랜 세월 진리를 찾아 전국을 방랑했다. 모든 고승과 각자(覺者)들을 찾아다녔다. 또한 오랜 기간 수행을 거쳤다. 결국 그는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얻었지만 다른 것을 잃었다. 그것이 가족들의 신뢰였고 지키지 못한 아내의 임종이었다.
그녀는 어머니를 떠올렸다. 엄마는 다른 부류의 사람이긴 했었다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찾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돈과 성공, 정의, 지식, 인간관계... 그녀의 어머니는 사랑으로 생의 의미를 찾는 사람이었다.
우향이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를 이어나갔다.
“진리를 찾는 어떤 사람들은 방울이 진리의 일부라고 믿고 있지. 하지만 그것이 가장 큰 함정이 될 수 있단다. 그 아름다움에 미혹되어 샛길로 빠지게 되니까. 그 속에서 진정한 자신을 발견할 수는 없어.”
가영은 마침내 꿈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는 정말로 방울을 던져버려야 할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굳게 걸어놓았던 빗장을 거두고 용서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용서는 상대방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라는 말의 의미를 몸소 깨우치게 되었다. 용서하고 나니 가슴을 억누르던 큰 돌덩어리 하나를 버린 듯이 가벼워졌다.
집을 나서며 그녀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말했다.
“아빠. 미안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나도 너무 고맙구나. 마음에서 큰 짐을 내려놓았으니, 그만한 좋은 일이 있을 게다. 마음이 움직이면 현실의 일도 움직이는 법이지.”
“어떤 좋은 일이 있을까요?”
우향은 말없이 웃기만 할 뿐이었다.
*
가영은 귀갓길의 열차 안에서 현빈과 마주쳤다. 그녀는 이 우연한 만남에 놀랐지만 오히려 현빈의 표정에는 담담함이 서려있었다. 그건 마치 재회를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녀는 그의 그런 표정과 단호한 눈빛에 한 번 더 놀랐다. 그건 그녀가 알던 그의 과거의 눈빛이 아니었다. 그녀의 가슴이 그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두근거렸다.
그는 그녀의 곁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분명한 발음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석판에 새기듯이 말했다.
“이제 다시는..."
그의 말들이 그녀의 온몸으로 스며들어 하나가 되었다.
"너를 놓지 않을 거야.”
그녀 인생 최고의 날이었다.
- 로드시커 2부 : 마음의 길 - 연금술사의 장미
- EP19 : 그녀 인생 최고의 날
<로드시커 2부가 끝났습니다. 정독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잘 읽어 오신 독자님들은 댓글 꼭 부탁드려요. 연재 이어가는데 큰 힘이 됩니다. 고맙습니다!>
<로드시커 3부 : 영혼의 길 - 구도자의 불꽃> 편에서 만나요.
<작가의 말>
『로드시커』는 욕망, 마음, 영혼—세 가지 길을 따라가는 이야기입니다.
욕망의 길에서 추락한 주인공은
이제, 마음의 길을 걷고 있지요.
그는 과연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게 될까요?
독자 여러분은 지금 어떤 길 위에 서 있나요?
자신을 돌아보며, 끝까지 함께 걸어가 주세요.
#로드시커 #마음의길 #자기계발소설 #마음의연금술
#자아의통합 #감정의해방과용서 #진리를찾는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