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처럼 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시트콤이었고 낭만은 기어이 찾으려고 애쓰지 않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우린 원래 예전에도 이렇게 싸웠잖아. 쉽지 않고 많이 어렵겠지. 매일 이래야 할지도 몰라. 그래도 괜찮아. 네 모든 걸 원하고 매일 같이 있고 싶으니까!" (영화 '노트북' 중에서)
선한 웃음, 여행과 미식을 즐기고, 부모님에 대한 예의와 사랑, 성실함, 종종 까무러치게 웃기는 농담 등으로 첫눈에 반한 남편이지만 그에게는 어마 무시한 것이 숨겨져 있으니, 바로 병적 꾸물거림이라 하겠다. 원래 나는 느긋한 성격은 못되지만 육아를 하며 더욱 급해진 성격 탓에, 남편의 이런 꾸물거림이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이들에게 저녁을 먹이고 식탁을 치우고 나면 7시 반 퇴근하고 들어오는 남편을 위해 다시 저녁상을 차린다. 저녁을 다 먹은 남편이 동작이 굼떠지면서 내 부탁-난 부탁한다 생각하는데 듣는 남편은 '지시' 같다 말한다-을 제대로 따르지 못할 때 부엌에서 종종거리던 나는 화가 치밀어 오르곤 한다. 어제도 설거지를 하고 있던 나는 아이들에게 얼른 책을 읽어주라 남편에게 얘기했다. 하지만 내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소파에서 휴대전화만 붙잡고 있기에 슬슬 눈과 입이 한쪽으로 치켜 올라갔다.
"여보, 뭐해. 휴대전화 그만하고 얼른 애들 책 좀 읽어주라니까!"
결혼 십 년 차가 다 돼가니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좋았다가 싫었다가, 기분이 날아갈 듯해서 뽀뽀를 해줬다가 화가 나서 뒤통수나 꿀밤을 한대 쥐어박고 싶었다가, 이 사람이랑 평생 어찌 살지 생각하다가 남편도 그런 생각을 하겠지 생각하면 화들짝 놀라서 연민의 마음도 드는 그 무엇이란 것을.
"결과를 알고 있음에도, 어떻게 흘러갈지 알면서도, 난 모든 걸 껴안을 거야.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반길 거야" (영화 '컨택트' 중에서)
주인공에게는 아팠던 딸이 있었다. 그 아이가 죽고 남편마저 떠난 후 루이스는 혼자 남게 되는 자신의 미래 모습을 신비한 외계 생물체를 통해 보게 된다. 그렇게 그녀는 다 알아버렸지만 똑같은 길을 간다.
하지만 현실의 대다수 사람들은 어떨까. 나마저도 내 미래를 알아버렸다면 어떤 선택을 할지 의문이다. 나름 밀도 있게 살아왔다 자부하지만 안 가본 길이 궁금하고 그 길에서 내 모습은 어떨지 상상해본다. 현재 나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만약 그 길로 가지 않았더라면? what if를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고 내 현실에 백 프로 만족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물론 미래를 알아버렸더라도 똑같이 할 것이다 라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이처럼 영화와 현실은 괴리가 있다. 물론 영화처럼 비현실적인 순간이 이십 대에는 불쑥불쑥 찾아왔었다. 보라카이 해변에서 지는 석양을 보며 사랑을 노래한 적도 있고 새해를 앞두고 파리 에펠탑 앞에서 카운트다운을 하며 소원을 빌던 반짝이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아기 낳는 건 얼굴에 문신하는 거야.
그만큼 확신이 서야 해." (영화 '잇 프레이 러브' 중)
차고 넘치는 확신이 있어서 아이들을 낳았지만 현실은 울적했다. 지금이야 둘째가 조금 커서 그런 생각이 들지 않지만 두 아이 육아로 한참 힘들 때는 창밖을 멍하니 보며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일렁였었다.
갇혀있던 시간을 지나고 나니 지금은 파스텔 솜사탕 같은 아이들 얼굴을 보는 게 그저 기쁨이다.
"살다 보면 살아져. 내가 지난 10년을 어떻게 살았을 것 같니" (영화 '원데이' 중에서)
서로에 대한 마음을 깨닫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여주인공이 급작스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충격적인 결말로 인해 한참 동안 마음이 먹먹했던 기억이 있다. 연인의 죽음은 아니지만 고2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던 때가 떠오른다. 학급 실장이었던 나는 야자를 빼먹고 외할아버지가 입원해있던 병원으로 갔다. 임종 직전 현주 어딨냐며 내 손을 꼭 잡고 눈을 마주치고 나서야 눈을 감으셨다. 태산 같은 슬픔에 외할아버지의 염을 나도 본다며 가족들 앞에서 울부짖었고, 학교에서는 때때로 떨어지는 눈물 때문에 수업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몇 날 며칠을 우는 나를 보고 담임 선생님은 대체 언제까지 울 거냐 다그쳤고(실장이 할 일을 안 한다고) 나는 우리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며 대들었었다. 하지만 하루 이틀 나흘 한 달 일 년이 지나고 영화 속 대사처럼 살다 보면 살아졌다. 깊은 슬픔은 옅은 슬픔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런 면에서는 현실도 영화와 다를 바가 없다.
"우리는 어디쯤 있는 거지?"
"그냥 흘러가는 대로 가보자" (영화 '라라랜드'중에서)
영화 하나에서 출발한 이번 이야기는 결국, 현실에 지쳐있는 누군가에게, 꾸물거림이 있어도 믿음직한 남편에게, 가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얘기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다. 네가 어떤 모습으로 있건 흘러가는 대로 열심히 가보자고. 그러다 보면 우리가 원하는 어딘가에 도달해 있지 않겠냐고. 영화와 현실의 그 어디쯤에서 헤매고 있을지라도 충분히 괜찮다 말하고 싶다.
"내가 옆에 있잖아. 언제나 널 사랑해."
(영화 라라랜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