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같은 존재

by 미아

교복 입은 단발머리 여고생 셋이 잔디밭 위에 앉아 세상 환한 미소를 지으며 웃고 있다. 깔깔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그중 가운데 앉은 학생은 웃을 때 볼 한가운데가 움푹 패이는 보조개가 특히 매력적이다. 흑백 사진 속 그녀의 모습이 싱그럽다.


그녀는 사업을 하는 부모님 밑에서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집에는 식모가 있었고, 굴비를 짝으로 사 먹고 형제들과 심심하면 빵가게에 들려 단팥빵과 크림빵을 사 먹었다. 그녀의 집은 시내 중앙에 있었고 부모님 사업은 흥했기에 결혼 전까지 돈의 구애를 받지 않으며 풍족하게 지냈다.


그녀는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는데 졸업과 동시에 엄마는 장녀인 그녀에게 결혼을 하라고 했다.

음악을 전공한 그녀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될 수 있었는데 부모님의 등살에 떠밀려 중매로 만난 남자와 1년도 안돼 결혼을 하게 된다. 꽃 같은 나이 스물넷이었다.


그녀의 엄마는 불교를 믿었고 사주를 믿었다. 중매가 들어왔는데 남자의 사주를 보니 본인 딸과 둘도 없는 환상의 궁합이었고 사돈이 될 사람들도 그 시절 대학을 나와 교직 생활을 하는 것이 맘에 들었다. 그리고 사위 삼고 싶은 저 남자도 서글서글하게 잘 생긴 것이 그냥 마음에 쏙 들었다. 결국 두 사람은 결혼을 했고 포동포동하고 하얗게 살이 오른 사내아이와 그다음 해에는 한쪽 눈이 찌그러져 나온 여자아이를 얻었다. 등 떠밀려 한 결혼이었지만 사랑스러운 아이 둘을 얻는 순간 내가 이 아이들을 보려고 결혼을 했구나 싶었단다.






첫째 아들은 순둥순둥 하게 생긴 것 답게 참으로 순했다. 거기다 영특하기까지 했다. 돌이 막 지나서는 꼬불거리는 라면으로 숫자 3을 만들고 8을 만들어 말해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말이 빨랐고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아이였다. 한쪽 눈이 찌그러진 채 눈곱이 덕지덕지 껴서 나온 여자 아이는 너무 못생긴 나머지 그녀는 이 아이가 내 딸이 맞냐 물었다고 한다. 첫째 아이와는 달리 피부는 까맣고 비쩍 마른 여자 아기였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은 그녀의 딸을 보고 이쁘다며 칭찬 일색이었고 사람들의 말을 듣고서야 걱정을 한시름 놓았다. 둘째는 성격이 둥근 아이, 뾰족한 아이, 장애를 가진 아이까지 많은 친구들을 편안하게 하는 정이 많고 밝은 여자 아이였다.


아들과 딸은 대체로 얌전했다. 둘 다 부모님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들이었고 말썽 한번 안 피우고 커줬다. 그 아이 둘이 국민학교에 입학할 때는 그녀는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이제 해방이구나. 그녀는 그동안 못했던 운동을 특히나 열심히 했다. 성인 수영 강습을 들으며 실력을 향상시켰고 온갖 수영대회에서 상을 휩쓸며 성취감을 맛보았다. 아이들, 남편과 함께 여름마다 동해를 찾아 바다 수영을 하는 게 그리 좋았다. 그녀는 물개였다. 그녀가 수영을 원체 잘하니 아이들도 엄마를 따라 수영장 가는 게 취미였고 아이들 또한 곧잘 했다.


그런 그녀에게 심장이 내려앉는 순간이 있었다. 조카와 그녀의 딸이 외가댁에서 누운 상태로 천장을 보고 자전거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멀리서 뛰어오던 아들이 딸아이의 다리에 걸려 넘어졌다. 앞으로 굴러 넘어지면서 두 팔로 거실 유리창을 짚었는데 그 유리가 와장창 깨졌다. 그 파편에 아들의 오른팔 동맥이 끊어졌고 거실은 피가 낭자했다. 아이를 들쳐 엎고 동네에서 가장 큰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는 상태가 심각해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 새벽에 서울대학교 병원으로 아이를 이송하는데 그녀는 아들의 생각지도 못한 말에 기가 막혀 태산 같은 울음을 꾹 참았다고 한다.


"엄마, 나 괜찮아. 괜찮으니까 울지 마."


오히려 그녀를 도닥여주는 10살 아들 앞에서 그녀가 어떤 말을 할 수 있었을까.




그녀는 검소하게 생활하며 외벌이 남편이 벌어오는 돈을 야무지게도 모았다. 개미들이 개미집에 먹이를 저장하듯이 한 푼 두 푼이 목돈이 되고 그 목돈으로 투자를 했다. 선택은 대부분 옳았다. 그녀는 심미안이 무척 좋아 물건을 보는 안목이 상당했다. 저렴한 물건도 그녀의 손에 들어오면 값어치 있는 물건이 됐고, 값비싼 물건은 배로 더 고급져 보이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 자녀들은 그녀의 세련됨과 타고난 안목을 높이 평가했고 존경했다. 딸의 눈에는 집에서 살림만 하는 게 아까운 여자처럼 보였다. 딸은 그녀를 종종 '엄마는 천재야'라고 표현했다.


그녀의 딸이 어느 날 유하 옷을 사 온 날이었다. 퇴근한 남편을 보자마자

"여보 유하 옷 샀는데 이거 어때?"

"너무 어둡지 않아? 좀 촌스러운 거 같아."

"센스없기는!"

그녀의 딸은 며칠 후 엄마에게 옷을 보여주며 똑같이 물었다.

"엄마, 이 옷 어때?"

"유하 꺼야? 조금 촌스럽지 않아?"

"그렇지! 나도 그런 거 같아. 좀 촌스러워. 환불해야겠다."

옆에서 그녀 딸의 남편은 자그마한 소리로 말한다. 맨날 이럴 거면서 나한테 물어보긴 왜 물어봐 칫.




그녀의 남편은 공기업을 다녔는데 공사다망한 나머지 대부분 집에 늦게 들어오기 일쑤였다. 그 시절에는 대부분 남편들은 밖에서 일하고 아내들은 집에서 살림하기 바빴다. 그녀는 결국 집안의 온갖 대소사와 아이들 뒤치다꺼리를 홀로 완벽히 다 해냈다.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야 이제 좀 쉬는구나 했더니 거울 속에는 싱그러운 흑백사진 속 여자는 사라지고 나이 든 여자가 서 있었다. 서글퍼졌다. 공사다망한 남편을 뒤로하고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잘 키워놓았더니 그녀의 청춘은 흘러간 시간과 함께 사라져 있었다.




그녀가 딸에게 묻는다.


"현주야, 엄마 많이 늙었지?"

"아니, 엄마처럼 그 나이에 주름 없는 사람도 드물어. 화장하면 아직도 사람들이 쉰 정도로 볼걸"

"으이그. 넌 내 딸이라 그렇게 말하지"

"진짠데."


"현주야, 엄마는 앞으로 딱 십 년 정도 생각해"

"어우, 무슨 소리야. 요즘은 무조건 백세 시대야. 이젠 내가 엄마 아빠 지켜줄게. 나 고아 되기 싫다고"


그녀의 사위가 종종 얘기한다.

"어머님, 현주에게 어머님은 종교 같은 존재예요. 건강하셔야 해요"


가족끼리만 통하는 유머 코드가 있는데 종교 같다는 소리 또한 그녀를 함박웃음 짓게 만들었다.

"그래. 더 건강하게 살아봐야지. 내 새끼들이랑 손주들 크는 걸 보고 싶어"


잔잔히 눈물이 날 거 같았으므로 그녀는 멀리 창밖을 내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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