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수채화

by 미아

나는 기억한다. 국민학교 시절 내내 눈부셨던 여름들을. 그 계절이 되면 항상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공간에 대한 기억과 냄새가 있는데 바로 서울특별시 용산구 동부이촌동이다.


외할머니는 우리 엄마, 이모, 쌍둥이 외삼촌 둘 이렇게 4명의 자식을 낳았다. 엄마가 오빠를 낳고 1년여 뒤에 나를 낳았는데, 얼마 안돼 이모도 내 사촌동생 민주를 낳았다. 즉, 나는 83년생, 사촌동생 민주는 빠른 84년생이었다. 학년은 같으니 동갑이나 마찬가지인데 민주는 늘 나를 언니 언니 하면서 잘 따랐다. 어려서부터 우리 오빠와 나 민주는 완전한 삼총사로 병원놀이, DJ놀이, 작사 작곡 놀이, 부루마블, 카드게임 등 그 연령대의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놀이를 함께 했고 마치 원래부터 삼 남매였던 것처럼 서로 각별하고 애틋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도 민주와 이모는 서울에 살았고 우리는 청주에 살았기에 학기 중이 아닌 방학 때나 오래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가 국민학교 2학년이 되자 여름방학 때마다 나랑 오빠를 이모네로 보냈다. 이모가 먼저 민주를 데리고 친정인 청주에 잠시 있다가 나랑 오빠를 데리고 다시 서울로 갔다. 그러다 오빠가 고학년이 되면서 나만 서울에서 놀다 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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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동부이촌동 한강맨션 주위에는 지금도 건재한 신동아 아파트, 현대 아파트 등 우뚝 솟아있는 아파트들이 주르륵 이어져 있었다. 이모는 현대아파트에는 가수 소방차가 살고 있는데 아침마다 소방차를 좋아하는 여학생 팬들로 도로는 인산인해에다 너무 시끄럽다 했다. 이모가 사는 한강맨션에는 R.ef 성대현이 살고 있는데 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종종 보는데 화면이 나은 거 같다는 이야기도 들려주곤 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텔레비전에서만 볼 수 있는 연예인들을 그렇게 쉽게 볼 수 있다는 사실과 청주와는 다른 그 동네만의 조금 이국적인 분위기에 매료되곤 했다.


민주는 친한 동네 친구들에게 우리 사촌 언니가 청주에서 놀러 왔다며 나를 친구들에게 소개해줬고 그 친구들은 기꺼이 나를 그 무리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줬다. 그중에는 아역배우로 활동하는 잘생긴 남자 친구도 있었는데 그 아이가 나를 지긋이 바라보거나 내게 어떤 질문을 할 때는 그렇게 가슴이 쿵쾅거릴 수 없었다. 민주 친구들과 처음으로 배스킨 라빈스에 가서 민트 초콜릿을 먹었을 때를 잊지 못한다. 머리에서 온갖 폭죽이 팡팡 터지는 느낌이었다. 이 세상에서 최고로 맛있는 음식인 것 같았다. 민주 친구들 앞에서 청주 촌년으로 보이고 싶지 않아 이미 먹어본 척을 했지만 나는 알았다. 이제부터 아이스크림은 민트 초코만 먹을 것이라는 것을. 아니나 다를까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 최애 아이스크림은 민트 초코다.


민주 친구 중에는 대학생 언니를 둔 한참 막둥이인 친구가 있었는데 하루는 그 친구가 자기 언니와 같이 동네 수영장을 가자고 했다는 것이다. 민주와 사총사와 함께 수영장으로 향했다. 수영장에 도착하니 피부가 투명한, 갈색인, 시꺼먼, 누런 사람 등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고 난생처음 눈앞에서 수많은 외국인들을 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용산에는 미군기지도 있었고 국방부 및 대사관들도 많기에 외국인들이 대거 거주하고 있었다) 수영장은 국민학생부터 입장 가능했지만 그곳에 어린이들로 보이는 애들은 우리 여섯 명 밖에 없었다. 민주와 친구들은 자주 와본 곳이니 수영장에 입장하자마자 퐁당 다이빙을 하며 들어갔고 나만 어정쩡하게 주변을 의식하며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고 있는데 같이 간 민주 친구 언니가 내게 등에 썬 오일을 발라달라고 부탁을 했다. 내가 어쩔 줄 몰라 눈동자만 요리조리 굴리고 있으니 언니는 가방에서 친절하게 오일을 꺼내 뚜껑을 딴 다음 내 손에 몇 방울을 떨어뜨려주었다. 'Hawaian'이라고 써져있는 갈색 통에 든 썬 오일이었다. 뚜껑을 열자마자 코에 퍼지는 이국적인 향기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처음 맡아보는 향이었다. 오일을 손으로 비벼서 언니의 등에 발라주는데 그 순간 나는 어린이에서 마치 한순간에 대학생이 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 타들어갈 듯한 태양 아래 온갖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썬배드에 누워 태닝을 하거나 수영을 하고 있고 주위에는 우리나라 말이 아닌 다른 나라 언어가 들려왔다. 그리고 나는 친구 언니의 등에 외국 냄새가 나는 썬 오일을 발라주고 있었다. 내 모습은 비록 어린아이지만 언니에게 썬 오일을 발라주는 순간 난 어른의 세계로 이동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저 생생하게 기억나는 그 순간의 기억과 냄새다.


수영을 신나게 하고 부대찌개라는 음식을 먹으러 갔다. 이것 또한 처음 맛보는 음식이었다. 스팸이라는 햄도 그때 처음 들어봤고 라면에 떡을 넣어 먹는 것도 처음 알았다. 청주에서 쭉 자라온 나에게는 모든 것들이 신기했고 그 자극과 기억들은 내 몸에 고스란히 흡수가 되어 지금까지 종종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지금도 용산에는 맛있는 부대찌개 집들이 많지만 처음 먹어본 그 맛이 아니다. 아마도 나는 그때의 맛보다 추억을 기억하는 거겠지.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내 주변에 몰려와 이야기를 들려달라 했다. 방학 동안 서울 이모네에서 지낸 이야기들, 대형 백화점도 없던 청주에서 절대 살 수 없는 옷가지들을 몸에 걸친 꼬마가 친구들에게 종알종알 얘기하기 바빴다. 이모는 항상 물건을 살 때 손이 컸다. 민주, 나, 오빠를 데리고 백화점을 다니며 클럽 모나코, 시스템, 에스프릿 등 값비싼 옷들을 사서 입혔고 나는 이모가 사준 옷들을 입고 학교에 가는 것이 좋았다. 마치 내가 시시한 어린아이가 아닌 멋진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으니까.


그래서 더 그런 것일까. 또래 아이들보다 키도 컸던 나는 무엇인가에 이미 다 아는 척을 했었다. 청주에서 일어나는 일이 모두 시시하게 느껴졌던 적도 있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 이모는 동부이촌동 집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서 방학 때마다 그곳을 놀러 가는 일은 없어졌다. 대학생이 되어 혼자 버스를 타고 동부이촌동을 가봤을 때 내 기억 속에 있던 아파트들과 상점들은 새롭게 다른 건물들로 바뀌어 있었다. 배스킨 라빈스만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 그 길 위를 걸으며 민주와 손잡고 뛰어다녔던 놀이터와 문구점 등 수많은 가게들을 추억했다. 그럴 때면 코끝이 시큰거려 더러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했다. 내가 태어나서 자라온 곳은 아니지만 어느 공간에 대한 강렬한 추억은 미칠듯한 그리움을 유발했다.


오늘 같이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여름날이면 나는 이모의 르망 차에 타 있다. 라디오에서는 김현식의 '비 오는 날 수채화' 노래가 흘러나온다. 창밖으론 거대한 한강 물줄기와 반포대교가 보이고 창밖에 맺혀있는 빗방울을 지긋이 바라보며 동부이촌동으로 들어가는 강변북로를 달린다.

"세상 사람 모두가 도화지 속에 그려진 풍경처럼 행복하면 좋겠네~"

어린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미 세상을 다 알아버린 것 같은 착각을 하는 한 꼬마가 노래를 흥얼흥얼 따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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