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죄부

by 미아

대구로 이사를 하고 아이들은 남편 직장 내 어린이집을 다니게 되었다. 첫째가 6살 둘째가 4살이었다. 워낙 좋다는 말을 많이 들은지라 내심 기대하며 방문했고 직접 눈으로 보니 어린이집은 기대 이상이었다. 회사 1층에 위치한 어린이집은 아빠가 일을 하다가 아이들이 궁금하고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바깥에서 볼 수 있었고 선생님은 물론 보육 환경까지 뭐하나 흠잡을 것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굳이 단점(?)이라고 꼽는다면 그때의 내가 생각하기로는 남편 회사 동료들과 그의 아내들이 같은 어린이집 학부모들이 될 거라는 점, 그것 하나가 조금 걸렸다. 입소를 앞두고 남편에게 호기롭게 말했다.

"절대 엄마들과 친해지지 않을 거야.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말실수라도 해서 당신한테 흠이 되기라도 하면 어떡해"

"무슨 상관이야. 원래 하던 대로 해. 나 신경 쓰지 말고"

남편은 이렇게 얘기했지만 나는 마음의 철창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리라 속으로 다짐했다.


그러나 웬걸, 절대 엄마들과 섞이지 않는다 친해지지 않는다는 다짐은 어린이집을 다닌 지 몇 주만에 풀려버렸다. 어린이집 엄마들은 지금까지 내가 보지 못했던 털털함의 극치를 달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타지로 이사와 힘든 것은 없냐며 먼저 다가와 주었다. 아이들이 하원하고 나면 어린이집 앞에 있는 놀이터에서 삼삼오오 모여 아이들 얘기며 일상 얘기를 자연스럽게 하면서 정말 한순간에 친해지는 마법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렇게 평범한 일상을 지내고 있던 많은 날들 중 유독 한날이 기억난다.


그날도 어김없이 첫째와 둘째는 하원 후 어린이집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있었다. 나는 놀이터 벤치에 앉아 다른 엄마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중이었다. 4시에 하원을 하면 보통 5시까지 놀다가 집에 갔다. 그날은 첫째 학습지 선생님이 오는 날이었다. 선생님은 5시 반쯤 오시는데 시계는 벌써 다섯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준서야 이제 집에 가자. 오늘 선생님 오는 날이잖아. 실컷 놀았으니 이제 집에 가자"

"싫어 엄마! 더 놀래 안가!"


그 이후 똑같은 말을 열 번 넘게 반복했다. 처음에는 '알았어 5분만 더 놀고 가자' '벌써 10분이 지났네 이젠 정말 가야 해 얘들아' 점점 시간은 가고 초조해진 나머지 전보다 더 소리 높여 얘기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망부석처럼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둘째도 덩달아 집에 안 간다고 징징댔다. 언성이 높아진 나를 의식한 다른 엄마들도 첫째와 둘째에게 내일 또 놀자며 어서 집에 가자 말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나는 징징대는 아이들 두 손을 덥석 잡고 다른 엄마들에게 인사도 하지 않은 채 빠른 걸음으로 놀이터에서 빠져나왔다. 아이들은 차에 타서도 '더 놀고 싶었다고! 구* 안 해! 하기 싫어!'를 외치며 소리를 질러댔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집으로 가다 결국 차를 갓길에 세웠다. 그리고 아이들을 향한 날 선 말들을 쏟아부었다.


"야 이준서!! 너 엄마가 대체 몇 번을 말했니! 너 이렇게 할 거야? 내려! 당장 내려! 집까지 걸어와!

유하 너도 오빠랑 똑같아 너도 같이 내려! 엄마는 갈 거야 혼자!"


창문을 뚫고 나갈 듯 큰소리를 내며 뒷좌석에 앉아 있는 아이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목청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아이들은 내 고함 소리에 무서운 나머지 엉엉 울기 시작했다. 엉엉 우는 아이들을 보니 더 짜증이 나서 당장 내리라며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아이들은 잘못했다며 엄마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내 팔을 잡아끌었다.


마침 학습지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죄송하다고 얼른 가겠다고 조금만 집 앞에서 기다려 달라 하고 전화를 끊었다. 화를 너무 낸 나머지 쉽사리 마음이 진정되질 않았다. 어찌어찌 아이들도 집에 와서 수업을 끝내고 저녁을 먹고 잠이 들었다. 잠들기 전 아이들을 품에 안고 '엄마가 아까 너무 화내서 미안해. 무서웠지. 다시는 그럴 일 없을 거야' 라며 꼭 안아주었다. 오은영 박사는 열 번을 참고 잘해주다가 한번 화를 내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했다. 나는 매번 그 한 번을 못 참고 '욱' 했다. 잠든 아이들을 바라보며 아까 차 안에서 왜 그렇게까지 소리를 질렀을까 후회를 하면서도 매일 밤 혼자만의 반성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날은 유난히도 말을 안 듣고 더 놀고 싶어 하는 날이었다. 재차 얘기했지만 요지부동인 아이들에게 짜증이 났고 그 짜증을 어린이집 엄마들에게 보여주기 싫었다. 아무리 친해졌다지만 그들은 남편 직장 동료 혹은 선배들의 와이프들이었다. 아이들의 그런 고집스러움과 나의 예민함을 그들에게 들킨 것 같아 민망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까. 그까짓 게 뭐라고 아이들을 내 감정의 쓰레받기가 되게 했을까. 그날을 생각하면 후회가 밀려온다. 그날 이후 어느 날엔가 아이들이 나에게 '엄마가 차에서 우리 보고 내리라고 했잖아'라는 말을 했을 때 머리가 쭈뼛 섰으니까.


친정엄마는 내가 아이들 양육하는 것을 보고 "현주야 왜 이리 애들한테 짜증내고 화를 내니. 애들이 너 눈치를 보잖아. 애들한테 밥만 잘해주는 게 다가 아냐" 하신 말씀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래 나는 밥만 잘해주는 엄마가 맞는 것 같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과 국을 먹으며 우리 엄마 음식이 제일 맛있다고 엄지 척해주면 기분이 좋다가도 아이들이 말을 잘 안 들으면 화가 난다. 그렇다고 유년시절의 내가 엄마한테 비슷한 대접을 받아서 이렇게 아이들한테 화를 내나 싶어, 어렸을 적을 회상해보면 우리 엄마는 늘 친구 같은 존재였다. 공부하라 잔소리 한 번 안 하셨고 늘 옆에서 무조건 괜찮다 해주시는 분이었다. 근데 난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아이들이 나중에 나를 생각할 때 친구 같은 엄마로 생각해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어 버린 것은 아닌지 종종 자괴감이 든다. 육아에 차라리 수학같이 명쾌한 답이 있으면 좋으련만. 모성애는 부족하고 책임감만 강한 못난 나는 오늘도 아이들에게 화내지 말아야지 중얼대며 아이들이 좋아하는 면죄부와 같은 소고기 미역국을 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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