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앞잡이. 들이나 산길에서 볼 수 있으며 길을 안내해 주는 것처럼 쭉 앞서서 날아간다. 그래서 ‘길앞잡이’라고 불린다. 몸 빛깔은 금빛이 나는 녹색이나 붉은색을 띠고 있고 금속광택의 앞날개에 여러 빛깔의 무늬가 있어 무척 화려하다.
당신의 부족한 부분을 이해해주고 길앞잡이처럼 먼저 날아가서 길을 안내해주는 이 누가 있는가? 기꺼이 당신에게 본보기가 되어 주는 사람. 스승님, 남편, 가족, 오랜 벗 말고 또 누가 있는가? 내게는 그런 사람이 있었고 지금도 힘들 때면 그 사람이라면 어떻게 할까 종종 생각하곤 한다. 첫 직장에서 1년의 시간이 흐른 뒤 같은 팀에서 만난 과장님이 내게는 길앞잡이 같은 분이다.
입사하고 내 앞에는 꽃길만이 펼쳐질 줄 알았는데 꽃길이 아닌 지옥불에 떨어진 것 같은 느낌으로 회사를 다녔다. 1년 동안이나 내 사수였던 여자 과장님은 나를 시샘하는 건지 정말 미워서 그런 건지 내 복장부터 시작해 사사건건 트집을 잡기 일쑤였고, 일을 가르쳐 주기는커녕 본인 잡일만 내게 던져주고 늘 일찍 퇴근하기 바빴다. 팀을 옮기고 싶었고 그분 밑에서 뭘 제대로 배울 수나 있을까 싶었다. 외로웠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더 씩씩하게 웃고 다녔다.
그러던 중 팀이 새롭게 쪼개지면서 다른 실에서 근무하던 새로운 과장님이 우리 팀으로 오게 되었다. 과장님과 함께 일하면서 회사 생활의 how to를 거의 알게 되었다. 과장님이 나를 지지해주고 칭찬해줄 때마다 주어진 업무를 잘 해내고 싶었고 더욱 인정받고 싶었다. 내 일에 대한 태도는 180도 달라져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업무 이야기뿐만 아니라 여자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엄마로서의 일상적인 삶에 대한, 뭐랄까 아주 얕은 얘기부터 속 깊은 얘기까지 나누며 정신적인 끌림이 있었고 소울메이트란 이런 건가 싶었다.
그러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고, 첫째를 임신하고도 열심히 회사를 다녔다. 과장님이 이미 겪어온 길이라 내가 만삭의 몸으로 출퇴근할 때도 항상 배려해 주셨다. 그러던 중 남편의 회사 본사가 대구로 이전하게 되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때 과장님은 나를 몇 번이나 붙잡으며 이렇게 얘기를 하셨다.
“선주 씨 그만두지 말고 주말부부 하면서 좀 버텨. 지금 그만두면 너무 아깝잖아. 아이들은 조금만 참으면 알아서 잘 커. 선주 씨의 자아실현이 먼저야.”
붙잡는 과장님을 뒤로하고 나는 참으로 남편만을 바라보고 우리는 주말 부부를 할 수 없기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만두고 1년은 정말 행복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뒤로도 들려오는 과장님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종종 생각한다. 내게 길앞잡이나 같았던 과장님의 그 수많은 설득을 뒤로하고 지금 나는 내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가. 만약 내가 그때 일을 그만두지 않고 계속 다녔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상황에 처해 어떤 모습을 하며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