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가 수영을 배우고 있다. 가까운 옆동네 스포츠센터에서 수영 강습을 듣고 있는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내가 직접 라이드를 해주고 있다. 아이를 수영장에 들여보내고 한 시간 남짓 기다리는 동안 둘째와 함께 센터 옆 놀이터에서 주로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1층 센터 데스크 옆에 헬스케어존이라고 되어 있는 공간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2평 정도 되어 보이는 공간에 혈압측정기, 인바디, 종합 체력 평가 기계 등이 구비되어 있었다. '똑똑 건강'이라는 어플을 깔고 헬스케어존에 있는 키오스크에 내 아이디로 로그인하면 그날 측정한 인바디 및 체력 측정 결과가 어플에 바로 저장되어 편리했다.
오랜만에 인바디를 측정하는 터라 경건하고 떨리는 마음을 안고 체중계에 올라섰는데... 웬걸, 몸무게와 체지방량을 보고 축구경기에서 공격수가 한 골도 못 넣고 시합을 마무리하는 표정으로 체중계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체지방률과 복부지방률이 표준에서 한참 벗어난 수치를 보고 좌절했다. 한해 한해 지날수록 몸무게가 조금씩 불어나고 있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표준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줄 몰랐다. 2년 전 필라테스를 할 때의 인바디 결과표와는 확연히 다른 수치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고 나서 며칠 후 첫째를 수영장에 보내고 다시 한번 인바디를 해보고 싶어 헬스케어존을 찾았다. 그런데 그 앞에는 이미 인바디를 측정하고 있는 다른 여성분이 있었다. 헬스케어존에 단점이라면 뒤에 기다리는 사람이 키오스크 화면에 로그인한 사람 정보를 볼 수 있다는 점인데 그날 나는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숫자를 보고야 말았다. 한눈에 봐도 탄력이 있으면서 여리여리해 보이던 그 여성의 인바디 정보가 키오스크 화면에 떡하니 띄워졌다. 키 162cm에 몸무게 42kg. 나는 눈을 껌벅거리며 다시 한번 고개를 들고 똑똑히 쳐다보았다. 다시 보아도 그 숫자였다. 그 여성분은 자기 몸무게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한숨을 깊게 내쉬고는 뒤에서 기다리던 나를 보고 민망해하며 번개처럼 사라졌다.
168cm인 나와 그 여자분의 키 차이는 6cm 밖에 나지 않는다. 그러나 몸무게는 대체 얼마나 차이가 나는 것인지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나잇살이라는 게 있어서 앞으로 몸무게가 늘면 늘었지 빠지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지내다가는 예전 몸으로 돌아가는 게 점점 어려워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이들과 집에 돌아와 집안일을 하면서도 머릿속으로 내내 어떻게 하면 살을 드라마틱하게 뺄 수 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식단이 80% 운동은 20%.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식단이 정말 중요한 것인데 어떤 것을 덜 먹어야 살을 뺄 수 있을지 고민했다. 아니 사실 이건 변명이고 핑계다. 나는 정확히 살은 어떻게 하면 빠지는 것인지 알고 있다. 하지만 실천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빵을 끊을 수 없기에 매일 빵을 맛있게 먹으면서 '괜찮아 맛있으면 0칼로리랬어' 하며 자기 합리화를 하곤 했다. 빵 중에서도 가장 칼로리가 높은 크로와상과 버터 스콘 같은 것을 즐겨 먹으면서 일말의 두려움은커녕 행복함을 느꼈다. 이렇게 먹고 점심 저녁을 조금 먹으면 상관이 없는데 마치 서양인들처럼 아침은 커피와 스콘 혹은 크로와상, 점심은 샌드위치, 저녁은 거하게 먹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다. 항상 밀가루 음식을 맛있게 빨아들이던 내 몸은 어느 순간 서양인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뱃살은 두둑하고 엉덩이는 큼지막하게.
빵을 끊어보자 결심하고 아침부터 바꿔보았다. 애들을 등원시키고 커피와 초코 스콘을 우적우적 입에 쑤셔 넣는 대신 가볍게 반숙 계란 하나와 사과를 먹었다. 그렇게 딱 5일이 지났을까. 아침 공복 체중계에 올랐는데 1킬로가 빠져있었다. 남들에게는 겨우 1kg 일지 몰라도 내게는 빠지지 않는 마의 숫자였다. 더불어 뱃살이 조금 들어갔는데 빡빡했던 바지에 나만이 알 수 있는 정도의 헐거움이 느껴졌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빵을 끊은 지 2주도 채 되지 않았지만 이렇게라도 기록함으로써 나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다. 앞으로는 절대 스콘 같은 고칼로리 빵을 먹지 않을 것이며(쓰면서도 근데 불안한 건 왜일까) 저녁도 가볍게 먹을 것이다. 그리고 최소 주 2회 이상 유산소 운동과 홈트를 하면서 몸무게 관리에 더 신경 쓸 것이다. 162cm에 42kg 은 절대 될 수 없지만 첫째를 낳기 전 몸무게로 돌아가 건강하고 가벼운 몸을 유지하며 지내고 싶다.
나중에 입이 더 터지기 때문에 빵은 끊는 게 아니라 줄이는 거라고 빵순이들은 말한다. 하지만 빵을 끊은 지 2주 정도 지나면서 내 몸속에 작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뻑뻑한 스콘과 커피로 아침을 먹고 나면 하루 종일 속이 더부룩했는데 지금은 배 속이 편안하다. 신기한 건 빵을 안 먹으면 금단현상이 나타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조금 출출하다 싶으면 간식으로 빵 대신 바나나와 아몬드 브리즈를 먹는다. 빵은 끊는 게 아니라 참거나 줄이는 거라고 말하는 빵순이들이여, 저와 함께 빵 끊어보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