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생긴 일
7월 초 이른 여름휴가의 목적지는 인도네시아 발리였다. 발리는 내게 신혼여행으로 가는 곳, 힙한 상점들이 많은 여행지, 신들의 섬 정도로 생각되는 곳이었다. 휴양지를 검색하다가 웬만한 동남아는 다 가본 것을 알았을 때 남편과 내게 남은 선택지는 발리였다. 그렇게 열흘 동안 우리 가족은 그곳에서 잊지 못할 추억을 안고 돌아왔다.
여행 가기 전 친구와 통화를 했다. 발리를 가 본 적이 있던 친구는 거기 가면 무조건 무조건 서핑을 배우고 리조트에서 그냥 하루종일 쉬라고 신신당부했다. 내 나이 마흔에 서핑 배우다가 골로 갈 일 있냐고 알았다 배워보겠다 그렇게 대충 얼버무렸다. 하지만 친구와 통화 후 서핑을 정말 배워볼 것인가 하는 물음표가 무의식 속에 있었던 것 같다.
덴파사르 공항에서 가까운 꾸따 지역에 3일 동안 묵을 숙소를 잡았다. 처음 일정에 꾸따를 넣은 것도 실은 서핑 때문이었다. 서핑을 배우는 것에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컸지만 친구가 그렇게 추천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은 타지 않지만 스노보드를 좋아했었고 수영은 나름 꽤 잘하지 않나. 올해 내 나이 불혹이지만 서핑을 또 못 배울 것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상의 끝에 결국 발리 여행 둘째 날 서핑을 배우러 아이들과 함께 꾸따 비치로 향했다. 서퍼들의 천국 꾸따 비치의 첫인상은 그저 무서웠다. 강렬한 햇빛 아래 연이어 휘몰아치는 파도는 딱 봐도 몹시 높아 보였고, 그 파도 위로 서핑을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대체 여기서 누가 서핑을 한다고. 저렇게 파도가 높은데!' 생각하는 순간 미리 예약해 놓은 서핑 업체 사장님이 우릴 마중 나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은 조금 이상한 날이었다. 우릴 마중 나온 서핑 업체 사장님은 내가 퇴사한 전 직장 상사와 똑 닮은 얼굴과 키를 가지고 있었다. 도플갱어는 만나면 죽는다는데 그 둘은 만나지 않았으나 나는 제삼자로서 여기 인도양에서 그 둘을 보고 있다. 닮은 사람 둘이 만나면 진짜로 죽나?라는 얼토당토않은 만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안녕하세요! 잘 오셨어요. 파도가 좀 높죠? 지금은 들어갈 수 없어요. 파도가 곧 잔잔해질 테니 두고 보세요. 30분만 기다렸다가 서핑하러 들어갑시다!"
호기롭게 말하는 서핑 사장님을 따라갔다. 올해 8살인 2호는 파도가 무섭다며 서핑을 배우지 않고 모래놀이를 하며 혼자 놀겠다 했다. 결국 나와 남편, 1호의 서핑 수업이 시작되었다. 수업은 바다가 아닌 모래사장에서 진행되었다. 먼저 보드 위에 엎드린 상태로 파도를 향해 열심히 양팔을 저으며 패들링을 한다. 파도가 오면 엎드려있던 자세에서 바로 일어나 스노보드 탈 때의 발, 즉 익숙한 발을 앞에 두고 하체는 스쿼트 자세보다 살짝 높게 유지한다. 양팔은 옆으로 벌리되 한쪽은 가슴 쪽으로 접고 다른 팔은 일직선을 유지한 채 쭉 폈다. 보드 위에서 패들링을 하다가 파도가 오면 곧바로 일어나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땅 위에서도 힘든데 이게 바로 될까 싶었다. 달걀을 반으로 툭 쪼개 모래 위에 놓으면 바로 서니 사이드 업 후라이가 될 것 같은 백사장 위에서 연습을 하니 얼른 시원한 바다로 뛰어 들어가고 싶었다.
내 마음을 읽은 건지 서핑 사장님은 땅 위에서 연습은 그만하고 곧바로 파도를 타보러 나가자고 했다. 1:1 강습 신청을 했기에 남편과 나, 1호는 각자 담당 선생님이 있었다. 나를 가르쳐줄 발리니즈 선생님 이름은 난다로 딱 봐도 20대 초반의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영어로 말을 붙이려는 찰나 "안녕하세요 누나! 잘할 수 있어요!" 하며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난다 앞에서 나는 깔깔 웃고 말았다. 그렇게 난다를 따라 바다로 첨벙첨벙 들어갔다.
뒤에서 난다가 서핑보드를 붙잡고 밀어주면 나는 보드에 엎드려 누운 자세로 열심히 패들링을 했다. 엎드린 자세로 양팔로 노를 저으면 거인처럼 큰 파도가 내 얼굴과 몸을 덮쳤다. 정면에서 오는 파도를 누워서 보면 높이가 2미터쯤 돼 보이는 마법이 있다. 파도는 '어서 와 서핑은 처음이지?' 라며 내게 말을 붙이는 걸까.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처음부터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난다가 파도의 흐름을 보고 '지금이야 일어서!'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보드에서 벌떡 일어나야 하는데 그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간신히 일어났다고 해도 세차게 밀어붙이는 파도 앞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물속으로 풍덩 고꾸라졌다.
한 세 번 정도 모래 바닥에 고꾸라지고 나서야 네 번째 시도에서 벌떡 일어나 파도를 탈 수 있었다. 파도를 타는 내 모습을 보며 난다는 뒤에서 환호했다. 퍼펙트, 쿨, 굿잡, 와우 누나 소리가 철썩 거리는 파도 소리와 함께 귀를 간지럽혔다. 친구가 왜 꼭 서핑을 배우라고 했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난다는 '파도를 타는 건 마치 하늘을 나는 기분이야'라고 했다. 그러나 하늘을 날아본 적이 없기에 그 느낌은 모르겠고, 우리가 등산할 때 경사길에서 몸이 구겨져 앞으로 걸을 때 말이다 그때 숨은 차고 너무 힘든데 뒤에서 누군가가 손으로 등을 밀어줄 때 훨씬 걷기가 수월해지는 그 느낌을 아는지? 딱 그 느낌이었다. 보드 위에 엎드려 있다가 벌떡 일어나 중심을 잡고 파도를 탄다. 내 몸은 가만히 있는데 파도가 내 몸 전체를 밀어줘 나는 너무 쉽게 앞으로 앞으로 가고 마는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파도가 나를 뒤에서 밀어주는 그 시간만큼은, 내 몸이 온전히 깃털처럼 가벼운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깃털은 몇 십 번의 파도를 탈수록 점점 무거워졌다. 마치 빨래를 끝내고 막 꺼낸 이불솜처럼 무겁게 축 늘어지고 쳐졌다. 양 옆을 보니 우리 남편은 몸 전체가 바닷물에 팅팅 불어서 코까지 커져 있는 상태였다. 한편 1호는 엄마 아빠와는 다르게 여전히 깃털처럼 가볍게 파도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었다. 남편과 나는 진창이 된 서로의 모습을 보고 낄낄 웃었다.
한 시간 반 정도가 지났을까. 중심을 잡고 파도를 타느라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물미역처럼 흐물거리는 상태가 된 나는 난다에게 조금 쉬었다 타자고 했다. "안돼 안돼 누나! 파도 더 타야 해!!!" 하며 소리치는 난다에게 "넌 이십대자나 난 올해 사십이라고! 힘들어 죽을 것 같아! 좀 쉬자!" 라며 징징거렸다. 소리치는 나를 무시하며 난다는 내 보드를 힘껏 밀었고 결국 그의 열정에 못 이겨 열심히 양팔을 저으며 패들링 했다.
패들링을 하다 말고 잠시 멈춰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붉은빛으로 물든 하늘이 보였다. 꾸따비치에 노을이 지고 있었다. 하늘이 옷을 갈아입는 시간이다. 난다의 목소리, 내 얼굴을 정면으로 때리는 파도를 무시하고 그 순간 보드에 누워버렸다. 보드에 귀를 대니 파도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그 상태로 선셋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온 우주가 날 감싸고 있는 편안함이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 파도 위에서 이대로 죽어버려도 좋다' 싶을 정도로 마음이 나른해지는 게 아닌가. 처음 느끼는 낯선 감정이었다. 그 7초의 시간도 잠시 난다가 "누나 지금이야 일어나!!" 외친다. 그 소리에 벌떡 일어나 그렇게 나는 올해 나이 불혹에 파도를 탄다. 찰나의 순간 생각했다. 십 대 이십 대도 아닌 지금 이 순간에도 이렇게 서핑을 할 수 있는데 나는 이제 못 해낼 것이 없다고. 겁나는 것이 없다고.
이상한 순간들이 많았던 하루였다. 강습이 끝나고 가족들과 꾸따비치를 걸었다. 몸은 무겁지만 가볍고 나른한 마음이 낯선 하루였다. 기분이 좋아 소리를 많이 질러서였을까. 목에서는 계속 쉰소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