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숭한 얼굴로 노트북 앞에 앉아있다. 남들이 시킨 적도 없고 이 시간에 다른 것을 해도 되는데 굳이 이렇게 앉아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옥스퍼드 사전이 올해의 단어로 “뇌 썩음(brain rot)”을 선정했다. 글을 읽거나 쓰는 시간은 현저히 줄어들고 소파에 심드렁하게 누워 손 안의 작은 세계로 빠져든다. 사소한 영상들을 보며 뇌를 쓰지 않으니 지적 능력은 퇴보하고 우리는 자극적인 영상과 쇼츠 및 sns에 중독되어 간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더 재밌는 쇼츠를 보고 싶어서 화면을 터치하고 또 터치하는 순간이 많지 않았던가. 그렇게 영상을 보고 나면 나는 무채색 인간이 되어 있었다. 하루하루 유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유채색 인간인데 거대한 쇼츠 세상 속에서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무채색 인간이 따로 없었다. 물론 삶의 도움이 되는 훌륭한 영상들도 많다. 하지만 남의 편집된 삶을 엿보고 있자니 빈 껍데기가 된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하는 시간보다 읽는 책의 양이 점점 더 늘어났다. 소파나 식탁 의자에 캐주얼하게 앉아 유튜브를 보는 대신 무엇을 끄적이거나 글을 읽었다. 피곤해서 눈이 감겨도 읽었다. 눈이 침침한데도 노트북 앞에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렇게 하고 나면 하루를 온전히 내 마음대로 잘 보낸 것 같은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 유채색 인간이 되어 있었다. 유채색 인간은 몹시 인간적인 사람이라 좋아요 수가 많으면 그날은 기분이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다가도 공들여 쓴 글인데 사람들이 별로 좋아해 주지 않을 때는 쥐가 되어 쥐구멍을 찾는 심정일 때도 있었다. 확실한 것은 그럴수록 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갈증이 생긴다는 것이다. 재밌는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으면 연관된 생각들이 둥둥 떠다녔다. 그것을 잡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계속 훈련 중이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그래도 계속 조금씩 써내려 가다 보면 어느 지점에서는 되고 싶은 나와 만나지 않을까.
진정한 사명은 자기 자신에게 도달하는 것 단 한 가지뿐이라는 데미안의 말처럼 나는 글을 쓰며 결국 나 자신과 마주한다. 나의 지극히 평범하고 작은 세상 안에서 조그마한 글이 태어난다. 매일이 비슷해서 지겨울 수 있는 하루를 글쓰기를 통해 특별하게 만든다. 그리고 다른 의미로 브런치를 통해 다른 독자들 작가들과 연결되는 느낌을 받는다. 그들 모두 글을 쓰며 애쓰고 있으니 말이다. 다른 작가들이 쓴 글에 나는 공감하고, 손바닥 위에서 보는 나의 글에 어떤 이들이 공감해 준다. 멈추지 않고 조그마한 기록이라도 남기기 위해 부지런히 글을 쓰는 우리 모두를 응원한다. 생각하는 것으로만 멈추지 않고 결국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밖으로 끄집어내어 쓰는 사람, 우리는 그렇게 작가가 된다. 그래서 나는 내일도 다음주도 부숭한 얼굴로 노트북 앞에 앉아 있을 것 같다. 노트북 옆에는 감홍사과 대신 충주사과가 놓여있는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