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잘 가, 또 만나!

by 미아

생각해 보니 여리와 본격적으로 친해진 건 1년 남짓밖에 안 되었다. 단지 내 놀이터에서 함께 놀고 있던 준서 친구의 엄마였다. 아이들 때문에 어찌어찌하다 전화번호를 주고받았지만 그 이후 따로 연락한 적은 없었다. 그래도 여리네가 바로 우리 집 앞동에 살다 보니 단지 내에서 자주 마주쳤고 그때마다 둘 다 환한 미소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본격적으로 여리와 친해진 건 같이 PT를 받게 되면서부터였다. 열심히 함께 헬스장을 다니면서 운동, 건강, 선생님과 아이들 관련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에게 공통점이 많다는 걸 알았다. 아이 둘을 키우며 공감되는 상황도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성향은 또 반대였다. 나는 MBTI가 E인 외향인인데 여리는 전형적인 I 내향인이었다. 어찌 됐건 5년을 알고 지내도 서먹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단 5일을 알고 지냈는데도 편안한 사람들이 있는데 여리는 후자였다.


작년 겨울쯤 몇 달 사이로 우리 둘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찾아왔었다. 여리의 가장 친한 친구가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났고 나는 친한 친구 남편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생각지도 못한 부고에 황망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어 친구 남편의 장례식을 다녀온 후 침대에 모로 누워 며칠을 그저 가만히 있었다. 남편을 잃은 친구의 얼굴과 아직 아빠의 죽음이 와닿지 않았던 조금은 천진한 아이들의 모습이 겹쳐지며 작년 겨울은 지독히도 마음이 쓰라리고 아팠다. 희망의 불씨가 한 톨도 남아있지 않던 겨울이었다. 그런 일이 있고 한 달 뒤 엄마의 병명을 알게 됐다. 내 마음은 지옥불구덩이 한가운데에 있었다.


운동을 하며 거의 매일 보는 사이였기에 여리는 내게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이슈를 알았다. 말하고 싶지 않아도 그날의 기분은 내 얼굴의 자연스럽게 묻어났기에 여리는 내게 묻지도 않고 짐작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짐작은 사실이었기에 여리는 내게 따뜻한 위로를 자주 건넸다. 세심하지 않고 무심하게 툭 던지는 여리의 말들은 왠지 모르게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엄마의 병명을 알고 공기 중에 흩뿌려지는 나의 우울함을 감출 길이 없어 고개를 떨군 채 땅만 보고 걸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단지 내 저 멀리서 걸어오고 있던 여리는 나를 보자마자 물었다.

"어디 다녀와?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무슨 일 있냐는 말이 그토록 무겁게 여겨진 날이 없었다. 무슨 일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정말 무슨 일이 생겼으니까. 길 위에 서서 엄마를 잃은 어린아이처럼 흐느끼는 나를 보고 여리는 그저 꼭 안아줄 뿐이었다. 여리의 벌게진 눈가 밑으로도 눈물이 톡톡 떨어졌다.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날들이 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둘을 감싸고 있던 차가운 공기, 옷의 바스락 거리는 소리, 나를 보고 있는 상대방의 표정 이런 것들이 마치 내 머릿속에 각인된 하나의 이미지처럼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난다. 무심히 같이 눈물을 흘리며 안아주었던 것이 내게 꽤나 위안이 됐던 그런 날이었나 보다.


엄마를 집에서 간병하고 있을 때였다. 엄마 배에 면역 주사를 직접 놔야 하는데 처음 남의 몸의 주사를 놓는 터라 내 손은 엄마 배 위에서 갈팡질팡 하고 있었다. 그럴 때도 앞동에 살고 있던 여리가 와서 도움을 주었다. 여리는 간호사였기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정확한 지점에 주사 바늘을 꽂았다. 그리고 내게 주사를 놓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나이 들어 한두 살 차이는 다 친구라고 퉁 치지만, 법적으로 나보다 한 살 어린 여리는 어쩔 때는 나보다 열 살은 많은 언니 같았다. 또 부모님이랑 같이 새벽부터 고생하며 담은 김장 김치, 부모님이 직접 농사지은 수박, 애호박, 대파를 건네주는 여리의 손에는 항상 나와 우리 가족까지 생각해 주는 배려와 사랑이 담겨 있었다.


높이 던져 각각 저 멀리로 흩뿌려진 공깃돌처럼 내 친구들은 다 제각각 타지에 산다. 서울, 대구, 중국, 영국에 살고 있는 오래된 친구들이 이따금 그리웠다. 나 홀로 세종에 살면서 시시껄렁한 농담 하나 주고받을 친구가 없다는 사실에 외로움이 재크의 콩나물처럼 자라 버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기분이 가끔 염소 같을 때 전화 한 통화면 기꺼이 나를 위해 외투 걸치고 나와줄 수 있는 친구 한 명이 여기에도 있다는 걸 말이다.


지금은 여리와 예전처럼 열심히 운동을 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또 다른 모습으로 즐겁다. 자주 보는데도 1년 만에 보는 친구처럼 만나자마자 이야기를 토해낸다. 그리고 함께 좋은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점심으로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간다. 나는 산미 있는 커피, 여리는 고소하고 묵직한 라떼를 주문한다. 취향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우리는 오늘의 즐거움을 찾고 그 행복감을 마음 속에 품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서로 뒤돌아보며 외친다.


"잘 가! 또 만나!"



keyword
금요일 연재
이전 05화평범한 하루를 특별하게 바꾸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