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면 놓칠 수 있는 것들

조기승진 에피소드

by 토비


직급체계를 유지하는 사기업들에서 직급별 체류연한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대개 주니어 직급으로 분류되는 사원, 대리 직급은 합하여 총 8년 내외 정도다.


나는 석사 학위를 1년 인정받아 3년 간 사원 생활을 했고 4년 차에 대리로 승진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2년 반 정도 대리로 일을 하다가 운이 좋게도 조기 승진이라는 경험을 하면서

남들보다 조금 빠르게 과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대리 생활을 그리 오래 하지는 않은 셈이다.


사실 HR을 포함한 스탭 부서에서의 조기 승진(혹은 발탁, 특별 승진이라고도 하는)은

생각보다 쉽게 발생하지 않는다.

조직에 기여할 수 있는 성과를 정량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돌이켜 보면 나는 운이 굉장히 좋았다고도 말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생각한 조기승진의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정도인 것 같다.



#1


당시 팀장님이 급작스럽게 퇴사하셨고, 나는 팀장 대행 역할을 맡게 되었다.

업무 공백을 최소화하고, 팀 후배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나름 중심을 잡아야 했다.


‘이끈다’는 표현보다는 ‘버텼다’는 말이 더 맞는 시간이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책임감과 부담감 그리고 중압갑이라는 감정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처음으로 ‘내 일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구나’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팀원들이 일에 동기부여하도록 만드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느끼면서 리더십의 어려움을, 그리고 관계의 무게를 실감했다.



#2


그 무렵, 팀 내에서 중요한 일들을 연이어 맡았다.


조직의 주요 직군을 대상으로 직무분석 프로젝트의 PM을 맡아 끝까지 완수했고,

조직 적정인력 산출 작업을 위해 여러 사업장을 다니며 발로 뛰었다.


마침 그 업무들이 소속 임원, 더 나아가 사장님의 주요 관심사이기도 했고,
결과물의 임팩트가 제법 컸기에 나에 대한 신뢰도 따라 올라갔던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정기 승진 시즌이 아닌 여름에 갑작스레 승진을 하게 되었다.

이후 몇 달간 회사 생활을 하면서, 내게는 미묘한 변화가 찾아왔다.




조직의 주요 업무를 담당하고, 성과를 내는 날들이 이어지면서
‘나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고 인정받는 사람이야.’라는 생각이 조금씩 자라났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내 말이 틀릴 리가 없어’

라는 확신 비슷한 감정도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아마 이런 생활이 계속되었다면,

언젠가 ‘내가 항상 옳다’고 믿는 위험한 리더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인사조직의 보스였던 상무님은

이따금씩 나를 불러서 때론 날카로운 말로, 때론 은근한 질책을 하시곤 했다.


그 순간에는 '왜 이렇게까지 하시지?' 싶었지만,

지나고 돌이켜 봤을 때, 그 모든 말들이 내가 흐트러지지 않게 도와준 감사한 장치였다고 생각한다.



그해 연말, 나는 성과 평가에서 B 등급을 받았다.

새로 부임한 팀장님은 A를 주셨지만, 상무님께서 최종적으로 B로 내리셨다고 했다.


면담 자리에서 상무님이 물으셨다.


“아쉽지 않아?”


“제가 B를 받아서, 팀 후배가 A를 받을 수 있다면 그걸로 괜찮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상무님은 그때의 내 태도에 조용히 미소 지으셨다고 한다.






어떤 일이든 너무 빠르면 탈이 나는 법이다.


내게 브레이크를 걸어준 고마운 상사가 있었기에, 나는 적절한 속도로 배울 수 있었고,

이 경험은 앞으로도 적정 속도를 유지하면서 더 성장하기 위한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께서도 나만의 속도를 유지하고 조율하면서 단단하게 성장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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