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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Nov 18. 2024

보사노바가 들리는 고아의 풍경

고아 공항 밖으로 나와 바깥 풍경을 바라보니, 여행을 왔다는 사실이 체감되었다. 답답했던 마음이 환기되며 상쾌한 바람이 부는 듯했다. 남편과 나는 서로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아, 그래도 오긴 왔다!”


우리는 예약해 둔 쿠킹 클래스로 이동하기 위해 ‘고안마일즈’라는 택시 예약 앱으로 택시를 호출했다. 한 시간은 가야 하는 거리라, 이동 중 나는 태블릿을 꺼내 글을 쓰고, 남편은 핸드폰으로 메일을 확인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둘의 눈은 자연스레 창밖을 향했다.


하늘을 찌를 듯 무성하게 자란 야자수들이 족히 이삼십 미터는 되어 보였고 그 사이를 메우는 바다와 강, 크고 작은 수많은 호수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바닷가 휴양지로 유명한 줄로만 알았던 고아는 물이 많은 도시였다. 몸통 두꺼운 나무들이 호수인지 늪인지 알 수 없는 물가에 반신욕하듯 몸을 담그고 있는 모습들도 볼 수 있었는데 신비스러우면서도 인상적이었다. 동시에 어떻게 썩지도 않고 저렇게 자랄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일었다.


고아의 풍경을 바라보다 보니 동남아의 어딘가와 닮았다고 생각했는지 갑자기 머릿속에서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발리 신에서 나왔던 베벨 질베르토(Bebel Gilberto)의 ‘삼바 다 뱅상’ (Samba da Bencao)이 흘렀다. 약간 허스키한 그녀의 보이스로 부드럽게 부른 이 보사노바 음악은 처음 들은 그 순간부터 잊히질 않았던 너무 아름다운 곡이었다. 축복의 삼바라는 제목의 이 노래는 포르투갈어로 되어있는데 의미를 잘 알 수 없지만 나른한 곡의 분위기 때문인가 나에게 이 노래는 여유의 상징 같은 노래가 되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여행 내내 이 노래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수영도 잘 못하는 나는 어렸을 때부터 물가를 참 좋아했다. 조용하고 한적한 자연 속에 물결만 찰랑거리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어찌나 마음에 큰 위안을 안겨주는지. 물가가 있는 곳에 머물고 있으면 일상을 탈피해서 나만의 휴양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특히 몸과 마음이 답답할수록 난 더욱 물이 있는 곳으로 갔다. 서울에 있을 땐 한강을 종종 찾았고 인생에서 가장 지친다 싶었던 시기에는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따 동남아 바다의 물속으로 풍덩 빠져들었다.


생각해 보니 이런 성향은 타고난 성격과도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주변에선 나를 활동적이고 발랄한 쌉T 인간으로 보지만 이건 나의 일부일 뿐이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난 쑥스러움을 많이 타서 얼굴도 잘 빨개지고, 걱정도 생각도 너무 많은 편이고, 잠이 쉽게 들지 못하고, 논쟁을 최대한 피하고 싶어 하고, 조용한 곳에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해야 하니 성격 대론 살 순 없어 생존을 위한 사회적 성격이 생겼다. 밖에 나가면 더 밝아 보이려 노력하고, 나름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려 노력했더니 이제는 이 모습도 내 일부가 되었다. 나와 정말 가까운 그리고 오래된 지인이 아니고선 전자의 모습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내가 물가로 휴가를 가는 것은 열심히 살다가 가끔 물고기가 산소를 얻기 위해 수면 위로 입을 뻐끔하듯이 나도 농도 짙은 산소를 들이마시러 빼꼼 고개를 내미는 행동인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창밖의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택시가 초록빛 가득한 작은 마을로 접어들더니 하나둘 컬러풀한 포르투갈 스타일의 집들이 나타났다.


선명하고 밝은 페인트들로 건물 전체를 칠하고, 대비되는 색으로 기둥이나 창틀에 포인트를 준 건물들이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색감을 너무 좋아하는지라 보고 있으니 감탄이 나오고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동화 속에 나오는 집 같기도 하고, 버터크림 케이크 같기도 한 이런 집들은 마음속에 숨어있던 동심을 자극했고 컬러풀한 그림을 그리는 나에게 영감을 주었다.


리스본에 갔을 때도 이런 건물들이 참 예쁘다 생각했는데 고아 또한 그랬다. 리스본과 다른 건축 양식이 있다면 지붕인 것 같다. 고아는 비가 많이 내리는 곳이라 그런지 물 빠짐을 위해 모든 지붕들이 초가집처럼 완만하게 아래를 향해 기울어져 있다. 햇빛을 가리기 위한 넓은 처마 그리고 테라코타로 만든 짧고 작은 타일들을 촘촘히 얹어 만든 검붉은 지붕들은 고아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난 한참 건물 감상에 푹 빠졌다. 이 이국적인 컬러들과 앤틱한 디자인들은 내가 고아 여행에서 기대했던 부분 중 하나이다. 매일 보는 아파트, 고층의 세련된 건물이 아닌 그 지역 고유의 문화의 색을 담뿍 가지고 있는 개성 있는 것. 모두가 모던의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 휩쓸려 가지 않는 강한 정체성을 지닌 어떤 것. 나는 그런 것들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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