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6일 고아행 비행기를 놓치다
원래 우리가 예약한 비행기 시간은 5시 반, 우리가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4시 20분
남편의 약간의 늦잠, 마무리 짐 싸기, 마지막 집 점검 등으로 준비 시간이 오분 십분 늘어나다 보니 빚어진 일이다. 도대체 뭘 믿고 이렇게 느긋하게 준비했나 싶을 정도로 둘 다 별생각이 없었다. 공항에 가면서 시계를 보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굳이 이 불안을 전하고 싶진 않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론 팔년 전 혼자 런던에서 리스본으로 여행을 가려 했을 때 비행기를 놓친 기억이 되살아났다. 당시에는 공항버스가 출근길에 꽉 막혀 예상시간보다 공항에 한 시간 더 늦게 도착해서 놓친 경우였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새벽이라 뻥 뚫려 있는 도로를 차로 시원하게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우리가 타야 하는 항공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근데 꼭두새벽부터 무슨 일인지 평소와는 달리 구불구불 몇 줄이 겹친 대기라인 안에 사람이 가득했고 그 밖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라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체크인 대기를 하고 있었다. “망했다.“ 우린 간과했었다. 오늘이 인도의 축제 휴일인 디왈리 직전 주말이었다는 것을… 이건 마치 추석에 제주도 여행 가는데 김포공항에 비행기 착륙 1시간 전에 도착한 거나 같은 상황이었다.
오늘 바쁜 날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듯이 이 이른 시간에도 항공사의 데스크는 풀로 가동하고 있었고 대기 라인에 있는 직원들은 비행기 시간대별로 승객들을 체크인 대기 줄로 들여보내고 있었다. 우리도 바로 대기 줄로 섰지만 시간이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시간은 계속 흘렀고 일분이 한 시간 같이 느껴졌다. 등줄기에는 땀이 흐르고 심장 박동수가 빨라졌다. 직원들이 우리 비행기보다 10분 뒤 출발인 뭄바이행의 라스트 콜을 외쳤다. ”5:40 뭄바이, 라스트 콜! 승객들께서는 앞으로 나와주세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우르르 몰려 나갔다.
나는 그 직원에게 5시 반 비행기라고 얘기를 했고 그는 우리가 앞으로 설 수 있게 도와줬다. 체크인 데스크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4시 40분. 숨이 턱턱 막혔다. 항공사 직원은 우리 티켓을 확인하더니 매니저를 호출했다. 그는 우리가 수화물로 넣어야 하는 사이즈의 캐리어가 있단 사실을 확인하고 고개를 젓고 떠났다. 결국 우리가 들은 얘기는 “당신의 비행기는 이미 20분 전에 게이트를 닫았습니다. 공항 밖에 있는 항공사의 데스크를 이용하여 다시 티켓을 끊어주세요.“였다.
‘아악! 내게 왜 또 이런 시련이!’ 남편은 인도 내 출장을 다닐 때 수화물로 부칠 짐을 들고 다니지 않아 생각을 미처 못했다고 했다. 그럼 나는? 왜 그렇게 태평하게 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국내선이어서 느긋하게 왔던 것 같다. 뭐가 됐든 우리의 잘못이니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만 나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고 시작부터 일정이 틀어졌단 사실에 예민해져서 까칠한 밤송이 모드가 되었다.
공항 밖으로 나가기 위해 문을 찾았다. 하지만 모든 문 옆에 서있는 군복 입고 기관총을 맨 근엄한 시큐리티 직원들은 이로 가라 저로 가라 하며 항공사 직원을 데려오라는 둥 애매하게 안내를 했다. 그 바람에 우리는 공항 내에서 헤매게 되었다. “으휴!” 한숨만 푹푹 나오고 여행하기 전부터 짜증이 폭풍처럼 밀려왔다. 결국 우리는 항공사 체크인하는 구역 근처에 있던 문에서 항공사 직원과 시큐리티 직원의 승인을 받고 뭔가를 작성한 뒤 나갈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항공사 데스크로 가니 우리처럼 비행기를 놓친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다들 저마다의 이유가 있겠지만 이미 화가 잔뜩 나서 씩씩거리며 줄을 서있다. “이게 다 디왈리 때문이야!”라는 게 공통된 핑계였다. 그러니 이건 내 잘못이 아니라고 합리화 하려는 것 같았다. 다들 답답한 마음으로 줄을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어떤 남성이 자기가 더 급하다며 맨 앞으로 새치기를 하려 했다. 나의 예민 가시들이 고슴도치처럼 바짝 세워지는 것을 느꼈다.
다행히 직원은 뒤로 가라며 통제를 했고 바로 우리 뒤로 와 줄을 섰다. 그런데도 뒤에서 계속 티켓을 흔들며 급하다고 소리를 쳤다. 들어보니 목적지만 다를 뿐 나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제발 내 앞으로만 끼어들지만 마라 생각했다. 나도 비행기를 놓쳐 속이 터지는데 앞으로 끼어들면 쌈닭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분은 뻔뻔하게도 본인 앞에 있는 사람들이 예약 변경을 하고 있을 때마다 말로 새치기하는 스킬을 연거푸 시전했다. 창구에 있던 직원이 참다 참다 “저는 동시에 두 명을 처리할 수 없어요!”라며 제재를 가했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왔다. 우리는 하는 수없이 거의 왕복 값과 큰 차이 없는 편도 티캣을 다시 구매해야 했다. 최대한 불쌍한 눈으로 “애니 디스카운트?”라며 조심스레 물어보니 몇 프로 정도는 할인이 될 거라고 했다.
남편은 “우리 앞으로 40년은 더 넘게 같이 여행 다녀야 하는데 좋은 경험했다 생각하자”라며 나에게 미소 지으며 위로해 주었다. 사실 우리의 거의 모든 여행이 나의 선호도에 맞춰 움직이다 보니 비행기 티켓 캔슬로 인해 여행이 틀어진 게 다 내 잘못인 것만 같아 남편에게 엄청 미안했고 마음이 무거워서 더 멘붕이 왔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씩씩거리고 있었는데 차분하게 착착 해결책을 제시해 주며 심지어 온화하게 저런 말을 해주는 남편의 표정을 보니 화가 사악 누그러졌다. 어찌나 고맙던지… 그래서 나도 ”그래, 국제선 아닌 게 어디야, 재밌는 글감 생겼다고 생각하지 뭐“했다.
이래서 반대 성격을 가진 사람을 만나야 하나 싶기도 했고. 냉정하다고 생각한 단점이 이럴 땐 차분한 장점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공항에서 발을 더 동동 구른 데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도착 당일 아침 9시 반에 시작하는 쿠킹 클래스 예약을 잡아놨기 때문이었다. 고아에는 공항이 두 개가 있는데 원래 가려고 했던 GOI 공항에서는 쿠킹 스튜디오까지 택시로 10분이면 가는 가까운 거리였고 7시 전 공항 고아에 도착 예정이었던 우리는 여유 있게 근처 카페에서 커피나 한잔하고 넘어가면 되겠다 하고 계획했다.
하지만 이 비행기를 놓쳤으니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기대했던 일정이었는데 포기해야겠구나 생각하고 취소 요청을 하기 위해 왓츠앱 메신저를 열었다. 어제 선생님과 주고받은 메시지의 마지막 예약 확정 부분을 다시 확인했는데 시작 시간이 10시 반이라고 써있었다. ”엥? 시간이 언제 바뀐 거지?“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수업을 듣는 사람이 우리 밖에 없어서 아침 로컬 마켓 투어가 취소되었고 한 시간 뒤에 시작했다는 것이다. 남편은 이 메시지를 다시 보더니 아쉬워하는 나를 위해 해결책을 제시했다. ”두 시간 뒤에 출발하는 GOX 공항행으로 편도가 있어. 택시 타면 스튜디오까지 한 시간 정도 걸리니까 10시 반까지는 도착할 수 있어. 어떻게 할래? 네가 결정해.” 그래서 난 “고!”를 외쳤다. 남편 없었으면 어쩔뻔했는지. (여행기를 쓰는데 남편 자랑하는 팔불출 스토리 같다는 느낌도 들고…)
아침 9시 드디어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고아 공항에 도착했다.
비싸게 온 고아 두 배로 더 재밌게 즐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