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쿠킹 클래스에서 만들 요리는 총 다섯 가지였다. 인도 국민간식인 사모사와 그에 곁들일 민트 처트니, 고수 소스로 만든 치킨 카프리얼, 매콤한 향신료를 묻혀 튀긴 마살라 프라운 프라이, 코코넛 향이 일품인 양배추 볶음 요리 캐비치 푸갓, 그리고 볼로 미모사라는 코코넛 파이 디저트였다.
이 메뉴들을 선택했을 때부터 로컬 요리들을 직접 해볼 수 있다는 사실에 들떴었다. 특히 기대했던 요리는 치킨 카프리얼이었다. 왜냐하면 바로 고수 소스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한국에 있을 때도 고수를 워낙 좋아했지만 우리나라에는 깻잎이나 미나리, 참나물 등 향이 좋은 잎채소들이 많아 고수를 자주 먹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인도에선 한국에선 먹던 그 이파리들을 구할 수 없으니 저렴한 고수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고기 쌈 싸먹는데도 쓰고, 샐러드에도 넣어 먹고, 파스타에도 넣어 먹을 정도로 요즘 말하는 고수 처돌이가 되었다. 음식점을 갈 때도 그린 소스, 코리앤더 이런 거 써있으면 한 번 시켜 보는데 매운 고추가 같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 개인적인 입맛에는 너무 잘 맞아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니 기대할 수밖에.
본격적인 조리를 하기 앞서 선생님은 식재료에 대해 설명해 주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 보는 생소한 향신료들이 어찌나 많은지 과연 ‘향신료의 나라’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테이블 위의 재료만 해도 수십 가지였는데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다 냄새도 맡아보고 조금씩 맛도 보았다. 뭔지도 모르고 주는 대로 맛을 보다 보니 예상치 못한 신맛, 짠맛, 생전 처음 맛보는 희한한 맛들에 얼굴이 누가 한대 친 것처럼 쪼그라드는 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게 쿠킹 클래스의 묘미 아니겠는가 하며 물과 함께 꿀떡꿀떡 넘겼다.
우리는 첫 요리로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리는 코코넛 파이부터 먼저 만들었다. 빵을 워낙 좋아하다보니 집에서는 좀 건강하게 먹고자 요리책 보고 독학으로 저탄수 베이킹을 시작한지 일년 정도 되어가는데 밀가루로 제대로 된 디저트를 만들어보긴 처음이었다. 이 참에 잘 배워서 나중에 키토 버전으로 응용해 봐야겠다 생각하며 힘차게 시작했다.
하지만 이게 웬걸? 첫 시작인 반죽부터 만만치 않았다. 손바닥만한 파이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반죽을 치대고 밀고 치대고 밀고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하는데 벌써 초심이 달아나려 했다. 요리하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장시간 요리도 괜찮은데 이 단순 반복이 사람 잡는다. 사실 저탄수 베이킹을 하다 보면 반죽을 치대는 과정이 많지 않고 그것도 집에선 반죽기로 하는 편이라 이런 고됨을 기대하진 않았는데 하는 마음이 생겼다. 밀가루 반죽은 이런 나의 마음도 모르고 글루텐을 아주 탱탱하게 생성해 계속 꾹꾹 눌러가며 계속 힘을 쓰게 만들었다. 짐에서 PT로 만든 나의 이두와 전완근을 여기서 써먹을 줄이야...
옆에서 선생님의 조수분이 같이 도와주시는데도 불구하고 반죽 만들고 속에 들어갈 재료까지 지지고 볶는데만 삼십 분이 훨씬 넘게 걸렸다. 나머지 언제 다하지?라는 생각이 들 때쯤 남편 눈치를 한번 스윽 봤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좋아 보였다. 남편까지 데리고 온 마당에 나도 즐기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줘야지! 하며 다시 인내심을 장착하고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움직였다. 막상 예쁘게 모양이 나면서 정말 베이커리에서 파는 것 같은 제대로 된 파이가 나온 걸 보니 무지 뿌듯했다.
파이를 예열된 오븐에 넣고 바로 이어 사모사 피를 만들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시범을 보여주신다며 밀가루에 뜨거운 기름과 물을 부어 익반죽을 만드는데 이것도 얼마나 많이 손이 가는지 아까의 파이는 약과였구나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잠을 거의 못 잔 상태로 와 피곤해서 그런 건지 원래 속세와 문명에 찌들어 그런 생각이 든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세상에 좋은 반죽기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걸 일일이 손으로 하나 현타가 왔다. 최근엔 손가락 관절들이 요리할 때마다 뻐근했던지라 이 핑계 아닌 핑계로 난 일찌감치 손을 놓고 사모사 반죽을 남편에게 넘겼다.
사람이 참 간사하다. 처음에 선생님이 클래스에서 진행될 메뉴를 보내줬을 땐 사모사가 들어있어서 설렜었다. 겉바속촉하게 튀긴 반죽도 맛있고 속에 들어가는 재료들도 심플하지만 인도향이 나는 향신료들이 들어가 입맛을 자극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이번에 배우면 집에서 감자 사모사도 만들고 치즈며 콘이며 다양하게 채워 넣어서 해먹어 봐야겠다 했는데 이 과정을 보니 사모사에게 정이 좀 떨어졌다. 사먹으면 한 개에 몇 백원 밖에 안 하는 간식인데 굳이...라는 생각에 더 하기 싫어졌던 것이다.
근데 한 편으로 드는 생각이 만약 얘가 한 개에 오천 원, 만원 하는 음식이었다면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오히려 이 레시피를 알려주는 것에 감사하지 않았을까였다. 좋아하는 일이라면 황소처럼 돌진해서 막 일을 벌여 놓는데 마무리까지 가기는 쉽지 않은 나의 성격 탓인가 싶기도 했다.
거의 한 시간가량이 지난 뒤 드디어 반죽 시간이 끝났다. 으드득 으드득 거리며 목과 어깨를 스트레칭한 뒤 소스들과 나머지 세 개의 요리를 시작했다. 준비된 재료들을 칼로 찹찹 썰고 블렌더로 드르륵 갈고, 양념 만들고 하면서 요리하는 속도가 붙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재밌어졌다. 역시 요리는 리드미컬하게 속도 있게 움직이면서 하는 게 개인적 성향상 더 잘 맞는 것 같다. 해외 쿠킹 클래스를 태국에서 처음 해본지라 비교를 안 할 수가 없는데 확실히 많이 썰고, 절구에 빻고, 휘리릭 불에 조리하는 태국 요리가 더 다이나믹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던 것 같다.
완성작들이 하나둘씩 나오면서 식사시간이 기대가 되었다. 중간중간 맛본 매콤 새콤 짭조름한 소스들은 식욕을 자극했고 지글지글 튀기고 굽는 고소한 냄새가 여기저기서 나니 잔칫상 차리는 기분이었다.
거의 요리가 마무리됐을 때쯤 남은 튀김이나 플레이팅은 조수 분이 마무리해 주신다 해서 선생님은 우리에게 시원하게 맥주 한잔하라고 권하셨다. 한여름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요리한 우리는 인도에서 이게 웬 횡재냐며 당연히 마시겠다고 했다. 냉장고에서 갓 꺼내주신 버드와이저 두 병을 바로 따서 마시는데 캬~ 노동 후 맥주는 역시 진리이다.
정원에서 바깥바람 좀 쐬다가 들어오니 테이블에는 선생님께서 미리 만들어두신 차파티와 채소 풀라오와 함께 우리가 만든 요리들이 뷔페처럼 한 상 차려졌다. 화려하진 않지만 정감 있고 소박한 집밥 요리들이었다. 이 순간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 사진도 찍고 영상도 찍었다. 하나하나 조금씩 한 접시에 담아 맛을 보니 아침부터 부랴부랴 달려온 보람이 느껴졌다. 간도 딱 좋고 너무 자극적이지 않아 정말 맛있는 집밥 먹는 기분이었다.
선생님이랑 이런저런 사적인 얘기를 하다가 자제분들이 다 미국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미국에 사는 분들은 엄마가 만들어주는 이 맛있는 고아의 음식들이 얼마나 그리울까 생각이 들었다가 자연스레 우리 엄마의 집밥이 떠올랐다. 엄마도 한식 쪽으로는 워낙 음식솜씨가 좋으셔서 직접 된장 고추장까지 만드실 정도이다. 집에 갈 때마다 계절별로 나오는 제철 재료들로 청이든 장아찌든 김치든 뭐든 만들고 계셔서 왜 그렇게 사서 고생하실까 사서 드시지 싶었는데 나도 결혼하고 매일 요리를 해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뭐든 내 눈으로 확인한 더 좋은 재료로 건강하고 맛있게 만들어 먹여주고 싶은 마음이다.
늘 남편에게 꼰대처럼 얘기하지만 요리는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