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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의 요가 리트릿 숙소를 예약한 이유

by JANE

요가를 처음 시작한 건 대학생이 된 그해부터였다. 추웠던 겨울 아파트 옆 상가 건물에 요가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호기심에 등록을 했다. 어떻게 하는 운동인지 자세히는 몰랐지만 ‘요가’라는 단어가 주는 차분하고 신비로운 힘이 있었고 내 속에 고요함을 선호하는 내향형의 자아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 얘기를 들으면 내 주변 사람들은 “뻥 치지마, 니가 무슨 내향형이야!”할게 뻔하지만 내가 느끼기엔 평소 나의 내향, 외향 비율은 51:49 정도 되는 것 같다. 아무튼 이때 시작한 요가는 지금까지도 꾸준하게는 못해도 자꾸 돌아오게 하는 운동영역의 고향 같은 곳이 되었다.


요가에 푹 빠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열심히 동작들을 따라 한 뒤 마지막으로 누워서 깊은 휴식을 취하는 사바사나(양팔 양다리를 편하게 벌리고 누워있는 시체 자세라고 불리는 동작) 시간 때문이었다. 주로 이 시간에는 선생님들이 잔잔하게 자연의 소리들을 스피커로 틀어주는데 이때 명상 상태에 들어가면서 세상만사 걱정과 스트레스들이 머릿속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고 목욕재계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었다. 사바사나는 한 시간 수업 중에 이 오분 십분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 힘은 강력했다. 그럼 그냥 집에서 편하게 침대 위에 누워있지 뭐 하러 요가원까지 오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명상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육체적 수련이 동반된 뒤에만 느낄 수 있는 기분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인도에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들었던 생각 중에 하나가 요가의 나라에 가니 가서 요가 자격증을 따야겠다는 것이었다. 정말 막연하게. 그 이후로 뭘 할 것도 아닌데 요가를 더 알고 싶었다. 더 다양한 동작들이 궁금하기도 하고 배워서 혼자 해보고 싶기도 했다. (뭐든 좋아하는 게 생기면 자격증을 따든 딥러닝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명상과 휴식을 배우고 싶었다. 사바사나 5분은 너무 짧기에 하지만 강력한 힘을 지녔기에 그 시간을 더 길게 늘리고 자주 하고 싶었달까. 방법을 모르니 배우는 수밖에. 게다가 인도에서 요가를 배우는 기회가 내 인생에서 또 언제 오겠는가! 결국 난 인도에 온 첫해 여름에 국제 요가 자격증인 YTT 200시간 티처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수료하게 되었다.


자격증을 준비하면서 자신감이 생겼는지 수료 뒤 진심으로 아파트에서 소수로 요가 수업을 해볼까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 나이에 무릎이 말썽을 부렸다. 당시 무리하게 테니스 레슨을 많이 받았던지라 무릎에 연골연화증이 생겼는데 자격증 따겠다고 매일 몇 시간씩 무릎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두 달간 수련을 하니 통증이 더 심해진 것이다. 아쉽지만 자격증을 딴 뒤로는 집에서 가벼운 동작이나 명상을 하는 것 외에는 요가를 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무릎 주변 근육을 키우기 위해 PT에 더 집중했다. 생각보다 연골연화증은 쉽게 좋아지지 않아 요가와는 점점 더 멀어졌고 늘 그리워해야 했다. 인도에 오기 전까지 한동안 배웠던 에어리얼(공중에서 끈을 잡고 동작해서 무릎에 무리가 덜 가는) 요가를 다시 할까 했는데 우리나라보다 가르치는 곳이 더 없었다.


그러다 하루는 구독하고 있던 콘데나스트 트래블 매거진을 보다가 고아에 요가 리트릿 숙소들을 소개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아름다운 자연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에서 요가를 하고 있는 사진들이 있었는데 보자마자 이끌려 홀린 듯이 폭풍 검색을 시작했다. 그리고 첫 화에서 소개한 것처럼 가장 마음에 들었던 아쉬야나 요가(Ashiyana Yoga)라는 리트릿 숙소를 3박 4일 일정으로 예약했고 6일을 추가해 고아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숙소는 고아 여행의 가장 마지막 일정으로 넣었다. 충분히 먹고 놀고 즐긴 다음 마지막에 디톡스 여행으로 마무리하자는 취지였다.


예약 당일, 오후부터 요가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어서 체크인 시간인 3시에 맞춰 이동했다. 택시를 타고 굽이굽이 시골 동네의 좁은 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오니 간판도 없는 입구에 도착했다. 여기가 맞는 건가 두리번거리던 찰나 바로 짐을 챙겨주는 직원이 나왔고 리셉션으로 안내해 주었다. “나마스테” 하며 밝은 미소로 인사를 해주는 리셉션 직원이 체크인을 도와주었다. 그녀는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요가 및 명상 프로그램들을 친절히 설명해주었고 숙소 안에 있는 시설들을 둘러보기 위해 함께 이동하며 소개해 주었다.


내가 머릿속에 그렸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붉은 테라코타 빛의 작은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고 푸르고 무성한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 사이사이로 들어오는 햇빛들은 이 공간을 더 평화롭게 만들었다. 요가를 할 수 있는 오픈된 공간들, 명상 공간, 많은 휴식처들, 공용 공간, 수영장 등을 보면서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시간이 가고 있다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둘러보면서 몇몇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는데 모두들 먼저 인사도 해주고 표정도 밝았다. 벌써 힐링이 시작되는 것만 같았다.



이 숙소는 여느 숙소들과 달리 방마다 구조도 디자인도 달라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었다. 이 중 내가 고른 방은 파란색의 벽과 다크 우드톤의 가구들이 멋스럽게 어우러진 조드푸르(인도의 블루 시티라 불리는 도시 이름)라는 방이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이 방을 눈앞에서 직접 보고 있으니 마음이 설레었다.



마침내 방에 도착한 우리는 짐을 풀고 잠시 쉬기로 하고 리셉션에서 사진 찍어온 요가 스케줄 표를 확인했다. 매일 요가는 아침 8시와 오후 4시에 진행되고 저녁시간 이후 8시엔 명상시간이 있다고 써있었다. 4시 요가가 생각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걸 확인한 뒤 핸드폰만 보고 있는 남편의 눈치를 슬쩍 봤다. 그는 과연 요가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일단 나는 먼저 요가복으로 갈아입고 자연스럽게 남편에게 “슬슬 옷 입어야지, 30분 남았어!”라고 말했다.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만지는 척하면서 눈 흰자로는 그의 움직임을 봤다. 근데 너무나 협조적으로 “그래 잠깐만, 회사 메일만 확인하고 입을게”라고 하는 것이다. 속으로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아싸!’ 쾌재를 외쳤다. 오랜만에 다시 요가를 할 생각에 벌써 싱글벙글 웃음이 났는데 남편까지 함께 한다니 더욱 신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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