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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 속 평화로운 요가와 명상 세션

by JANE

첫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우리는 거대한 정자같이 생긴 메인 요가 홀로 향했다. 모기가 많은지 하얀 모기장 천으로 옆면이 다 싸여져 있었다. 모기장을 걷고 안으로 들어가니 이미 온 사람들은 익숙한 듯이 매트와 소도구들을 옮기고 있었다. 우리도 눈치껏 이것저것 챙겨 자리를 잡았다. 남편은 오기 전에 자기 혼자 남자면 어떡하냐 했지만 이미 와있던 건장한 남성 몇 분을 본 뒤 안심하는 눈치였다.


수업별로 선생님이 달랐는데 이 수업에는 프랑스에서 왔다는 여자 선생님이 들어왔다. 수업에 참여한 사람들은 우리 둘을 제외한 나머지 8명은 전부 다 유럽에서 온 백인이었다. 고아가 확실히 서양 사람들이 좋아하는 여행지라더니 여기서 더 실감했다. 하긴 고아가 좋아서 정착했다는 사장님 내외도 미국인 부부였다.


사람들이 다 모이자 드디어 요가 시간이 시작되었다. 요가 방석에 앉아 가부좌를 틀고 손바닥이 위로 향하게 두 손을 양쪽 무릎 위에 편하게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눈을 감았다.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잠시 호흡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고… 들이 마시고 내쉬고… 내 몸이 호흡에 따라 차분해짐을 관찰했다.


멀리서 울리는 것 같은 옅은 천둥소리가 선생님 말소리 사이사이 효과음을 냈다. 비가 오겠구나 생각했다. 인도의 우기인 몬순 시즌은 끝났지만 간혹 소나기가 내리는 요즘이었다. 투둑 툭 툭! 스타카토같이 끊어지는 소리의 빗방울이 하나둘씩 지붕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모기장 밖에는 나뭇잎이 바람의 방향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비 오는 날의 요가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절로 미소가 흘러나왔다. 밖에 비가 오면 안에 있는 공간이 더 조용해지는 것 같아 더 집중이 잘 되는 것도 좋고 비 오는 소리가 몸과 머릿속을 시원하게 비워주는 것도 좋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시 눈을 뜨고 천천히 스트레칭을 이어갔다. 투두두두둑! 쏴아!! 빨라진 리듬은 연결음이 되어 더욱 시원하게 쏟아졌다. 더 이상 선생님의 불어 악센트가 섞인 영어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빗소리가 거세졌다. 남편과 나는 서로 눈이 마주쳤고 그저 미소를 지었다. 여기서 키우는 것 같은 개 한 마리가 비를 피해 우리가 있는 공간으로 불쑥 들어왔다. 사람들은 그 개를 반겨줬고 젖은 몸을 눕힐 수 있게 타월 한 장을 깔아주었다. 곧 익숙하다는 듯 타월 위로 배를 깔고 누웠다.


선생님은 잠시 수업을 멈추고 어딘가 전화를 하더니 “라운드 명상실로 옮길게요!” 했다. 그 말을 들은 우리는 바로 주섬주섬 자리를 정리했다. 라운드라는 다른 건물로 가려면 빗속을 뚫고 가야 했는데 돌길이라 미끄러워 막 뛸 수도 없었다. 다들 클래식에 나오는 명장면처럼 그리고 슬로우 모션을 건 것처럼 천천히 뛰어갔다. 나만 이 장면을 낭만이라고 생각한 건 아닌 것 같았다. 비를 맞고 뛰어왔는데도 다들 서로를 보며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웃음은 이 방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금방 전염되었다. 온지 몇 시간 되지 않았지만 지금 이 현재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치유되는 것 같았다.


원형으로 생긴 독립된 공간 안에선 신기하게도 선생님의 목소리가 동굴에 있는 것처럼 울렸다. 더 이상 선생님의 목소리가 빗소리에 묻히지 않는다는 걸 확인한 뒤 아사나 수업이 시작되었다. 선생님은 저녁 수업이라 그런지 조금씩 천천히 몸을 움직일 수 있게 초보인 사람들도 배려해서 어렵지 않게 수업을 진행했다. 주로 밸런싱 동작들, 태양 경배 동작, 척추에 좋은 동작들, 이완 동작들을 한 뒤 사바사나 자세로 릴렉세이션까지 충분히 한 뒤 수업이 끝났다. 완벽한 루틴이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했는데 다 끝나고 시계를 보니 한 시간 반 정도의 수업이었다. 뻣뻣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몸뚱이를 가진 남편도 생각보다 괜찮았는지 “할만하던데?”라며 개운해진 몸을 이리저리 돌려댔다.


수업이 끝나고 맛있는 채식 뷔페를 간단히 먹은 뒤 소화를 시키고 요가 니드라 메디테이션 수업을 들으러 8시 좀 넘어서 다시 라운드로 왔다.


요가 니드라는 잠들지 않는 요가 수면 명상이다. 나는 이 명상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평소 잡생각이 너무 많은지라 생각을 덜어내는 게 힘든데 이 시간만큼은 머릿속을 비우고 온전히 몸과 마음을 다 제대로 쉬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가 매트에 몸을 편하게 뉘이고 눈을 감은 뒤 선생님의 소리를 따라갔다. 영국에서 왔다는 이 여자 선생님은 중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분이었는데 말 한마디를 뱉을 때마다 연극에서 독백을 하는 배우 같았다. 차분하고 명료한 발음으로 시를 낭독해 주는 느낌이었달까. 덕분에 온전히 그 목소리에 집중할 수 있었다.


처음엔 내 호흡을 바라보고, 다음엔 내 신체 부위들을 인지하고, 춥다, 뜨겁다, 기쁘다 같은 원초적인 감정들을 느낀 뒤 그녀는 낯선 공간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조용한 공원으로, 장미들이 만발해 향으로 가득 채워진 곳으로, 유영하는 물고기들이 가득한 연못으로, 새벽의 바다로. 마치 아름다운 꿈을 꾸는 듯이 나는 혼자 그 공간을 계속 따라갔다. 그리고는 다시 어둠으로 가득한 검은 공간 안으로 돌아왔다. 잔잔한 천둥소리가 여기가 현실임을 알려줬다.


이게 무슨 기분인지… 완전히 빠져들었다. 편안했고 감동적이었다. 환희 같기도 하고 슬픔 같기도 하고 뭔지 헷갈리는 감정들이 마음속에서 마구 휘몰아쳤다. 다시 현실로 이 공간으로 내 정신을 데려오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요가 자격증을 딸 때도 매일 이 수업을 했지만 이런 감동까진 느껴본 적은 없었는데 놀라웠다. 이 공간, 여기 모인 사람들, 선생님의 진실한 가이드가 신비로운 하모니를 만들어낸 것 같았다. 이날 저녁, 정말 오랜만에 술도 멜라토닌도 복용하지 않고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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