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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청년 르위스 요가 선생님

by JANE

첫 아침 수업, 남편은 할 일이 있다 해서 혼자 가게 되었다. 입구에 오늘의 선생님을 알려주는 보드에는 르위스 (Lewis)라고 적혀있었다. 여자 선생님이구나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젊은 남자 한 명이 있었다. ‘오분 일찍 오긴 했지만 왜 이렇게 사람이 없지?’라고 뻘쭘해 하던 찰나 혼자 서있는 나를 발견한 그는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하고 악수를 했다. 그리고 영국식 억양으로 자신을 르위스라고 소개했다. 시력이 안 좋은 편이라 멀찍이 서있을 때는 못 느꼈는데 가까이 다가온 그를 보곤 본능적으로 ‘너무 훈남인데?’라고 생각했다. 얼굴은 소년 같은데 그의 몸은 지방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근육 덩어리였고 그의 오른쪽 다리 전체는 검은 문신으로 뒤덮여 있었다. 요가가 아니라 다른 운동을 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금세 사람들이 몰려 들었고 곧 수업이 시작되었다. 수업은 역동적인 동작들로 진행되었고 여기서 받은 사흘 동안의 수업 전체를 통틀어 가장 난이도가 높았다. 어려운 수업이었던 만큼 그는 최대한 많은 설명을 곁들여 동작 하나하나를, 호흡 방법을 신중하게 가르쳐 주었다. 열정적이고 진지하게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의 에너지에 영향을 받은 듯 학생들도 끙끙거리면서 응용동작들까지 최대한 수행해냈다. 전날 저녁 수업은 하면서 땀이 나진 않았는데 오늘은 동작들을 하면서 팔다리가 후들거렸고 매트 위로 굵은 땀방울들이 뚝뚝 떨어졌다.


선생님도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동작을 이어가는데 역광으로 들어오는 햇빛에 움직이고 있는 근육들이 반짝였다. 여태까지 많은 요가 수업을 들어봤지만 순간 아름답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그렇게 힘든 와중에 이게 느껴지는 것이 인간의 신비인 것 같다.) 굳이 어디 근육을 쓰라고 얘기하지 않아도 자기주장이 강한 근육들이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미켈란젤로가 그 옛날 요가 동작하는 모습을 조각으로 만들었다면 저 사람이 모델로 딱이었겠다 싶을 정도였다.


수업이 끝나고 바로 방에 있는 남편에게 가서 이 수업 꼭 들어왔어야 했다며 극찬을 했다. 수업내용도 역동적이어서 재밌었는데 특히 선생님이 너무 “아름다운 청년”이었다고 얘기를 했더니 “너 진짜 아줌마 같아, 아름다운 청년이 뭐냐!”라며 코웃음을 쳤다. “아 진짜라니까! 오빠가 그 선생님 요가 하는 모습을 봤어야 돼!” “네, 아줌마.” 나는 30대가 된 다음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말 하는 게 아줌마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듣긴 했다. 아무래도 어휘 선택이나 말투가 털털하다 못해 내 나이에 맞지 않는 촌스러움이 묻어 있고 너무 진지한 탓인 것 같다. 그래서 위트와 센스가 넘치게 말하는 사람들이 너무 부럽다.


하지만 난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의 외모뿐만 아니라 그가 수업을 이끌어가는 열정과 학생들과 요가를 대하는 진지한 자세는 ‘젊음’, ‘청년’ 이런 단어들을 떠올리게 했다. 왜 순간 잘생겼다, 멋있다 이런 생각이 아니라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마 젊음(Youth)에 대한 찬미였지 않았을까 싶다.


그날 아침 수업은 내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해서 살았던 나의 20대를 회상하게 했다. 그래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나의 20대.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그 어딘가의 중간에서 다치고 깨지고 상처 덩어리인 미숙한 상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요령 없이 열심히 하는 것 외엔 답이 없던 시절. (난 지금도 젊다고 생각하는 30대 후반이지만) 20대의 젊음을 보면 다듬어지지 않은 패기도 꾸미지 않은 외모도 그 모습 자체로 참 아름다운 거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걸 알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끼는 걸까?


남편과 함께 아침을 먹으러 식사 공간으로 내려갔다. 마침 선생님도 식사를 하고 있어서 지나가면서 남편에게 급박하게 툭 치며 “저 사람이 그 선생님이야!” 하며 알려줬다. 그랬더니 남편은 민소매 티셔츠와 반바지만 입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곤 “몸 좋네! 잘 생겼다.” 했다. 그리고는 자극을 받은 건지 갑자기 팔에 힘을 빡 주고 “나도 팔 이렇게 키워야 되는데” 했다. “슨생님, 운동을 하시라고요, 요새 셔츠 팔 부분이 남아돌아요!” 아줌마라고 한 거에 대한 복수였다. 우린 키득키득거리며 유치하게 티격태격했다. 과일 요거트 볼을 한가득 떠온 뒤 우리는 그의 화려한 문신의 배경을 궁금해하며 혹시 격투기 이런 거친 운동하던 사람 아니었을까 추측해 보기도 했다.


“아, 우리 떠나기 전에 이 수업 한 번만 더 있으면 좋겠다, 오빠도 좋아할 것 같은데!” 차분한 요가 말고 다이나믹한 파워 요가도 있다는 걸 알면 남편이 혹시라도 좋아하지 않을까 싶어 이 선생님의 수업에 남편과 함께 참여해 보고 싶었다. 확인해 보자 하고 리셉션 근처에서 스케줄 표를 확인해 보았는데 안타깝게도 우리가 떠난 바로 뒤에야 있었다. “까비!” 진짜 아쉬워하는 나와 아쉬운 척 장난스럽게 연기를 하는 남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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