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 1871
35도를 웃도는 날씨에 하루 종일 땀을 흘리고 걸어 다녔더니 시원한 맥주 생각이 절실했다. 계획했던 일정들을 소화한 뒤 해가 질 때쯤 나와 남편은 레오폴드 카페(Leopold Café)를 찾았다.
이곳을 찾아온 데는 이유가 있다. 카페이기도 하고 바이기도 한 레오폴드는 무려 1871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영업을 할 정도로 장수하고 있는 유명한 레스토랑이다. 영국 통치하에 있을 때부터도 외국인들이 몰려드는 카페로 인기가 있었다고 하는데 2003년에 호주 작가 그레고리 데이비드 로버츠가 쓴 샨타람(Shantaram)이라는 소설이 베스트셀러 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곳을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하게 만든 건 2008년 뭄바이 테러일 것이다.
이 테러는 파키스탄의 테러리스트들이 뭄바이의 유명 호텔들과 민간인들이 몰려 있는 상징적인 장소들에 잠입해 무고한 사람들에게 총기 난사를 하고 수많은 희생자를 낸 사건인데 레오폴드 카페 또한 타깃이 되었고 이곳에서만 10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당시 이 사건은 전 세계에 보도될 정도로 모든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린 일이지만 이 카페의 주인은 대담한 선택을 했다. 그는 테러리스트들이 원하는 대로 겁먹고 숨는 대신 테러에 저항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로 했다. 테러 사흘 뒤, 레오폴드는 총알 자국들을 가리지 않은 채 보란 듯이 다시 오픈했고 당시의 총알 자국들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이런 히스토리 때문에 더 궁금해지고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뭄바이에 여행 오는 사람들은 다 비슷한 생각이지 않을까? 평일 저녁은 빈자리가 거의 없이 계속 북적거렸다. 혼자 온 외국인 배낭여행객부터 커플, 친구들, 가족단위까지 아주 다양한 손님들이 몰려있었고 온갖 언어들이 들리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만큼 또 편하고 캐주얼한 분위기다.
테이블에 앉으니 위생캡을 쓴 직원 한 명이 다가와 메뉴를 건네줬다. 인도식, 유럽식, 아시아식, 디저트 등 이 많은 다국적 메뉴가 과연 다 나올 수 있는 건가 싶었지만 한참을 본 뒤 안주를 결정했다. 우리는 새우 요리 하나와 인도의 국민 맥주인 킹피셔 생맥 두 잔을 주문했다.
메뉴가 나오길 기다리면서 우리 테이블 담당인 직원에게 총알 자국이 어디 있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적임자를 찾았다는 듯이 그날의 상황을 설명해 주면서 천장, 기둥, 액자 등 건물 내부의 벽면들을 다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던 곳곳의 총알 자국을 보니 얼마나 아비규환이었을지 상상이 되면서 가슴이 아려왔다. 나의 짠한 표정을 읽은 직원은 이젠 내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농담을 던졌다.
그는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우리와 짧은 대화를 나눴고 마이 코리안 프렌드를 위한 서비스라며 콜라와 케이크 한 조각을 중간중간 서비스로 주었다. 음식은 막 엄청 맛있다 이런 느낌은 아니었는데 직원들의 서비스가 좋은 편이었다. 덕분에 여행의 피로가 날아가고 유쾌하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