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산물 킬러들 주목!!
여행을 가면 나의 먹보 능력치는 200프로 향상된다. 관광지 코스를 짜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쏟아 맛집 찾기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먹기 위해 사는 사람에게 낯선 곳으로 가는 여행이란 새로운 맛을 찾는 호기심 넘치는 여정이기에 계획을 짜는 것만으로도 흥분되는 일이다. 하지만 짧은 며칠의 일정 동안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고르고 골라 리스트를 완성해야 한다. 매번 여행 갈 때마다 느끼지만 여행할 때만큼은 나의 위장이 먹방 유튜버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정도다.
이번 뭄바이 여행도 예외 없이 뭄바이의 베스트 씨푸드 맛집, 로컬 푸드 맛집, 디저트, 역사가 있는 스트릿푸드, 파인 다이닝, 분위기 좋은 바 등등 온갖 단어들을 구글 검색창에 집어넣어 기사들, 블로그 글들, 구글맵 리뷰를 뒤져 몇 군데를 추렸다. 물론 이렇게 추려도 위장의 능력 부족으로 못 가는 곳들이 생기지만 그래도 다 가본다는 마음으로 뭄바이 삼시 세끼 플랜을 짰다. (이렇게 열정적으로 공부를 했다면 서울대…?)
그 리스트 중에 한 곳이 바로 여기다. 해산물 요리 전문점 트리쉬나(Trishna)! 점심시간에 찾아간 이곳은 애초에 정확한 목표를 가지고 간 곳이다. 바로 버터 갈릭 점보 크랩!!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이다. 씨푸드 킬러인 나는 대게, 킹크랩 없어서 못 먹는데 무려 인도에서 소문난 맛집이라니 안 먹을 이유가 일도 없다.
근처에서 쇼핑을 하다가 2시쯤 찾아갔는데 정문 앞에 세워진 벤츠, 랜드로버에서 나이 지긋하신 현지분들이 내려서 들어가는 걸 보니 가격대가 좀 있는 현지인들의 맛집이 맞구나 싶었다. 문을 열고 식당 안으로 들어가 보니 넓은 공간은 아니지만 하얀 테이블보가 씌워진 긴 직사각형의 테이블들이 촘촘하게 놓여있었고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꽤 차있었다.
우리도 안내를 받고 테이블에 앉으니 (옷차림이나 나이로 보아 매니저일 것 같은) 중년의 직원 한 분이 메뉴를 주셨다. 그는 친절하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봤고 우리는 한국에서 왔지만 인도에 살고 있다고 하니 너무 신기해하면서 안녕하세요 같은 기본 한국말을 시전해 주셨다. 그래서 나도 최근에 배운 힌디 몇 마디를 뱉었는데 너무 좋아해 주시는 거다. 배우면서도 도대체 언제 이 언어를 써먹나 싶었는데 보람을 느낀 순간이었다.
원하는 메뉴를 주문하니 다른 직원이 사이즈와 신선도를 확인시켜 주기 위해 집게발이 묶여있는 살아있는 게를 가지고 나와서 보여주었다. 곧 조리되어 내 배로 들어갈 걸 생각하니 불쌍하다는 마음이 들어 ‘쏘리’ 하고 다시 주방으로 보내주었다. 이런 신선함 증명의 과정을 거칠 때마다 사람이 제일 잔인하다 생각도 들지만 좋아하는 음식에 꼭 회를 꼽는 나 자신을 보면 아이러니 그 자체다. 특히 팔딱거리는 생새우를 회로 먹을 때는 늘 맛있게 먹지만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것 같다.
음료로 먼저 나온 스위트 라임 소다(라임을 탄산수에 짜서 설탕이나 소금을 타서 먹는 국민 음료)를 다 마실 때쯤 은쟁반 한가득 완성된 점보 크랩 요리가 나왔다. 버터에 볶은 마늘 그리고 게의 조합이 만들어낸 향은 한국 사람이라면 싫어할 수 없다. 맛없없 조합 그 자체 아닌가!
뽀얗고 통통한 살이 가득 찬 몸통 부위 하나를 들어 한 입 크게 물었는데 미쳤다. 부드럽고 달달한 게살의 맛과 짭조름한 갈릭버터가 어우러지는데 제대로 된 해산물 요리를 너무 오랜만에 먹어서 유난히 더 그렇게 느꼈을 지도 모르겠지만 환상이었다. 마늘이 많이 들어간 감칠맛 폭발하는 부드러운 감바스를 먹는 느낌이랄까. 그때부턴 우리 둘 다 말도 안 하고 게살 발라먹기에 여념이 없었다. 게를 다 먹어갈 때쯤 남편은 “이 소스엔 흰밥이야!” 해서 추가로 스팀드 라이스를 시켜 야무지게 소스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역시 한국인의 디저트는 쌀밥임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아주 만족스럽게 배를 두드리고 나온 우리는 트리쉬나 문 앞에서 기분 좋게 인증샷까지 찍었다. 이곳 새우, 생선 요리도 맛있다는데 그것까지 다 못 먹어보고 온 게 너무 아쉬울 따름이었다. 다음에 뭄바이에 올 기회가 있다면 꼭 다시 오고 싶은 레스토랑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