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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Jul 22. 2024

혼돈의 엘레판타 투어 1

외국인이라 겪는 흔한 일

바다나 강이 있는 도시로 여행을 가게 되면 배를 타고 도시를 보는 게 낭만 코스 중의 하나인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남편이 뭄바이를 먼저 다녀오신 지인분께 얘기를 듣고 오길 배를 타고 인디아 게이트를 바라보면 내가 마치 왕족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꼭 타보라며 강추 하셨다고 했다. 일정을 길게는 못 쓸 것 같아서 남편에게 몇 시간씩 타는 보트 투어보다는 1시간 반 정도 작은 프라이빗 요트를 해질녘에 타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가격도 둘이 10만원 안쪽이어서 프라이빗 치고 괜찮다고 생각했다. 근데 남편은 인디아 게이트에서 배로 1시간 정도 떨어진 엘레판타 섬을 왔다 갔다 하는 로컬 보트가 있으니 가서 생각해 보자 했다.


엘레판타 섬은 총 7개의 동굴이 있는 작은 섬인데 그 동굴들 안에는 6-8세기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힌두교의 시바 신을 섬기는 내용을 조각한 부조들이 있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유적지이다. 막상 뭄바이에 와보니 교통난을 잘 피해 왔는지 여유 있게 잡은 일정들을 빠르게 소화하게 되어 우리는 엘레판타 섬을 한 번 가보기로 했다.


호텔 직원에게 보트 티켓을 어떻게 살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인디아 게이트에 입장하면 왼쪽으로 티켓부스들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들어가서 몇 바퀴를 돌아보고 아무리 찾아봐도 부스같이 생긴 그 어떤 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입구 근처에서 엘레판타 엘레판타! 하고 외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근처로 가봤더니 어떤 할아버지께서 간이의자에 앉아서 보트 티켓을 팔고 계셨다. '움직이는 티켓 부스인가...?'라는 생각이 순간 스쳐갔지만 뭐가 됐든 일단은 어떻게든 가보자 하고 둘의 왕복 티켓값으로 520루피(9천원 정도)를 현금으로 결제했다.


게이트 뒤로 가서 타면 된대서 무작정 가서 줄이 길어 보이는 데로 가서 섰다. 3-40명 정도 탈 수 있을 것 같은 2층짜리 보트가 대기를 하고 있어서 금방 타게 되었다. 날씨도 35가 넘어가는 햇빛이 너무 강렬한 날이라 탁 트인 2층 좌석은 포기하고 대신 1층 뱃머리 가장 앞쪽에 자리를 잡아 앉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저렴한 가격에 배도 잘 타고 생각보다 일정이 수월하게 진행되어 남편 말대로 하길 잘했다 생각했다. 그렇게 유유자적 바다를 가로질러 가다가 엘레판타 섬이 시야에 확연히 들어올 때쯤이었다. 젊은 인도 청년들이 인증샷을 찍기 위해 뱃머리 쪽으로 몰려들어 통로까지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게 되었다.


남편이 나를 툭툭 치며 어떤 인도 사람 한 명이 계속 우리 사진을 찍는다고 했다. 인도에선 관광지에 갈 때마다 그런 일들이 종종 있어서 처음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냅둬 뭐 어디다 쓰겠어? 외국인이라 신기한가 보지.” 했다. 그러다 가는 내내 바다만 쳐다보고 있던 나의 시선을 옮겨 바로 앞쪽에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는데 너무 까무러치게 놀랐다. 그 한 명이 이젠 대놓고 셀카를 찍고 있었는데 그의 핸드폰 세로 화면 안에는 그의 얼굴과 내 전신이 정확히 투샷으로 다정하게 찍히고 있었다.


내 셀카 찍는데 뒤에 사람이 우연히 걸린 그런 느낌이 아니고 사진만 보면 정말 둘이 온 줄 알 것 같은 그런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걸 보자마자 화가 확 치밀어 올라 익스큐즈미!! 하고 손을 뻗어 불렀더니 그 사람은 이어폰과 선글라스를 낀 채로 못 들은 척 유유히 그 붐비는 자리를 벗어났다. 갑자기 다른 사람들의 관심만 받게 된 상황. 부르자마자 자리를 피하는 걸 보니 그도 뭘 잘못했는지 아는 것 같아 쫓아갈까 했는데 내가 앉아있던 뱃머리 쪽은 거의 만원 버스같이 사람들이 몰려있어서 벌떡 일어서서 사람들을 헤치고 가기엔 애매한 상황이었다.


인도에선 단지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진을 요청받을 때가 종종 있고 대부분 굉장히 호의적인데 이렇게 대놓고 도촬 당하기는 처음이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꾸역꾸역 쫓아가서 지우라고 해야 하냐 아니면 어차피 나도 선글라스 썼는데 외국에서 괜한 일 만들지 말고 내버려 둘까 (아직 여긴 바다 위야…) 오만가지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 다시 “저 사람 이제 저 백인 아저씨랑 사진 찍는다! 그냥 외국인이랑 사진 찍고 싶은 건가 봐.” 했다.


이 배에 탄 외국인은 우리랑 백인 남성분 한 분이 다였는데 정말 단지 외국인에 대한 호기심이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남편은 농담한답시고 이제 너 선글라스 쓴 얼굴에 나체사진 붙어서 돌아다니는 거 아니냐 같은 헛소리들을 끽끽거리면서 해대더니 “화가 나는 건 이해하지. 근데 지금 네가 화를 내면 넌 이 여행 내내 기분이 안 좋을 테지만 쟤는 반대로 평온할거야” 남편 말을 듣고는 우리의 평화로운 여행을 위해 그래 그냥 친구들한테 자랑하는 사진 정도로만 쓰겠지 생각하고 넘기기로 했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 배를 타고 우리는 섬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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