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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선 Nov 18. 2021

누구를 먼저 구해야 하는가/여행

20210408 논술 답안 필사

 몸집이 작고 가벼워 보이는 아이를 먼저 구한다. 그래야 구조하는 사람의 안전이 최소한 보장되기 때문이다. 아이를 구하는 기준은 철저히 구조하는 사람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정해져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타인을 위해 무조건 희생해야 한다는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권리는 있다. 이런 의무와 권리가 충돌했을 때 자신의 권리를 선택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욕망은 누구나의 마음속에 내재해 있는 욕망이기 때문이다. 또한 타인을 구조한다는 것은 이미 어느 정도의 위험과 희생을 감수한 일이므로 구해야 할 아이의 기준은 구하는 사람의 안전을 보장하고 보호할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는 6년 전,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이사 한 동네는 이제 막 재개발이 끝난 작은 신도시였다. 비록 화려한 집은 아니었지만 이제 더 이상 벽지에 곰팡이가 슬지 않는다는 점과 겨울에도 온수와 난방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그에게 큰 안도와 감사함을 선물해 주었다. 그러나 3년 즈음이 지나고 나니 이미 깨끗한 벽지와 온수, 난방 따위에는 익숙해져 버렸고, 6년 전에는 동경했던 아파트에서의 생활에는 싫증이 나 버렸으며, 되려 6년 전의 삶에 그리움을 느끼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가 싫증을 낸 것은 자로 잰 듯 한 직육면체의 높은 건물들이 자신의 시야를 가로막는다는 느낌이었고, 그리워한 것은 이사 오기 전 살았던 달동네의 옹기종기함이었다. 하지만 낭만만을 좇아 깨끗한 벽지와 온수와 난방을 포기하고 다시 그 달동네로 돌아가기엔 이미 이것들에 너무나 깊이 익숙해져 있었던 터라 그러지는 못하였다. 다만 마음 한 구석에 이에 대한 약간의 가책을 안고 그 달동네를 다시 걸어보면서 그리움을 달래고자 하였다


 숨을 헐떡이며 오르내렸던 오르막길, 옛날에는 고급 술집으로 쓰였으나 언젠가부터 을씨년스럽게 방치되어있던 오래된 일본식 목조 건물, 길을 잃진 않을까 지레 겁부터 먹었던 꼬부랑 골목길들. 고향 동네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그는 이런 것들을 추억하며 기대감을 켜켜이 쌓아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6년 만에 찾아간 고향 동네는 그가 쌓아 올린 기대감을 넘어뜨려 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그가 이사를 준비할 당시에 동네도 재개발이 시작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그리고 3년 동안 고향 동네의 모습은 당연히 많이 변해 있었다. 가파르던 오르막길은 이제 잘 포장되어 있었고, 을씨년스럽던 오래된 목조 건물은 단아한 찻집이 되어 있었다. 꼬부랑 골목길에는 어디선가 본 듯한 그림체의 벽화가 군데군데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에도 자신의 시야를 가로막는 아파트가 높이 서 있었다. 높은 곳에 서서 내려다보면 시원하게 펼쳐지던 수평선에 아파트에 의해 뚝 끊어진 모습에 그는 약간의 구역감까지 느꼈다.


 그는 허탈감과 아쉬움을 안은 채로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는 그 안에서 자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고향 동네가 개발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 자신은 그런 곳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 자신이 고향 동네에서 구역감을 느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모순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기적인 환상을 고향 동네에 강요했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주 질이 좋은 운동화 한 켤레를 신고 갈 것이다. 이 여행은 어린 시절 살던 동네에 대한 그리움에서 출발하는 여행이기 때문에 내가 그 공간을 느끼고 즐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추억을 회상하려면 카메라나 드로잉 북에 그 공간을 담는 것도 생각해 봄 직 하지만, 이는 내가 그 공간을 오로지 느끼고 즐기는 데엔 방해가 될 뿐이다. 이 여행의 목적을 잘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느 것의 방해도 받지 않고 그 공간을 천천히 걸어 다녀야 한다. 이때 발이나 다리가 아팟 제대로 걷지 못한다면, 그래서 그 공간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다면 그것도 참 안타까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질 좋은 운동화를 신고 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설령 그 동네가 내 상상과는 달리 많이 변하고 새로운 것들이 생겨났다 하더라도 그 동네를 구성하는 길은 예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았다. 그 길을 천천히, 우직하게 걸으면서 공간을 느낀다면 옛 추억을 소환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 더 나아가 바뀐 공간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거나 새로운 것을 경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 공간과 길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질 좋은 운동화를 챙겨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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