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 12.
하루 종일 잔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것 같은 날이 있다. 아이들에게 같은 말을 반복해서 하는 것 같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같은 말을 또 듣는 것에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을 때 내 입에서 나오는 그 말이 나도 좀 지겨워지는 것 같다. 별 일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아는데, 이 말을 이렇게 여러 번 안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얼른 양치하고 와.
음식 식으니까 밥 먹고 나서 이야기하자.
제자리에 갖다 놓자.
주방에 와서 뛰면 안 돼.
음식은 식탁에서 먹어야지.
등등.
일단은 여러 번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왜 한 번만 하지 않는가? 이유는 단순하다. 한 번 했는데 안 하니까.
그렇다면 왜 말하게 되는가? 해야 하는 일이니까.
왜 그것들이 해야 하는 일인가? 안 해도 되는 일은 아닐까? 안 하면 위험한 일이 생길 수도 있거나,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많아진다.
여기까지 생각한 후, 아이들에게 물었다. 엄마가 같은 말을 자꾸 반복해서 말하게 되는 것이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큰 아이가 “아, 엄마의 잔소리요?” 하는 것이었다. 나 역시 잔소리라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아이 입에서 들으니 ‘잔소리라고 생각하는구나’ 하고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래, 잔소리라고 생각한다면 잔소리겠지, 인정하고 그렇다면 엄마가 잔소리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알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아이는 한참 고민하더니, “꼭 해야 하는 일이라서요?”라고 되물었다.
나는 제일 많이 했던 말들 중 몇 가지를 언급하며 그것을 하지 않았을 경우 일어나게 되는 위험한 일,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결국 쏟아야 하는 일, 엄마가 해야하는 일이 많아짐으로 인해 아이들과 놀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는 일 등을 설명했다. 아이들이 듣고 있는 와중에 이 역시 내가 늘 말해온, 덧붙여 반복해서 말하던 일임을 인지했다. 설명을 한다고 크게 달라질 것 같다는 기대는 하지 않으면서도, 부디 그럴 수밖에 없는 엄마의 마음을 좀 이해해주길 바랬다.
이럴 때면, 아이가 처음 태어나 ‘엄마’라는 단어를 수만 번 넘게 들어야 ‘엄마’라고 입으로 말할 수 있다고, 어디선가 읽은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 엄마라는 소리를 알려주기 위해 수없이 아이의 눈을 보며, ‘엄마가 해 줄게’ ‘엄마한테 와’ ‘엄마랑 같이 하자’ 하고 말했었다는 것을 떠올린다. 나의 잔소리들이 아이들에게 각인되기까지 수만 번 중에 아직 횟수가 좀 부족한 모양이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마음이 다독여진다.
보드마카를 꺼내 아이들이 기억해줬으면 하는 것을 벽면에 있는 보드에 적었다. 어차피 거의 같은 패턴으로 하는 말들이니, 오다가다 눈에 쏙 담아두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러다가 한편으로는 이제 저기 가서 읽어보라는 말을 또 반복하게 될까 싶은 것이었다. 사실 나도 어렸을 때, 한 번에 엄마 말을 듣는 아이는 아니었을 텐데 내 몸, 내 물건, 내 할 일을 어느 정도 챙기는 성인으로 자란 것을 보면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될 일인가 싶기도 했다. 강요의 힘은 조금 빼되, 좋은 습관을 들일 수 있게 알려주는 역할만 하자는 생각으로 이것저것 보드에 적다 보니, 어느새 글씨가 꽉 찼다. 내일은 부디 나의 잔소리가 조금은 줄어들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