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dsunset Feb 13. 2022

잔소리 안 하고 싶다

2022. 2. 12.


 하루 종일 잔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것 같은 날이 있다. 아이들에게 같은 말을 반복해서 하는 것 같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같은 말을 또 듣는 것에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을 때 내 입에서 나오는 그 말이 나도 좀 지겨워지는 것 같다. 별 일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아는데, 이 말을 이렇게 여러 번 안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얼른 양치하고 와.

 음식 식으니까 밥 먹고 나서 이야기하자.

 제자리에 갖다 놓자.

 주방에 와서 뛰면 안 돼.

 음식은 식탁에서 먹어야지.

 등등.


 일단은 여러 번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왜 한 번만 하지 않는가? 이유는 단순하다. 한 번 했는데 안 하니까.

 그렇다면 왜 말하게 되는가? 해야 하는 일이니까.

 왜 그것들이 해야 하는 일인가? 안 해도 되는 일은 아닐까? 안 하면 위험한 일이 생길 수도 있거나,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많아진다.


 여기까지 생각한 후, 아이들에게 물었다. 엄마가 같은 말을 자꾸 반복해서 말하게 되는 것이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큰 아이가 “아, 엄마의 잔소리요?” 하는 것이었다. 나 역시 잔소리라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아이 입에서 들으니 ‘잔소리라고 생각하는구나’ 하고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래, 잔소리라고 생각한다면 잔소리겠지, 인정하고 그렇다면 엄마가 잔소리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알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아이는 한참 고민하더니, “꼭 해야 하는 일이라서요?”라고 되물었다.


 나는 제일 많이 했던 말들   가지를 언급하며 그것을 하지 않았을 경우 일어나게 되는 위험한 ,  많은 시간과 노력을 결국 쏟아야 하는 , 엄마가 해야하는 일이 많아짐으로 인해 아이들과   있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는  등을 설명했다. 아이들이 듣고 있는 와중에  역시 내가  말해온, 덧붙여 반복해서 말하던 일임을 인지했다. 설명을 한다고 크게 달라질  같다는 기대는 하지 않으면서도, 부디 그럴 수밖에 없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해주길 바랬다.


 이럴 때면, 아이가 처음 태어나 ‘엄마’라는 단어를 수만 번 넘게 들어야 ‘엄마’라고 입으로 말할 수 있다고, 어디선가 읽은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 엄마라는 소리를 알려주기 위해 수없이 아이의 눈을 보며, ‘엄마가 해 줄게’ ‘엄마한테 와’ ‘엄마랑 같이 하자’ 하고 말했었다는 것을 떠올린다. 나의 잔소리들이 아이들에게 각인되기까지 수만 번 중에 아직 횟수가 좀 부족한 모양이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마음이 다독여진다.


 보드마카를 꺼내 아이들이 기억해줬으면 하는 것을 벽면에 있는 보드에 적었다. 어차피 거의 같은 패턴으로 하는 말들이니, 오다가다 눈에 쏙 담아두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러다가 한편으로는 이제 저기 가서 읽어보라는 말을 또 반복하게 될까 싶은 것이었다. 사실 나도 어렸을 때, 한 번에 엄마 말을 듣는 아이는 아니었을 텐데 내 몸, 내 물건, 내 할 일을 어느 정도 챙기는 성인으로 자란 것을 보면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될 일인가 싶기도 했다. 강요의 힘은 조금 빼되, 좋은 습관을 들일 수 있게 알려주는 역할만 하자는 생각으로 이것저것 보드에 적다 보니, 어느새 글씨가 꽉 찼다. 내일은 부디 나의 잔소리가 조금은 줄어들기를 바라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목소리를 듣는 괴로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