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 겨울밤이 지속될 때는 눈도 안 오고 새벽은 냄비에 붙은 검게 탄 자국처럼 회복이 불가능할 것 같다.
압구정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3시간 정도 책을 읽고 또 커피를 마시고, 창가에 앉아 있는 여자 또한 책을 읽고 있는데 제목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자기 개발서 혹은 에세이를 읽는 듯해서 내가 읽고 있는 시집을 만지작거리다가 도로 테이블에 올려놓기를 반복했던 것 같다.
시 제목은 ’그해 대설주의보.‘ 똑같은 구절을 반복해서 읽었다. “망했다고 생각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 ••• 이제야 말한다 그날이 진경이었음을”
밖에는 눈이 내린다. 휴대폰 재난문자를 보니 오늘 많은 양의 눈이 예보되어 있으니 외출을 자제해 달라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은 많고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곳에서 오랫동안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제각기 다른 일을 하고 있다. 마치 일기예보나 재난문자를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그날의 날씨영향을 받았을까. 이틀 뒤에 감기몸살이 걸려 새벽에 일어나 아침에 겨우 잠이 들었다. 또다시 잠이 들고 꿈인지도 모를 옛 추억 속 사람들이 나타나고 내 머리카락을 스쳐 지나가는 강아지의 뜀박질이 느껴져 다시 일어나면 “진짜였을까?” 이제 좀 살만하다고 잊고 살았던 세월이 야속했나.
꿈인지 아님 실화인지 모르겠지만 참 희한한 경험이어서 “그때도 눈이 내리는 겨울이었지” 언젠가 나보다 먼저 떠난 너를 무지개다리에서 만난다면 힘껏 안아주고 쓰다듬어줘야지 눈이 오는 날이면 생각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