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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진 Jan 23. 2024

제제, 편안함에 이르렀나


시골에 가면 나무가 많았다. 길을 걸으면 나무가 보였고 대문 앞에도 나무가 있었다. 집마당에서 사시사철 자리보전하고 있는 나무를 보면서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떠올리곤 했다.


그 시절 내 키보다 높고 둥근 나무를 보면서 ‘언제쯤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어른이 되면 구두를 신고 화장도 하면서 맘껏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른의 마음이란 무엇일까. 어른의 사랑, 어른의 일, 어른의 삶. 그 복잡하고 요상한 세계에서 어른으로써 살아간다는 것.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 사랑하는 뽀르뚜가, 저는 너무 일찍 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꼬마 제제에게 뽀르뚜가는 사랑을 일깨워줌과 동시에 이별의 상실을 처음으로 느끼게 해 준 유일한 어른이었다. 그리고 제제에게 밍기뉴는 단순한 라임 오렌지 나무가 아닌 인간 그 이상의 존재였다.


나무는 나무로써 할 일을 다 한다. ‘~때문에’ 라는 전제 조건이 아닌 바람에 따라 잎을 떨궈 평생에 걸쳐 가지를 다듬는다. 끊임없이 ‘성장’ 하면서 아낌없이 ‘사랑’ 을 준다는 것. 애를 돌보는 어머니의 깊은 愛처럼.


여름에는 나무 그늘만큼 시원한 곳이 없어서 줄곧 그늘에서 잠이 들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할아버지 등에 업혀 있었다. 잠시 허리를 펴서 노을로 물든 서쪽 산을 바라보면 가슴 깊이 차오르는 빛이었다. 당연한 줄 알았던 그때의 온기와 풍경이 이제는 사뭇 슬픔이 된다.


돌이켜보면 다 같은 어른이 아니었음을. 지금도 어른이라고 모두 다 어른 노릇을 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어린이가 될 수 없었던 과거의 모든 제제에게, 세상에 폭력과 차별이 난무하더라도 가슴속 태양이 빛나는 누군가의 아저씨, 뽀르뚜가처럼 완숙의 사랑에 이르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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