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할머니는 20살도 채 되기 전에 할아버지한테 시집을 왔다고 하셨다. 고작해야 열여덟 살, 살아온 터전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가족을 만들고 평생을 다한다는 것. 예컨대 찹쌀로 술을 빚는 것보다 어렵고 흙으로 도자기를 빚는 마음으로 정성을 쏟아야 하는 일.
‘사랑.’ 한 번은 사랑이 사치라고 생각했다. 더불어 결혼은 결코 순수할 수 없다는 의견이었다. 점점 일과 현실에 치이면서 어느새 여유마저 없어졌고 그 여유가 경제적인 측면이 되었을 때, 한 사람의 마음 또한 가난해진다는 게 하나의 통과 의례가 된 셈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오늘날의 사랑은 실체가 없는 듯하다. 책으로 연애를 배운다는 말도 이젠 옛말이다. 유튜브만 보더라도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는 법> 같은 연애 채널에서 이성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만 정작 사랑을 고민하는 사람은 현실에서 드물다는 것이다.
“이번 환승연애 보셨어요?” 회사에서 근무하는 어린 친구가 물었다. 한 커플의 이별 사연에 대해 언급하며 자신은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이었다. 요즘은 사람들 사이에서 연애예능이 인기라지만 글쎄,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해서 사랑 예찬론자는 아니다.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인간의 삶이란 늘 선택의 연속이고 누구에게나 그 끝이 죽음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마지막 순간에는 무엇이 가장 소중한지 알 수 있을 테니까. 때로는 사랑이 어려운 국면으로 몰고 가더라도 그래서 또 한 번의 상처를 받더라도 그래도 사랑이기를.
인생의 실패담과 같은 진부한 러브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만약 내일이 지구의 종말이라면 깊숙이 담가 만든 술의 온도로, 아주 투명한 형태로 사랑을 빗대어 말하고 싶다. 때로는 알코올만큼 지독한 사랑이지만 뒤늦게 아팠던 만큼 그 시절이 참 애틋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