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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진 Jan 09. 2024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닮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은 마치 구원의 손길을 받는 기적과도 같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을 때 나는 미술에 빠져 있었다. 당시 운이 좋게도 미술 전공이셨던 담임선생님께서 방과 후에 따로 미술을 가르쳐주셨다. “효진이는 색감이 참 좋네.” 선생님의 이 말 한마디로 매일매일 그림과 조소를 배워 미술대회까지 참가했었다.


기적이었다. 지역에서 열린 소규모의 미술 대회였지만 처음으로 동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닮고 싶은 한 아이를 만났다. 아마 초여름이었을 것이다. 내가 앉았던 자리에서 대각선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아이의 옆모습이었다. 긴 생머리에 주황색 목폴라 나시를 입고 있었는데 웃는 모습이 여름의 푸른 잎새를 닮았다.


생애 처음으로 누군가를 동경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어찌어찌하여 그 대회에서 수상한 사람들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또다시 운이 좋게도 그 아이의 이름을 알게 되어 이메일까지 주고받았다. 정말 친절하고 밝은 아이였다. 한동안 연락을 주고받다가 고등학교 때부터 각자의 사정으로 연락이 끊겼다.


최근 허지웅 작가의 <최소한의 이웃>이라는 책을 읽었다. 책의 첫 장을 펼치면 제일 먼저 보이는 문구는 ‘서로가 서로를 구원해 줄 전능한 힘 같은 건 없지만, 적어도 비참하게 만들지 않을 힘 정도는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나는 여태까지 인간의 과거는 곧 불행이라 생각했을까. 어둡고도 가난했던 나의 청소년기에 받았던 구원과도 같았던 사랑. 어느덧 서른 중반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나는 인간의 마음이 제일 큰 기적이었음을 안다.


그러니 삶이라는 소풍에서 우리가 함께 하는 동안 사람이고 사랑이기를. 문뜩 “그 아이는 잘 지내고 있을까?” 뜬금없이 보낸 문자에 물음표 하나가 아쉽게 느껴지는 1월의 늦은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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