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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진 Dec 26. 2023

전야제는 끝났지만



십이월의 밤이 짧다. 어제도 그제도 돌이킬 수 없는 내가 있고 그 사람이 있고 또 다른 사람이 그곳에 있다.


“추억으로 남기기엔 좀 슬픈 것 같아“

평소 친애하는 A양이 말했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만 그럴 수 없다고 그녀에게 말했다.

“슬프지만 다시 돌아가더라도 그때만큼의 열정은 다시는 없을 거야”


시간의 영원은 존재할 수 없고 인간의 삶에 작은 불씨라도 남아있다면 마지막 순간이 될 때 오랫동안 부여잡던 고집과 심려를 비워내고 떠날 수 있을까.


가끔은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죽는다. 연기도 없이 사라진 사람들. 이제는 소식조차 닿지 않고 닿을 수 없는 관계들. 마치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소리소문도 없이 자취를 감추고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소멸(消滅) 보다 더 조용히, 일순 두렵게도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한동안 서울에서 약속이 잦았다. 거리에는 커다란 트리가 있고 그 앞에는 구경꾼이 즐비하고 있었다. 극한 한파에도 사람들은 저마다 약속을 하고 서로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고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한다.


언제 만난다는 기약을 했던가. 약속 장소로 가는 길에 남산타워가 보이는 육교를 건넜다. 어느덧 1년이 넘어가고 365일이 눈 깜짝할 사이에… 왜 십이월은 짧고 기억 속에 있는 사람이 멀게만 느껴지는지…


영영 살 수 없을 것이다. 비록, 손꼽아온 날과 밤은 이제 사라졌지만 계절이 변해도 오랜 약속은 그곳에서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12월, 코 끝에 찬 공기가 시큰거린다. 겨울바람은 이토록 매서운데 발걸음이 선뜻 떨어지질 않는다.


눈이 오면 포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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