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아끼는 것은 딱히 할 말이 많아서도 아니고 다른 말이 있어서도 아니다. 습관처럼 사람들이 떠드는 말과 태도를 보면서 어느새 나는 익숙해져 버린 것 같다. 불필요한 말과 행동 사이에서 나타나지 말아야 할 감정을.
불쑥.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큰 세계가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지옥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요 며칠 그런 생각으로 연말을 보냈다. 엊그제 좋아하는 배우 sns에 가수 넬의 ‘한계’ 노래가 올라와 있었다. 그의 게시물에는 아무 글도 없이 추모일을 연상시키는 숫자만 보였다.
그리고 그다음 날에는 서울과 수도권 일부지역에 대설주의보가 발효됐다. 새해를 앞두고 많은 눈이 내렸다. 종일 회사에서 눈을 바라보면서 ‘인생이란 덧없는 것일까’ 생각했다. 사람은 살면서 때때로 방황하고 자주 불안해하며 다른 사람은 나를 뉘우치라고 몰아세운다.
‘난 몇 마디의 말과 몇 번의 손짓에 또 몇 개의 표정과 흐르는 마음에 울고 웃는 그런 나약한 인간일 뿐인데 대체 내게서 뭐를 더 바라나요’ 가사의 일부분처럼 사람은 그런 존재가 아닐까. 그저 있는 그대로의 작고 불완전한 삶의 결정체.
12월 마지막 날, 103분의 다큐멘터리를 극장에서 보았다. 올해 고인이 되신 류이치 사카모토의 콘서트 형식의 영화였는데, 긴 시간 동안 20곡의 피아노 연주가 계속되었다. 오로지 건반을 움직이는 그의 손짓과 힘겨운 숨결만이 상영관을 가득 메웠고 나는 그게 슬프면서 아름다웠다.
곧 봄은 다시 올 것이다. 언제 겨울이었나 싶을 정도로 시간의 유속은 강물의 속도만큼 빠르게 흘러갈 것이다. 우연히 그 해 여름에 칼부림 사건이 있었던 시계탑 광장을 지나갔다. 연말을 보내는 사람들로 분주한 광장은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매우 평화로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