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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운 Feb 25. 2024

이제는 안 보려고 한다

에필로그


행복할 때도 있다.



나와 아이들에게 잘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일 때나 서로 기분 좋게 대할 때는 ‘이래서들 결혼하나 보다’싶게 흐뭇한 마음으로 평화로운 삶을 산다.



문제는 크고 작은 싸움이 일어났을 때다. 내가 생각해도 난 너무 쉽게 상처받고 너무 깊게 가라앉는 듯하다. 말해봤자 싸움만 커지니 피하고 싶어서 혼자 삭이는 편인데 답답하고 우울해서 잠이 안 오면 휴대폰의 메모장을 켜서 나와 남편이 싸우게 된 배경과 주고받은 말, 나의 기분, 남편을 향한 욕을 한바탕 적곤 한다. 속 시원히 적고 나면 이전에 내가 써놨던 글도 몇 개 다시 본다. 맞아 이런 일도 있었지, 맞아 이런 놈이었어, 심했다 정말, 하면서 과거의 나와 함께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씩씩대다 보면 수다 떠는 효과가 있는지 화가 좀 가라앉기도 한다 (차분히 열을 식히고 나서 침착하고 냉정하게 이혼 결심을 하곤 한다.) 사실을 적어 놓았지만 남편이 그 메모장을 발견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싸움의 원인이 될지도 모른다. 남편의 핸드폰 못지않은 판도라의 상자인 셈이다. 이제는 공개적으로 글을 써버렸으니 더 각오해야겠지.



프롤로그를 발행한 지 일주일 정도가 지났다. 지난 일주일간 나는 2편의 글을 준비해 놓았고 일요일이 되자마자 이 에필로그와 함께 모든 글을 발행해서 완결을 내려했다. 그러니까 지금, 토요일 저녁, 애들을 재우고 에필로그를 적기 위해 브런치에 들어와 봤더니 오늘 갑자기 조회수가 폭등해 있었다. 만 단위다. 이름도 얼굴도 알리지 않고 쓴 글이지만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생길 정도로 많이 봐주셨다. 메모장에 혼자 적고 혼자 보던 때와는 엄연히 달랐다. 후련함이 차고 넘쳐 마음 한구석에 늘 박혀있던 분노가 휩쓸려 사라진 기분이다. 프롤로그에서 ‘남자’ 전체를 향해 실망감을 내비치며 편견 가득한 글을 써놔서 내심 걱정되는 마음도 있었다. ‘에잇 퉤!’하고 지나가실 만도 한 글이었음에도 ‘좋아요’를 눌러주신 분들을 보니 (프로필 사진으로 유추할 수 있는 선에서) 남성분들이 많으셔서 놀랐고 감사하고 머쓱하다. 구독해 주시는 분들까지 생겨 무척 황송하다.



앞으로도 문득 이 일이 떠오르겠지만, 이제는 만인에게 외쳤다는 후련함으로 덮은 기억이 되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볍게 다가올 것 같다.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사람 보는 눈 없이 결혼해서는 무슨 자랑이라고 이런 걸 쓰냐고, 누워서 침 뱉기밖에 더 되냐고. 맞는 말이다. 그래도 막상 저지르고 보니, 삼키기 힘든 침은 가끔 뱉어 버리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가래가 섞여있거나 이물감이 느껴져 삼키키 싫을 때가 종종 있지 않은가. 더러워진 얼굴은 나중에 씻어봐야겠지만, 충분히 개운한 마음이다.



첫 글을 쓰면서부터 마음속으로 혼자 다짐한 대로, 이제 남편의 핸드폰에 관심을 끊으려고 한다. 의심이 줄어드는 것과는 별개로 자꾸만 신경 쓰이던 핸드폰이었는데 지금은 신기하게도 아무렇지 않다. 원래는 남편의 얼굴이 안 보고 싶었는데 다행히 지금은 핸드폰이 안 보고 싶어졌다. 안 봐도 될 것 같다. 남편의 핸드폰이 아닌, 나를 더 신경 쓰며 내 마음을 더 돌보는 방법을 고민해보고 싶다. 행복할 때도 있는 삶이, 행복한 삶으로 바뀌도록. 다른 사람에 의해 좌우되던 행복이, 온전히 내 것이 되도록.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귀하의 가정에 행복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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