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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콩마음 Mar 20. 2024

사춘기-부모도 자란다.

집 앞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오늘은 약속이 있는 날이다.

에스컬레이터에 발을 내딛고 내려가는데 바로 앞에 두 아이와 엄마가 서 있다.

어려 보이는 한 아이는 손잡이에 한 손을 걸치고 앞만 바라보고 있고, 다른 한 아이는 엄마와 마주 보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바로 앞이라 그런가 모녀의 대화가 큰 소리로 나의 귀에 전달되었다.

아이가 학원을 가는 모양이다. 엄마는 아이가 해야 할 것들에 관해 조목조목 설명을 한다.

거기서 끝났으면 좋았을 것을...


"오늘 제대로 하고 와, ㅇㅇ이는 얼마나 잘하니, 너도 그렇게 하란 말이야. 걔는 이번에 A 받았잖아. 왜 너는 그렇게 못해?" 

아이의 엄마는 자신이 훈계를 하고 있다 생각하는 걸까?

코 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내게는, 그저 자신의 아이와 다른 엄마의 아이를 비교하며 화를 쏟아내고 있는 그런 엄마일 뿐이었다.

'어머니! 아이에게 너무 지나치신 것 아닌가요? 그렇게 대놓고 기분 상하게 비교를 하시면 아이 마음이 어떻겠어요?'

오늘도 나는 소심하게 마음속으로만 항변해 본다. 하지만 아이의 엄마는 뭐가 그리 분한 건지 또 하나의 기억을 들춰내며 아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ㅇㅇ이는 수학경시대회 나가서 상도 받았잖아."


내가 그 아이도 아닌데 왜 이리 숨이 막히는 걸까?

그런데 그 순간 가만히 듣고 있던 아이가 "엄마는 왜 맨날 ㅇㅇ이랑 나랑 비교해? "라고 한다.

오! 잠자코 듣고만 있던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얘기한다. 과연 이 엄마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비교하는 것이 좋지 않은 습관이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니, '그래, 엄마가 비교한 건 미안해'라며 어른답게 인정할까? 제발 그러면 좋겠는데.

나의 바람은 내 주위만 빙빙 돌다 결국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비교하지 말라고? 그건 네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야. 세상이 다 그래. 비교하고 비교당하고 그런 게 바로 세상이야. 그러니까 비교당하지 않으려면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엄마의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엄마의 입에서 나온 불같은 호령은 저 어린아이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여덟 혹은 아홉 살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저 어린아이에게 엄마는 세상을 그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저 아이는 엄마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가슴이 먹먹해졌다.

앞으로 펼쳐질 아이의 세상을 어떻게 저런 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건지, 그것도 '엄마'라는 이름으로.


지하철에 자리를 잡은 나는 여느 때와는 달리 이어폰을 꺼내지 않았다. 노래를 듣고 싶은 마음이 일지 않았기 때문이다. 눈을 감았는데 그 아이의 모습이 자꾸 아른거린다.

엄마의 지나친 비교에 겨우 용기 내어 자신의 의사를 표시했건만, 엄마의 거침없는 태도에 결국 아이는 고개를 떨구고 입을 닫아버렸다.




앉아있는 반대편 차창으로 내 얼굴이 비친다. 과거의 나다.

그렇게 마주한 또 다른 나를 바라보며 조용히 물어본다.

너는 어떤 엄마였니?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만난 저 아이의 엄마와는 다르다고, 저 정도까지는 아니었다고, 미약한 비교만 했을 뿐이라고...

덜커덩거리는 지하철 때문이었는지, 자신이 없어서였는지, 차창 속 나는 그렇게 흔들리며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과거의 나에게 웃으며 이야기한다. 

부끄러워하지 마. 너는 달라질 거야. 아니 이미 달라져 있어. 그게 바로 나거든.


그 시간이 내게 왔었다. 나를 달라지게 만들어준 바로 그 시간이.

사춘기란 녀석이 아이를 찾아온 것이다.

그 녀석은 내게 '비교'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는 찰나의 시간도 하락하지 않았다.

오직 내 아이가 삐뚤어지지 않고 바르게 자라주기만을 기도하는 데에도 하루가 모자랐기 때문이다.


사춘기의 거센 바람은 부모에게까지 휘몰아쳐, 욕심이 머물자리를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했다.

사춘기의 무거움은 부모의 교만한 마음까지 짓눌러, 그 자리를 겸손함으로 채워주었다.

사춘기의 어두움은 부모에게까지 깊게 드리워져, 빛을 갈망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게 해 주었다.


아이와 나의 관계를 되돌아볼 수 있었던 그 시간은 '후회'라는 아픔을 내게 안겨 주었지만 동시에 반성하는 마음도 일게 해 주었다. 쉽게 하는 작은 '비교'조차도 아이를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 시간을 통해 깨달았다.

사춘기는 내게 말할 수 없는 절망과 고통도 안겨 주었지만, 어른으로서의 '성장과 변화'라는 커다란 선물도 남겨주었다. 그러기에 감사의 순간으로 기억되나 보다.


미래의 어느 날, 지나간 오늘을 떠올리며 감사의 시간을 갖게 될 아이의 엄마를 기대해 본다.


붙임>

부모와 자식에게도 적정거리는 필요하다.

필요하지 않은 순간에도 늘 곁을 맴돌며 기웃대는 부모가 아니라, 필요로 할 때면 언제든지 곁으로 달려갈 수 있는, 적정한 거리에 서 있는 부모가 되어보자.


적정한 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게 해주는 건강한 거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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