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입학할 당시 또래에 비해 유난히 체구가 작았던 둘째 녀석이,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심각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며 내게 말했었다.
"엄마, 우리 이사 가면 안 돼요?"라고.
그 짧았던 순간에 나를 휘감았던 캄캄한 어지러움은 내 마음을 두려움과 불안 속으로 밀어 넣었다.
친구와 크게 다툰 건지, 아니면 작고 어려 보인다고 따돌림을 당한 건지, 잘못을 하여 선생님께 혼이 난 건지..
심장이 쿵쾅거렸지만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아이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았던 것 같다.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대답에 아이를 꼭 안아주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 우리 집은 학교에서 너무 멀어요. 601동으로 이사 가면 안 돼요?"
"내 친구가 601동에 사는데 학교까지 10분 밖에 안 걸린대요. 우리도 거기로 이사 가요."
우리 집은 61*동이었고 학교까지는 아이의 걸음으로 대략 12~13분 정도의 거리였다.
그 2~3분의 차이가 아이에겐 꽤나 멀게 느껴졌었나 보다.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 외출했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아파트 정문을 통과하여 올라가고 있는데 저만치 서 있는 느티나무 아래 홀로 앉아계신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벤치에 몸을 기대고 계셨지만 구부러진 허리와 등은 야속하게도 등받이에 제대로 닿아있지 않았다.
나의 걸음이 어느덧 그곳에 도달할 무렵 할머니께서는 일어서시어 다시금 발걸음을 내딛으셨다.
이미 한두 명의 손주가 거쳐간 듯한 낡은 유모차와 그 빛바랜 손잡이를 움켜쥐고 걸어가시는 할머니의 모습에, 낮은 경사의 오르막길이 오늘따라 버겁게 느껴졌다.
할머니의 힘겹고 느린 걸음에 나는 고개를 숙이고 앞 서 지나쳐 갈 수도 있었지만 왠지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시작되었던 우리의 동행은 할머니의 유모차가 우회전을 하게 되면서 비로소 끝이 났다.
꼭대기 층에서 내려오고 있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살포시 눈을 감았는데, 현재와 과거의 기억이 하나가 되어 눈앞에 펼쳐졌다.
커다란 느티나무는 자기보다 더 큼직한 그늘을 드리우고,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기다란 벤치를 마련해 두었다.
이윽고 나타난 백발의 할머니와 키 작은 꼬마 아이.
그들은 각자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벤치에 걸터앉는다.
다른 모습의 두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601동으로 이사 가고 싶다.'
사진: Unsplash의 Ries Bos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