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만화를그려본 사람으로서, 필자가 만화가를대단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크게 2가지가 있다.
첫째, 상상한 것을 표현해 내는 능력에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머릿속으로 상상을 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상상은 짧고 쉬이 생각해 낼 수 있는 수준이며 그 상상의 시간이 오래가지도 않고 그 상상을 간직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하지만 만화가들은 상상해 낸 것을 간직하기 위해 메모하고 거기에 상상을 또 더해가는 노력을 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을 표현해 내는데, 이것이 대단하다. 누구나 재밌는 상황을 떠올리고 기가 막힌 스토리를 머릿속으로 짜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글로 써 내려가고(작가) 그림으로 그려내고(화가) 영상으로 만들어내는 것(감독)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만화가는 상상한 것을 만화로 그려내기에 작화, 연출, 필력, 스토리 등 다방면의 것들을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것이다.
둘째,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집념의 노동에 있다. 보는 사람은 길어야 3~4초에 불과한 그 짧은 컷 하나를 위해 만화가는 어마어마한 시간을 투자해서 그려낸다. 그리고 그 과정을 홀로 묵묵히 견뎌내야 한다. 필자도 그랬지만 만화를 그리는 사람들은 자신의 만화를 대중들에게 보여줘 빨리 반응을 얻고 싶어 하는데, 그것을 참으면서 참으로 오랜 시간을 한 컷 한 컷에 매진한다는 것은 강한 집념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심지어 그렇게 만들어 낸 작품이 사람들에게 반응이 없으면 다시 처음부터 만화를 그려야 할 수도 있으니, 아무리 만화 그리는 게 재밌어서 그리는 만화가들이라고 해도 그 집념과 인내심은 분명 보통의 것이 아니다.
집념하니 떠오르는 작가가 있다. 어시스턴트들이 도망갈 정도로 작품에 매진하고 결국엔 건강 악화로 사망에 이르렀을 정도로 자신의 만화에 어떠한 숭고한 집념을 보여준 일본의 만화가 미우라 켄타로. 그는 만화가들의 만화가이자, 만화를 숭고한 예술의 반열에 올려놓은 위인 중 한 명이라 생각된다(그가 삶을 바쳐 그려낸 만화 [베르세르크]는 '인간이 운명에 대항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를 가진작품으로 그의 사망 후 작품이 중단되었다가, [베르세르크]의 결말은 들은 유일한 인물인 그의 동료작가 모리 코우지와 어시스턴트들이 모여 재연재를 하고 있다)
만신 둘기마요
제목과 표지를 보면 그냥 흔한 양산형 학원액션물 같아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복서마다 스타일이 있듯이 만화가들도 저마다의 스타일이 있고, 거기에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유행하고 인기 있는 복서스타일이 있듯이 만화 스타일 역시 동일하다. 현재 웹툰 시장의 가장 큰 파이를 차지하고 있는 네이버웹툰의 최근 트렌드는 왕따가 싸움천재가 되어 일진을 줘 패고 알파메일이 되는 식의 흔하디 흔한 양산형 학원액션물이다. 그렇기에 트렌드에 따라 비슷한 형식의 작품들이 늘어가고 있는데, 이러한 작품들이 입체적 캐릭터나 스토리가 아닌 노골적으로 그려낸 여성의 섹시한 몸매와 이쁘고 잘생기게 그리는 트렌드식 그림체를 통해 그 인기와 인지도를 얻고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물론 필자도 이쁜 여자 몸이랑 잘생쁜 그림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양산형 한국영화처럼 웹툰도 단순 자극적이고 겉으로 보이는 것만을 통해 인지도를 얻으려는 도파민식 콘텐츠가 늘어나는 것이 너무 꼴 보기가 싫다. 마찬가지로 여성의 섹스심벌을 부각해 인지도를 얻어내는 유튜브 스케치 코미디 채널들이 늘어만 가는 것이 매우 꼴 보기가 싫다).
둘기마요 작가의 고양이 '고도리'
이런 암울한 네이버 웹툰의 흐름 속에서(비록 유료이지만 레진코믹스 같은 곳은 정말 다양한 만화와 장르를 수용하기에 트렌드나 흐름보다 정말 독창성과 만화적 재미를 추구하는 작품이 많다) 필자에 눈에 들어온 보석 같은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지옥급식]이다. 이 작품은 3D배경 작업을 쓰지 않는 변태적인(벽돌 하나하나를 일일이 그리는 정성) 아날로그 화법과, 해리포터와 지미뉴트론을 섞고 후첨으로 기안84의 분위기를 섞은 듯한 몽환적이고 발칙한 상상력을 가진 둘기마요 작가가 그려낸 코믹 학원액션물로, 이런 류의 만화(B급 같지만 속은 S급인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단언컨대 최고의 작품이 될 거라 확신한다. 둘기마요 작가의 상상력과 표현력은 그가 블로그에 올린 단편 중편 만화들을 보면 확인할 수 있는데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을 만큼 훌륭하다(대표작으로 노스텔지어, 토마토지옥, 아케데미스케이팅, 도도대학교의 비밀 등이 있다). 귀엽고 단순하면서도 섬세함을 잃지 않는 그림체(같은 의미로 박수봉 작가의 그림체를 좋아한다)도 개인 취향 저격이지만, 일상적인 것부터 시작해 크게는 몽환적인 부분까지 섭렵하는 상상의 표현력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만드는 정도이다. [지옥급식]에서 역시 몽환적 상상력을 빼놓지 않으며, 보통의 학원액션물과 다르게 격투기의 기술이해도 및 인체동작성의 현실적 표현묘사가 굉장히 뛰어난 모습을 보이고(해서 만신이라 불리는 [격기3반]의 작가 이학처럼 만화라는 분야에 있어 굉장한 응용력과 이해도를 가진 사람으로 평가되며, 실제로도 그렇다), 특히 여자를 너무 이쁘게 잘 그린다(선정적이지 않음에도 야한 느낌을 주는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