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와 회원은 말보다는 몸으로 더 많이 소통한다. 자세에 대한 교정이나 궁금증 등에는 언어로 소통을 하지만, 미트를 치고받는 시간이 제일 많기 때문이다. 왜 이게 소통이냐 하면, 회원들은 저마다 각자 스피드, 자세, 몸짓, 움직임, 체력이 다 다르기 때문에 코치는 회원 한 명 한 명을 각기 파악해서 그에 맞는 미트 지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서로의 합을 맞추는 일종의 대화, 소통이 되는 것이다. 서로의 합이 잘 맞을 때, 비로소 회원과 코치가 서로 만족하는 운동을 하게 되고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게 된다. 따라서 코치는 회원들 한 명 한 명을 파악하고 기억해서 거기에 맞는 움직임으로 지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빠르게 치는 사람, 느리게 치는 사람, 키 큰 사람, 키 작은 사람 등등 사람마다 그에 맞는 미트 지도가 필요한 것이다. 항상 미트를 치기만 하던 내가 처음 미트를 받게 되었을 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어떤 코치님은 나를흡사 로봇과 같다고 묘사했다. 그만큼 나는 얼어있었고뻣뻣했다.내 운동만 하다가 남에게 맞춰서 움직이려다 보니 부자연스럽게 되고, 1대 1로 마주 보고 사람을 대하다 보니 거기서 오는 어색함과 불편함도 한 몫했던 것이다. 사람이 처음 만나 소통을 하고 친해지는데 기간이 걸리는 만큼, 나에게 이 소통은 쉽지 않았다.
비언어적 소통 '스파링'
스파링에는 매스 스파링(매도우, 라이트 스파링)과 풀 스파링( 하드 스파링)이 있다. 매스 스파링은 원음으로 하면 method sparring이다. 스파링 하는 방법, 주먹을 치고받는 방법을 익힌다는 뜻이다. 쉽게 말하면 약속대련 같은 것이다. 따라서 세게 치고받는 게 아니라 연습처럼 익히기 위해서 하는 스파링 개념이다. 보통 체육관에 가면 풀 스파링보다 매스 스파링을 많이 한다. 풀 스파링을 하다 보면 서로 감정이 상하기도 하고 부상의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힘 조절을 못 하는 사람들은 이 매스 스파링을 통해서 힘을 조절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서로 살살치기로 약속하고 하는 건데 한 명이 세게 치기 시작하면 서로 달아오르고 감정이 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화를 할 때도 서로 주고받고 이어지는 대화, 말이 통하는 대화, 서로를 존중하는 대화를 하듯이 매스 스파링을 할 때도 서로를 존중하고 자신을 절제하며 해야 한다. 말로 하지 않지만 몸을 통해서 서로 소통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참 많다. 연습처럼 하지만 실제 치고받기 때문에 그 속에서 어떤 실전 감각을 익힐 수 있으며, 맞고 때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극복하고, 맞아도 당황하거나 흥분하지 않는 법을 익히고, 흥분하지 않게 된 상황에서 배운 것을 활용하는 연습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과정에서 회원들이 흥분하지 않도록 코치가 지도를 해야 하며, 상황에 맞는 세컨드(링밖에서 경기자에게 작전지시를 하거나, 부상을 당한 경우 돌보는 사람)의 역할도 해줘야 한다.
미트 받는 일은 여전히 어렵고 힘들다
위에서 말했듯이 미트를 치고받는 일은 회원과 코치의 비언어적 소통이다. 서로의 합이 중시된다. 처음 미트를 쳐보시는 회원님들은 미트 치는데 익숙하지가 않으셔서 나와 합이 잘 맞지 않을 때가 있다. 반대로 미트 치는데 익숙하시고 주먹이 빠른 회원님들은 너무 빨라서 내가 합을 맞추기 어려울 때가 있다.내가 미트를 받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한 번은 나보다 훨씬 오래 복싱을 하신 회원님이 내가 미트 받는 게 너무 미숙하다며 내 미트를 못 치겠다고 말하신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날은 그분을 건너뛰고 미트를 받았었다. 다른 회원님들이 다 있는데서 그런 소리를 들으니 자존심도 상하고 부끄러웠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 나는 미트 받는 일에 악에 받쳐 더 빠르고 더 강하게 미트를 받으려고 노력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단기간에 많이 성장했다. 그분의 말이 나의 변화에 자극점이었던 것이다. 최근에는 나를 지적했던 그 회원님에게서 이제는 미트를 정말 잘 받는다는 말과 함께 그때 짓궂게 말한 것에 대해 미안했다는 사과를 받았다. 그분은당시내가 기분이 상하더라도 더 발전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말했다고 하셨다.
이제 나는 미트 받는 일에 어느 정도 적응은 했지만, 아직 요령이 없기 때문일까 여전히 어렵고 힘들다. 사람마다 다른 스피드, 높이, 세기, 체력 등을 신경 쓰며 하다 보니 진이 빠진다. 나는 스틱 미트를 사용하는데, 1달에 한 번 정도는 꼭 미트를 받다가 내 몸을 치곤 한다. 상대의 주먹에 맞춰 미트를 세게 휘둘렀는데 상대방이 미트를 맞추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미트가 힘을 잃지 않고 그대로 반원을 그리면서 내 몸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특히 어퍼 같은 경우는 미스가 나면 미트가 원심력을 받아 그대로 내 중요부위 쪽으로 날아오기 때문에 특히 조심해야 한다. 이미 남자만이 아는 고통을 경험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일이 생긴다는 건 그만큼 내가 지쳐있어 집중을 못 한다는 뜻이다. 앞으로 좀 더 회원들과의 비언어적 소통에 익숙해지고 쉽게 지치지 않도록 요령을 터득하는데 신경을 써야겠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