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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패맨 Nov 02. 2023

방백남녀

포기, 아픔, 극복


웹툰 [방백남녀]
사진 출처 : 나무위키

 내가 정말 극찬하고 싶은 웹툰 중에 하나가 고태호작가의 [방백남녀]라는 작품이다. 두 남녀가 각기 서로가 가진 아픔을 극복하고 나아가는 모습을 그려낸 만화로, 장르는 로맨스가 아니라 드라마다. 다양한 상황 속에서 느껴지는 인물 간의 세세한 감정심리묘사(특히 인물의 불편함이나 아픔) 상당히 뛰어난 작품으로, 이 작가가 실제로 주인공들과 같은 삶을 살았던 게 아닐까 싶은 근거 있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같은 의미로 내가 기안 84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이유 역시 그가 그려낸 만화들은 학창 시절에 누구나 충분히 그리고 당연하게 겪어봤을 실제적 이야기들을 재미나게 그려내기 때문이다).

 축구선수의 꿈을 꾸다가 포기하게 된 남자 주인공 민남주의 스토리는 어떤 일에 철저히 노력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민남주는 분명 축구에 재능을 타고났지만, 그것은 어설픈 재능이었고 집안도 그를 힘있게 밀어줄만한 형편이 되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믿고 지원해 주는 부모님을 보며, 그는 남들보다 몇 배로 연습하고 감독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경기에 선발로 나가기 위해서는 부족함없이 돈줄이 받쳐줘야 하는데 그는 그럴 형편이 안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노력을 비웃듯이 담배를 태우며 연습도 별로 안 하는 뛰어난 재능러 친구에게 크게 뒤처진 자신의 모습과 아무리 감독에게 잘 보이려 노력해도 선발로 뽑히기는커녕 오히려 더 못한 대접을 받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그는 현실에 지친 나머지 축구를 포기하경기도중 일부러 부상을 입는다. 그렇게 그의 무릎은 박살이 나고 더 이상 축구를 할 수 없게 된다.




부상이라는 핑계
사진 출처 : 유튜브 툰읽남

 얼마 전 샌드백에 어퍼를 칠 때마다 오른쪽 손목이 아리길래 지속되는 통증에 병원을 찾았다. 병명은 삼각섬유연골복합체 손상이었다. 다행히 초기라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의사는 손목 사용을 금하라고 했다. 하지만 일 자체가 손목을 쓰는 일(소스 들어 붓고, 미트를 받는 일)이라 손목을 쓰지 못하면 밥줄이 끊기는 것은 당연한 일, 최대한 손목에 무리가 안 가도록 손목에 테이핑을 하고 손목보호대를 착용하기로 했다. 복싱도 당분간 하지 않기로 했다. 시합 역시 포기했다. 풀 파워로 때리는 시합에서 잘 못하다가는 손목이 더욱 나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쉽고 공허한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사실 한편으로는 안도되고 마음이 편안했다. 시합이라는 스트레스와 두려움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민남주가 떠올랐다. 물론 내가 민남주처럼 엄청난 연습을 하고 노력을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하루하루의 고단한 일상 속에서 노력해도 느는 것 같지 않은 실력과 80kg로 체급을 올린 것에 대한 걱정들이 시합을 나가는 부담감을 더 크게 만들었다(또한 이번에는 꼭 이겨야 하지 않겠나 하는 부담감도 있었다). 솔직히 말해 손목이 확실히 안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어퍼나 훅같은 특정 동작이 아니라면 주먹을 휘두르고 때려도 통증은 거의 없는 편이다. 그럼에도 나는 손목부상을 핑계 삼아 시합을 포기한 것이다. 물론 내가 무슨 선수도 아니고, 부상이 나을 때까지 휴식을 취하는 것이 정답이긴 하다. 하지만 확신 없는 두려움과 피로감을 방패 삼아(마치 민남주가 바뀌지 않는 현실에 지쳐 자발적으로 부상을 입었듯이) 안전한 후방으로 도망친 것만 같은 패배감이 나를 성가시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방백남녀]의 민남주는 결국엔 자신의 삶을 옭아매던 축구에 대한 트라우마를 떨쳐내고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그가 편안한 마음으로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아스날의 경기를 보는 모습은.. 네이버 웹툰 전체를 통틀어 손가락에 안에 꼽을 정도의 명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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