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행동만 보아서는 안 되는 이유
그가 성인이든 부부든, 청소년이든 아동이든 내담자와의 첫 만남은 늘 두근두근이다. 타인의 삶 속으로의 동반 여행을 앞둔 설렘일 수 도 있고 마주한 한 개인에 대한 상담사의 최소한의 윤리일 수 도 있겠다.
지금부터 3주 전, 소속된 학교에서 의뢰된 학생과 마주했다.
이제 초등학교 3학년 남학생. 어떤 아이일까? 자신의 어려움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는 아이일까?
상담사의 이런 궁금증은 아이(내담자)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데 도움이 되는 단초이자 아이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교실에선 어떤 모습일까. 경력 많은 담임교사였지만 지도하는데 어려움이 꽤 많아 보인다. 교사에 대한 공격적인 태도, 교실 이탈, 친구들을 돌아가면서 괴롭히는 행동, 남의 것 함부로 대하는 태도, 분노 감정, 교과서도 펴지 않는 불성실한 학습태도 등 교실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흔히 볼 수 있는 다양한 행동을 일삼는 아이다. 이런 행동이 더 낮은 학년부터 시작된 것이라 하니 학교생활이 얼마나 힘겨웠을까 충분히 짐작이 된다.
동글동글 귀여운 눈빛의 남아는 처음 보는 상담사에게 "저는 평생 저와 함께 가야 하기 때문에 저와 친해야 해요, 쌤은요?" 열 살짜리 남아의 질문에 흠칫 놀란다. 이건 상담사의 대사인걸^^
무엇보다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한 인정이 중요한 아이였다. 논리적이면서 감성 또한 풍부한 아이였다. 아이가 느끼고 있을 세심하면서 불편한 내면의 세계가 느껴졌다.
"친구들이 허세 부리는 거 보기 싫어요"
"친구들이 맨날 시비 걸어요" "어떤 고통인지 알려주고 싶었어요"
"밥 안 해줘도 좋으니 (엄마가) 화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이가 느끼는 세상은 그렇게 억울했다. 그래서 늘 투쟁해야 했고 방어해야 했고 감정에 호소해야 했다.
자신의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할 때, 관계에서 적절하게 수용되지 못할 때, 반감이 생기고 억울하기 마련이다. 화가 나기 마련이다. 공감받고 이해받을 때 인간은 성장한다. 더 나아갈 수 있다. 열 살 꼬마 아이는 비난받고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곤 했다. 시시때때로.
가정과 학교는 아이의 울퉁불퉁한 행동만을 보고 판단하기 쉽다. 착한 아이, 말 잘 듣는 아이, 열심히 하는 아이, 그래서 잘하는 아이, 이와 상반된 아이는 인정받지 못하거나 거부당하기 일쑤다. (못 미치는) 그런 아이들에게 우리는 언제까지 보이지 않는 제한으로 그들을 가둘까.
아이는 자신이 가정에서 학대당하고 있음도 짙게 호소했다. 학대의 형태와 수준은 높지 않았지만 부모님에게 반드시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마주한 어머님은 의외로 세련되고 단아한 분위기였다. 이것도 상담사의 선입견이 될 수 있음을 자각하며 학대 유무를 확인해 나갔다.
부모는 흔히 자신의 아이를 잘 안다고 생각한다. 자녀가 잘 자라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해 가길 바라는 마음이 더해져 때로는 자녀가 부모 자신의 가치관대로 의지대로 살아가길 원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어머님은 아이가 호소한 사실의 대부분을 인정했다. 다만 보통의 부모님들이 행하는 수준의 체벌이었지만 예민하고 감수성이 큰 자녀에게는 그 체벌이 어마어마한 무게로, 커다란 상처로 기억 속에 잠식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두 번의 만남을 통해 알게 된 아이의 어두운 세상. 자의식이 또래보다 훌쩍 자란 아이는 어른들에게 지나치게 말대꾸하고 어긋난 행동을 일삼는 말썽꾸러기로 취급되곤 했다. 자신의 존재가치가 무엇보다 중요한 아이지만 존재 자체도 인정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오는 좌절감, 패배감은 자신과 타인을 배척하고 공격하는 행동으로 자신을 몰아갔다. 지켜야 할 행동수칙이나 일방적 약속에 반항하고 거부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이런 행동과는 상반된 아이의 긍정적인 모습을 찾아 어머님과 함께 나누었다. 장점은 아이가 가진 고유의 가치라기 보다는 어른들이 '보아주고' '찾아주는' 보물 같은 것이다. 아이는 어른들에 의해 그렇게 성장한다. 힘겹게만 느껴졌던 자녀양육에 대해 충분히 공감받았다는 안도감이 어머님을 긴장감에서 자유롭게 만들었을까.
"앞으로의 방향, 나 자신의 태도, 일관성 있는 생각과 실천"
어머님의 짧은 소감문. 몇 개의 단어로 정리하는데 소요된 긴 시간 속에서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는지 지켜보는 내내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어머님이 실천해 나갈 일관성있는 모습을 기대한다.
현재까지 세 번째 만남을 이어간 열 살 꼬마 아이는 벌써 교실에서 변화한 행동을 보인다며 담임선생님을 놀라게 한다. 수업시간에 교과서를 펼치고 공격적인 행동과 늘 격해있던 감정이 가라앉아 제법 순둥순둥 해진 얼굴빛을 보인다고 한다. 매일 싸웠던 친구들과의 심리적 거리를 두고 있으며 먼저 화해하는 용기 있는 행동을 보인단다. 이제 시작이다.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단 한 사람과의 짧은 소통만으로도 그의 세상은 어둠에서 무지갯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아이와의 여행은 진행 중이다. 함께 마주할 때 그는 자신의 온갖 세상에 나를 초대한다, 상담사인 나를 즐겁게 한다. 웃게 만든다. 예민하고 어린 꾸러기는 너무나 순수한 존재였던 까닭일까? 앞으로 좌충우돌 열 살 꼬마 아이의 힘찬 도약이 기대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