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현정 Aug 02. 2022

엄마처럼 살기 싫었다

사업을 했던 아빠는 늦게 들어오는 것이 부지기수였다. 옷가게를 하던 엄마는 ‘내 가게’라는 책임감에 평생 하루를 쉬지 못하고 일했다. 하교하고 돌아가면 엄마가 반겨주는 집이 부러운 것은 어린 마음에 당연했지만, 왠지 그런 불만은 커갈수록 더해졌다. 내가 성인이 되어 근교라도 하루쯤 엄마를 데리고 갈 수 있을 여력이 되었을 때, 엄마는 한순간도 맘 편히 알겠노라고 한 적 없었다. 하루라도 문 닫으면 헛걸음하고 기다릴 손님들이 눈에 밟혀서다. (엄마의 가게는 단지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아주머니들의 모든 것을 쏟아내는 힐링 장소다) 나는 엄마의 그런 집착과 고집스러움이 갑갑했다. 


그런 내가 방송인이 되었고, 한창 결혼 준비를 할 때였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아침 뉴스를 준비하고, 생방이 끝나면 바로 메이크업 후 방송 야외 촬영, 급히 끝내고 바로 다른 방송국으로 이동해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라디오 생방송. 여기에 날마다 추가 스케줄까지. 식 준비는커녕 잠을 하루에 평균 2시간 남짓 자면서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드레스나 스냅사진 등 여러 부분에서 결혼식이란 여자의 로망을 갈아 넣는 작업이 되기도 하고, 혹은 커플이 함께 준비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우리 커플 결혼식의 모든 과정은 하나부터 열까지 남편 몫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드레스는 신부가 입어 봐야 하는 것이었고, 겨우 짬 낸 스케줄에 차 안에서 30분씩 쪽잠을 자가며 가봉 작업을 거쳤다. 샵 매니저는 통사정하며 “신부님 그러시면 안 돼요.” 몇 번이나 부탁했다. 내 사정을 뻔히 알고 있는 방송국 친한 친구가 일생일대의 날을 이렇게 준비해선 후회할 거라며 충고했고, 결혼식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결국 터져버렸다. 난 엉엉 울며 말했다. “엄마처럼은 살고 싶지 않았는데..”


신혼여행도 그랬다. 나 때문에 모든 스태프들의 스케줄이 영향받는 것이 싫어서 남편에게 미리 말해두었다. 신혼여행 못 갈지도 몰라. (지금 생각하면 미친 짓이지만) 그런 것마저 모두 이해해주는 사람이라서 내가 결혼이란 걸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신혼여행을 가지 않겠다는 나의 선언에 모든 방송국 스태프들은 나를 만류했고(무서워했다), 제발 좀 가라고 떠밀어준 덕분에 감사히도 우리 부부는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지구 반대편 유럽에 가서도 대타로 채운 내 프로그램을 실시간으로 남편과 함께 들은 것도 현실이지만... 


몇몇 사람들은 프리랜서 방송인들은 ‘잘릴까 봐’ 자리를 비우지 못한다고 말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난 항상 어떻게든 미리 세팅해 둔 방송 스케줄에 우선을 두었고, 코너를 진행할 때에도 단 한 번도 녹음방송을 내보낸 적이 없었다. 담당 pd가 녹음도 괜찮다고 했지만, 모처럼 잡아놨던 홍콩 여행 일정을 급하게 짧게 바꾼 것도 갑자기 생긴 생방송을 위해서였다. 


그것은 비단 자리보전의 문제가 아니었다. 기다리는 손님이 눈에 밟혀 가게 문을 닫지 못한 엄마처럼 나는 청취자들과의 약속에 그토록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장 내일이라도 하차할 수 있는 것이 프리랜서 방송인이기 때문에 하차 후가 두려운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오롯이 책임져야 할 ‘내 것’ 이기 때문이다. 그제야 난 비로소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내 것’, ‘내 터’에서 가장 자유롭고 행복한 자신이 있다는 것을. 

작가의 이전글 윤석열 정부의 학제개편, 초등학교 입학 1년 앞당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