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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나폴리

EP.05 님들아, 신혼여행 나폴리로 가지 마오

by 체리

님들아, 신혼여행 나폴리로 가지 마오

생각보다 더 좁은 길과 그 안에서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운전하는 이탈리아 운전자들, 거기에 중앙선도 침범하며 내달리는 오토바이들에 혼이 쏙 빠질 지경이었다.


모든 일엔 양면이 있다. 이는 이후 이어질 내용에 대한 변명이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흑백요리사>를 참 재밌게 봤다. 최종 우승을 거머쥔 나폴리맛피아의 고고한 태도는 제법 매력적이었다. 우연스럽게도 그의 작은 가게가 있는 동네에 둥지를 튼 우리 부부는 그가 그렇게나 자랑스러워했던 '나폴리만의 조리법'이 참 궁금했다. 그가 지나가는 인터뷰를 통해, 나폴리의 음식은 이탈리아 내에서도 차원이 다르다고 표현했다. 예약하기 너무나도 힘든 그의 가게 대신 본토의 맛을 느끼고 오겠노라고 - 너무나 기대하던 여행지 중 하나가 나폴리다.


꿈같았던 로마에서의 3일을 뒤로하고, 나폴리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로마에서 나폴리까지 기차로 단 1시간 남짓, 생각보다 짧은 거리다. 창 밖으로 펼쳐지는 드넓은 평야와 초록색으로 물든 곡식들의 모습은 자연스레 나폴리로 향하는 마음을 더 들뜨게 했다. 잠깐 핸드폰을 보는 사이, 나폴리 중앙역에 도착한다. 로마 테르미니역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신식의 역사, 생각보다 세련된 이탈리아의 곳곳이 마음에 든다. Linea 1을 타고 서너 역만 가면 우리의 에어비앤비 숙소가 놓인 Toledo톨레도다. 놀랍게도 우리의 숙소를 향해 나가는 출구명은 Via Toledo(비아톨레도, 나폴리맛피아님의 식당 이름)였다. 우리는 이탈리안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이 표지판 앞에서 사진을 찍어댔다.


한국에서
비아톨레도는 못 갔지만
현지 비아톨레도라니!


비아톨레도 출구를 무사히 찾아 여행의 길이만큼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나선다. 돌길에 와다닥 소리를 내며 나서니 로마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동네가 펼쳐진다. 왜인지 남미 어딘가가 떠오르는 후미진 골목들, 색깔이 바라고 회벽이 떨어져 나간 건물들, 깨진 돌부리가 걸음 건너마다 펼쳐지는 돌길, 그 안을 거니는 국적 가늠이 되지 않는 사람들. 그 분위기에 움츠러들어 잘 닫아둔 가방도 괜히 한번 더 품 속으로 깊이 끌어안는다. 직전 여행지에서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나폴리 가면 소매치기 더 조심하셔야 해요.
이탈리아 사람들, 특히 로마 사람들은 나폴리 사람들과 같은 국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정도예요.

지나가며 힐끗거리는 모든 시선이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행의 좋은 시작을 망치고 싶지 않아 긍정 회로를 돌린다. 기분 탓일 거야, 기분 탓일 거야...


애써 어그러진 기대를 얼기설기 세워두고 숙소를 찾는데 열중한다. 하필 에어비앤비 숙소로의 입성 과정도 녹록지 않다. 건물 단위로 골목이 늘어선 나폴리에선 유독 구글 맵의 정확도가 떨어졌다. 호스트가 전달해 준 주소지로 검색을 하고, 지도가 찍어준 목적지 주변을 몇 바퀴 뱅글뱅글 돌아도 안내된 숙소 입구가 보이질 않는다. 신랑과 나는 돌아가며 서로의 짐을 도맡아 봐주고 온 동네를 두어 바퀴 돌고 나서야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아뿔싸! 가는 날이 장날이었던 걸까. 호스트가 원격으로 문을 열어준다던 과정마저 삐걱댔다. 갑자기 인터넷이 터지지 않아, 인터넷으로 제어되어야 할 문이 열리지 않았고 차갑고 스산한 계단에 앉아 15분 정도를 멍하니 기다려야 했다.


다행히도 숙소 안은 제법 괜찮았다. 멋진 인테리어와 높다란 천장은 사진과 다르지 않았으나, 숙소를 둘러싼 환경이 거칠 뿐이었다. 다시 한번 '기분 탓일 거야'하는 주문을 외치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숙소 밖으로 나선다.


IMG_9027.heic 스산한 날씨와 유독 축축한 날씨의 대환장 콜라보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나폴리의 허름하고 빛 하나 들지 않는 골목에 자꾸만 양 어깨가 한없이 땅으로 꺼진다. 미식을 맛보면 달라질 거야. 나폴리의 피자는 어떨까, 애써 설레는 마음을 끌어올리려 신랑에게 쫑알댄다. 일요일이라 대부분의 유명 맛집이 문을 닫았기에 인파로 그 맛을 가늠하며 동네 주민으로 바글거리는 피자집을 골라 잡았다. 이탈리아에선 실내에 아무리 훌륭한 좌석이 마련되어 있어도 모두들 바깥 자리를 먼저 채운다. 우리도 이들 곁에 자연스레 자리를 잡는다.


어딜 가도 기본적인 영어가 통하던 로마와 달리, 나폴리에선 손짓 발짓을 써야 했다. 투박하지만 왠지 따스한 눈빛을 가진 주인 내외가 메뉴판을 건네주고 우리 곁을 오며 가며 살폈다. 어디서나 영어가 술술 통하던 로마와 달리 나폴리에서는 영어 소통이 어려워진다. 덕분에 손짓 발짓 눈빛을 총 동원해 메뉴를 주문한다.


언제나처럼
신랑은 맥주, 나는 와인!


음료를 받아 들자마자 팔 끝을 스칠만한 거리에서 차들이 빠른 속도로 오간다. 아차, 잘못 자리 잡은 것 같다. 차 하나 간신히 지나갈법한 좁은 골목에, 오토바이와 크고 작은 차들이 쉴 틈 없이 지난다.

자기, 몸 안 쪽으로 들여! 어휴-

로마에선 한없이 헤실거리던 우리는 서로에게 걱정 어린 말을 계속 건넨다. 술이라도 더 취해야 괜찮아질 것 같다. 뭔가 - 뭔가다. 여행할 때만큼은 최대한 그 문화를 즐기려 마음을 여는 나에게도, 이런 종류의 거침은 생경하다. 서유럽에서 이런 분위기라니! 가난하다고 유명한 동유럽을 다니면서도 이렇게 날 것의 게토ghetto한 것들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IMG_8892.HEIC 차와 나 사이의 거리가 어처구니없이 가까워서 찍어본 사진


우리는 각자의 음료를 홀짝이며 한참을 침묵한다. 로마에서 꿈같았던 시간과 자꾸만 이 상황을 비교하게 된다. '맛없기만 해 봐라' 하는 심통 난 마음이 고개를 쳐든다.


IMG_8913.HEIC Pizzeria Laezza의 PIZZE TRONCHETTO


드디어 피자가 나왔다. 로마에서 시켰던 숱한 피자와 확연히 다른 생김새다.

누가 봐도 '나 화덕에서 구워졌소' 싶은 노릇노릇하고 퐁신퐁신한 도우와 그 탄력과 신선함이 시야로 느껴지는 새하얀 치즈! 정신없이 빵빵 대는 차들을 애써 외면하고 한 입 가득 피자를 베어문다.


와, 맛있다- 아주 잠시 심난한 나폴리 뒷골목이 고요하게 느껴질 만큼 맛있다. 내가 시킨 피자는 맨 도우에 소스 없이 약간의 치즈만 올려 구운 뒤, 그 위로 신선한 프로슈토와 토마토, 루꼴라를 올려 바로 내어주는 일종의 샐러드(?) 같은 피자였다. 참 신기하게도, 이탈리아에서 피자는 느끼하거나 부대끼지 않는다. 이건 그러니까 한국에서와는 다른 카테고리의 음식이다. 일 년에 피자를 먹는 횟수가 손에 꼽던 나도, 이탈리아에선 1일 1 피자를 열렬히 실천하게 된다. 참 새롭게도 이탈리안 피자는 '신선함', '산뜻함' 따위의 감정을 준다.


그래, 내가 느낀 나폴리의 첫인상은 첫인상일 뿐일 거야.






나폴리 안에서는 크게 볼거리가 없다기에 그 이름도 유명한 쏘렌토 지역을 방문하기로 했다. 쏘렌토는 아말피, 포지타노 등 레몬으로 상징되는 이탈리아의 대표 관광지가 있는 반도 지역이다. 한국에서도 수차례 들어온 이름들이라 막연한 환상이 가득했다.


IMG_8973.HEIC 쏘렌토 지역부터 시작되는 골목들, 아주 양호한 길목의 모습! 이보다 더 좁고 험한 길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나폴리에서 쏘렌토 지역으로 이동하려면 두 가지 정도의 방법이 있다. 투어 프로그램을 신청해 관광버스를 타고 가거나, 렌트를 해 직접 달려가는 방식이다. 우리는 렌트를 선택했다. 신혼여행은 낭만적이어야 하니까!


낭만은 개뿔, 쏘렌토로 이르는 길은 한국의 대관령 길과 같은 절벽길이 한 시간 이상 이어진다. 두 대의 차가 간신히 지날법한 좁다란 꼬불길이 절벽을 따라 만들어져 있다. 운전이 어려운 지역이라 익히 듣기는 했으나, 운전을 잘하는 신랑을 믿고 다소 안일하게 생각했나 보다. 생각보다 더 좁은 길, 그 안에서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운전하는 이탈리아 운전자들, 중앙선도 침범하며 내달리는 오토바이들에 혼이 쏙 빠질 것만 같았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신랑을 달랠 방법으로 치트키를 쓴다. 바다로 유명한 지역이니 이곳에서 나는 해산물은 그 저렴한 가격과 신선함으로 유명하다. 동선에 놓인 Mare(바다)란 이름이 들어간 식당을 하나 골라 방문한다. 우리는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이곳에서 최대한의 사치를 부려본다.


랍스터가 반마리 통째로 올라간 파스타, 오늘 잡은 해산물을 튀겨 내주는 플레이트(Catch of the day), 봉골레, 와인 글라스 하나를 한 상 가득 시킨다. 이탈리아에서 먹는 양식은 참 깔끔하고 깨끗하다. 분명 밀가루가 잔뜩인 메뉴인데 속이 편한 느낌이다. 다른 조미료 없이 각 원료에서 나오는 본연의 맛을 한껏 끌어올린 메뉴들이라, 한국 밖애서 집밥을 맛보는 듯하다. 오늘 시킨 메뉴들도 어느 하나 짜거나 자극적인 맛이 없다. 새파란 바다를 눈앞에 두고, 차갑게 칠링 된 화이트 와인을 한 입 가득 우글거리며 식사를 즐긴다. 종종 이 시간이 꿈같다. 숨 막히던 여정을 잠시 잊고 와인에 온 정신을 맡긴다. 이탈리아에선 글라스를 시키면 와인 반 병은 될법한 양을 턱턱 내어준다. 그 덕에 알지가 됐다고 떠들던 나는 종일 와인을 달고 산다. 빈 속에 싱그럽고 산뜻한 와인이 닿고 나면 곧이어 온몸에 따뜻한 기운이 퍼진다. 나를 예민하게 하던 모든 일들이 사르르 녹아드는 기분이다.


평소에도 해산물을 참 좋아하는 신랑은 신나게 식사를 마쳤다. 오랜만에 정말 즐겁게 식사를 하는 그를 보며, 더러 기분이 좋다. 빵빵하게 부푼 배를 통통 두드리고 해안가를 잠시 거닐었다. 그야말로 단짠의 하루다.


IMG_9021 2.HEIC 쏘렌토 포지타노 지역


다시 기운을 내 쏘렌토 메인 지역으로 들어가기로 한다. 앞으로 한 시간만 더 가면 그 유명한 포지타노와 아말피가 나온다. 한국에서도 귀에 박히도록 들어온 레몬으로 대표되는 곳들을 경유지와 목적지로 삼는다.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사람들이 이곳을 노래했을까 기대감이 솟아난다. 하지만 정말 나폴리는 단짠의 연속이다. 잠깐 아름답나- 싶으면 다시 한번 그 마음을 돌리게 할 모습을 던지고 만다.


이전 골목보다 더 좁으며, 이제 테라스석까지 도로를 점령한 길들이 이어졌다. 거기에 말도 안 되는 경사까지 더해지니 보조석에 탄 나 마저 몇 번이나 침을 꼴깍 삼켰다. 방어 운전과 배려 운전이 몸에 밴 신랑의 표정이 시시각각 굳어졌다. 한두 번 배려하다 보면 말도 안 되게 끼어드는 차와 오토바이에 적당한 선에서 배려를 멈추고 위험한 끼어들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다시 짠내의 반복.


차라리 내려서 동네를 구경하자.

결단을 한다. 더 깊이 들어갈 것 없이, 포지타노 초입에 차를 대어 두고 걸어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타난 주차장 표지판에 잠시 머뭇대자 주차 요원이 크게 손짓한다. 차를 대고 나니 이들의 본색이 드러났다.


1시간에 12유로!


12유로면 약 2만 원 달하는 금액이다. 말도 안 되는 금액에 한껏 인상이 구겨졌지만, 우리 뒤로 연달아 들어오는 차들에 한쪽 방향으로만 통행할 수 있는 구조의 주차장에서 차를 뺄 수도 없다. 다행이랄까, 우리 뒤로 차를 세운 서양인들에게도 10유로랬다가, 12유로랬다가, 20유로가 되는 놀라운 시세를 보여준다. 한국이었다면 부득불 차를 빼자고 했을 나지만 이 일대가 다 비슷하다기에 포기하고 만다.


내려서도 인도가 구분되지 않은 도로에서 차들이 옷깃을 스치듯 달려간다. 몇 번이나 위험한 상황을 직면하며 동네로 애써 시선을 돌려본다. 예쁘긴 예쁜데 - 이곳을 꼭 목숨을 내어놓고 달려올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었나? 정말 모르겠다. 아무리 두 눈에 필터를 끼워 넣을래도 온 동네가 부산 감천마을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앞으로 한 시간 더 달리면 아말피가 나온다. 하지만 불안한 운전 환경은 자꾸만 우리가 서로에게 날이 서게 만들었다. 우리는 재빨리 나폴리로 돌아가기로 한다. 나폴리에 닿아 전날 저녁 봐둔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려고 하니 NAPOLI라고 쓰인 모자를 쓴 누군가 안내를 한다. 처음에는 주차요원일까 싶었는데, 차를 대자마자 돈을 달라고 손을 벌려 대는 모양새가 이상해 신랑에게 무시하자고 말했다. 유럽 여행이 처음인 신랑은 자꾸만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 사람은 사기꾼이라고!


이런 상황에선 더욱 예민해지는 나는 신랑에게 '거기에 자꾸 눈길 주지 말고 빨리 와!'라고 소리쳤다. 그는 고민이 됐는지 끝끝내 미련 넘치는 눈빛을 보내 사기꾼이 끈질기게 달라붙고 만다. 주차 기기에 다가가 직접 하려고 하는데도 옆에 붙어 카드를 움켜쥐질 않나, 하루동안 쌓여온 스트레스가 폭발할 것 같았다.


- 나는 보통 이런 때 그냥 돈 주고 말아. 이러면 우리 차에 해코지할 줄 어떻게 알아?
- 여기서 돈 주면 앞으로 모든 아시아 관광객이 타겟이 되는 거라고. 설령 돈을 준다 해도 차에 해코지하는 건 별개의 일이야.

수많은 여행을 통해 사기꾼에게 흔들리지 않는 단련이 되어있던 나는 신랑의 걱정 어린 중얼거림이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이런 상황에선 신랑이 더 강하게 나가 힘이 되어줬으면 좋겠는데 - 경찰을 부르겠다고 하진 못할 망정 오히려 돈을 주자고 설득하고 있는 모습에 화가 났다. 결국 누적된 이 마음은 뾰족한 모양을 숨기지 못하고 툭툭 튀어나오다 잠들기 전 다른 핑계의 싸움으로 변하고 말았다.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다, 사람에게도, 도시에게도!

신랑은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상황을 종결하는 게 중요한 사람이라면, 나는 결론의 손해 여부 상관없이 올바른 방식으로 과정이 진행되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신랑은 완료주의에 가까운 사람이라면, 나는 완벽주의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는 결단과 실행은 빠르지만 그가 '완료했다'라고 말하는 일들이 나의 기준으로는 '갓 시작만 한 일'에 가까웠고 이것이 주로 우리의 싸움이 되곤 했다. 그는 늘 시작이 더딘 나를 답답해했지만 - 나 역시 제대로 마치지 못한 그의 일들이 답답하긴 매한가지였다.


별 이유 같지도 않은 문제가 불거졌다. 신혼여행 후 용돈을 정하는 일에 대한 문제였는데, 신랑은 자꾸만 용돈에 대한 이야기를 심심할 무렵이면 던져댔고 '이 항목도 용돈에서 써야 하냐'며 물었다. 나는 이미 수차례 결론을 지었다고 생각했던 논의가 거듭 언급만 되니 '또 시작만 하고 말 대화'에 날이 섰다. 용돈에 대한 이야기, 또 그를 대하는 서로의 태도에 대해 한참을 찌푸린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던 우리는 평행선 같은 논의를 한 시간여 동안 반복했다. 사실 답이 있는 언쟁이 아니다. 서로의 성향을 받아 드려야만 하는 문제였다.


분명 나폴리에서 느낀 불안과 스트레스가 싸움으로 이어진 것이다. 끝이 없이 이어지는 논쟁에 애써 문제를 덮어두고 사랑의 토닥임을 흉내 내고 잠들기로 한다. 오랜만에 등을 돌린 채, 날 선 잠을 잔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취객의 비명 소리 - 차를 대어둔 곳에서 우리 차를 누군가 해코지하진 않을까 불안함에 새벽에 몇 번이고 눈이 떠졌다.


자기, 나는 아직도
나폴리 매력을 모르겠어.
한번 찾아보고 싶어!


나폴리에서 자꾸만 터져 나올 것 같은 불안과 짜증을 꾹꾹 누르고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이다. 어떻게든 나폴리의 매력을 찾아보려 했지만, 조금 나은 수준의 음식 외에 대단한 매력을 찾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 다짐을 뒤로하고 나폴리를 떠나던 날, 짐을 싸는 마음이 언제보다 홀가분했다. 여정이 빠르게 지나가 다행이라고 생각한 첫 순간이다.


IMG_9035.HEIC


짐을 싸 밖으로 나서니 나폴리는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고운 얼굴을 내어줬다. 뜨거울 만큼 작렬하는 태양 아래 나폴리, 멀리서 보니 희극이었다. 그렇지만 나폴리의 양면에 속지 않으리다. 우리의 첫 부부싸움을 직관한 나폴리와 영영 작별 인사를 한다. 너와 나는 여기까지다.


어쩌면 상황이 사람의 마음을 지배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탈리아어로 신혼여행은 Luna di mielle이라고 쓰인다. 꿀 떨어지는 한 달이라고 직역된다. 즉 꿀 떨어지는 생각만 해도 모자랄 기간에 굳이 힘들고 거친 경험을 할 이유가 하등 없다. 뒤돌아 해당 여정을 돌아보아도 여전히 내 마음은 확고하다.


신혼여행에 꼭 나폴리에 들러야 할까? 내 대답은 NOPE!

님들아, 신혼여행 나폴리로 웬만하면 오지 마오.



2025.05.07. ~ 05.19. ROME – NAPOLI – SICILY (TRAPANI - PALERMO)
Siamo in luna di miele.
신랑 래리와의 부부로서의 첫 번째 여정이자, 첫 번째 공동 창작물인 《그와 - 그녀의 허니문 콘파냐》는 신랑 래리와 신부 체리가 함께 이탈리아 남부를 달리고, 걷고, 맛본 경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서로의 언어로 같은 하루를 기록한 콘파냐처럼 달달한 글로, 결혼과 신혼여행의 뽐뿌가 조금이라도 생기길 바라며 글을 썼습니다.

신랑의 글 ⇢ https://brunch.co.kr/brunchbook/honeyconpanna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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