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선 Dec 01. 2021

식구라는 게 별건가?

럭클 주립공원

다음날이 되자 또 야금야금 짐을 챙겨서 이번 여행의 메인이벤트인  ‘솔트스프링 섬 (Salt Spring Island)’으로 향했다. 2016년, 아내가 처제와 둘이서 갔다 온 후부터 줄기차게 얘기를 해 온, 널따란 초원에 누워 바다를 지나는 페리들을 구경하며 캠핑을 하다 보면 어느새 사슴들이 주변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그 환상의 캠핑장인 ‘럭클 주립공원 (Ruckle Provincial Park)’이 있는 바로 그 섬이다.


솔트스프링 섬은 걸프 군도 중에서도 제법 큰 편에 속하는데, 이 섬이 걸프 군도의 다른 섬들에 비해 2차 제조업이나 관광산업이 발달한 것은 단지 크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바로 지정학적 위치. 솔트스프링 섬의 어느 지역은 밴쿠버섬 동쪽 해안에서부터 1km도 안 떨어져 있고, 솔트스프링 섬의 ‘베수비우스 항구 (Vesuvius Ferry Terminal)’에서 밴쿠버섬의 ‘크로프턴 항구 (Crofton Ferry Terminal)’ 까지는 30분도 채 안 걸린다. 때문에, 밴쿠버섬 주민 중 더 조용한 삶을 찾는 사람들, 밴쿠버섬에 직장이 있지만 조용한 거주지를 원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었다. 또한 아름다운 자연환경 때문에 휴가 관광지로 잘 알려지면서, 여름 성수기에는 평상시의 몇 배가 되는 관광인구가 몰리게 되고, 자연스럽게 관광산업도 발달하게 된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이, (걸프 군도의 어떤 섬에는 BC 페리가 아예 안 다니는데) 솔트스프링 섬에는 3군데의 페리 터미널이 있고, 각각 밴쿠버섬 중부, 밴쿠버섬 남부, 그리고 광역 밴쿠버 (혹은 갈리아노 섬과 같은 다른 걸프 군도의 섬)를 연결한다. 그리고 이렇게 유명해지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솔트스프링’ 브랜드를 딴 제조업 - 식품가공업도 발생하게 되었다. 솔트스프링 커피 (https://www.saltspringcoffee.com/)는 코스트코에서 스타벅스나 라바짜와 함께 나란히 진열된 정도로 유명한 제품이 되었고, 솔트스프링 치즈 역시 서부 캐나다를 대표하는 유명한 염소 치즈 브랜드가 되었다.




아침부터 날씨가 흐렸다.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것 같아서 일찍부터 주변을 정리한 다음 트레일러를 달고 나섰다.  이번에도 밴쿠버에서 올 때 도착한 ‘스터디즈 항구’에서 솔트스프링 섬으로 가는 배를 타게 되었는데, 출발 시간보다 너무 일찍 나와서, 하릴없이 주변을 산책하며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섬 동쪽 끝에 위치한 ‘스터디즈 항구’에는 근사한 암벽 해안이 있어서 배가 들어오기 직전까지 산책하며 시간을 보내기 좋았다. 벨하우스 주립공원 (Bell House Provincial Park)이 바로 근처에 있는 것이 이해되는 풍경이었다.


럭클 주립공원은 섬의 동남쪽 말단에 위치하고 우리가 도착한 롱하버 (Long Harbour) 페리 터미널은 섬 중간하고도 동쪽 끝이어서, 솔트스프링 섬에 도착한 후에도 삼십 분 넘게 운전하고 가야 하는 거리였다. 섬 중간에 있는 갠지 (Gange)라는 동네는 제법 큰 항구도 있는, 이 섬에서는 그래도 가장 활발한 시내였는데, 관광도시답게 각종 관광상품을 파는 알록달록한 상점들과 귀여운 식당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솔트스프링 섬을 종단하는 가장 큰 도로이자 섬 남단 풀포드 (Fulford) 페리 터미널까지 연결해주는 '풀포드-갠지 도로 (Fulford-Gange Road)'가 이 마을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캠핑 트레일러를 끌고 페리에서 내린 후 복잡한 갠지 시내 한복판을 뚫고 지나가야 했다. “아니.. 길이 왜 이래..?” 하며 황당해했지만, 애초에 이 섬에서 교통 트래픽이 갠지에 집중되도록 설계가 되어 있어서 그런지, 커다란 RV들이 시내 도로로 들락날락하는 광경을 보고도 마을 사람들은 오히려 그러려니.. 하는 표정이었다.


럭클 주립공원 역시 엉뚱한 위치에 있는  마찬가지여서,  동남쪽 해안을 걸쳐서 공원이 형성되어 있지만, 그곳으로 들어가려면 개인 소유의 농장 한복판을 지나가야만 했다. 아마도 주립공원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어쩌면 육지로부터 공원으로 들어가는 길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농장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농장 존재 자체도 하나의 섬의 역사로 생각하는 모양이어서 주립공원 개발 당시 그냥 내버려  걸지도 모르겠다 (자세한 사정은 여기서 http://rucklefarmsaltspringisland.com/about-ruckle-heritage-farm/). 아무튼,  광경을 보고 혼란스러워하는 관광객이 나뿐만 있는  아니었던지, 주립공원으로 들어가는  양편에 있는 울타리들에는 “개인 소유 , 진입 금지 (Private Property. No Trespassing)”라는 간판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해서 트레일러 문 앞으로 길게 ‘어닝 (Awning 차양막)’을 설치했다. 사람이란 앉아 있다 보면 눕고 싶어진다고, 트레일러를 가지고 캠핑을 하기 시작한 후부터는 악천후에도 캠핑을 즐길 수 있어서 좋았는데,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쏟아지는 비를 맞는 건 그렇게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적어도 우산을 펼 수 있는 공간 정도는 어닝으로 커버를 해주자는 생각이 들었던 것인데, 하지만, 세모꼴로 펴지는 우리 트레일러의 경우 돌돌말이식 어닝을 고정형으로 달 수가 없어서, 이렇게 커다란 타프를 이용해서 필요할 때마다 쳐주고는 했다.

볼품없지만... 비 맞는 것보단 낫겠지



트레일러 세팅에, 이렇게 어닝까지 달고나면 ‘아.. 이제 집을 다 지었다..’라는 안도감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극심한 피로감이 몰려들기도 한다. 그도 그럴 듯이, 보통 캠핑장까지 이 커다란 덩치들을 끌고 운전해 오는 것만 해도 상당히 스트레스받는 일인데, 해가 지기 전에, 비 오기 전에, 혹은 모기떼가 달려들기 전에 빨리 집을 다 지어야 한다는 압박감 또한 상당한 것이어서 이렇게 세팅을 마치면 일단 좀 숨을 돌리고 쉬어야 한다. 그래서인지.. 아무리 추운 날씨에도, 캠핑에 있어서 맥주는 필수인 것 같다. 여하튼.. 잠시 쉬다가 캠핑장 구경을 나선다.

캠핑장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야생 사슴들


암벽으로 된 캠핑장 주변 해안


럭클 주립공원 캠핑장의 명성은 사실, RV 사이트가 아니라 텐트 사이트에서 나온다. RV 사이트는 비교적 조그마한, 그냥 평범하게 숲속에 만들어둔 (하지만 사이트 간 거리는 그리 넓지 않은) 캠핑장으로, 풍경도 그렇게까지 멋지지 않고 심지어 캠핑장 입구에 RV 급수 시설도 없어서 물을 수돗가에서 떠다 써야 하는 열악한 환경인 데 반해, 섬 동쪽 해안을 따라서 펼쳐진 광활한 초원 위로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풍경을 가지고 있는 캠핑장은 바로 텐트 사이트들이었던 것이다. 이 텐트 사이트들의 경우 모두, 차를 주차장에 두고 수레로 짐을 실어 날라야 하는 워크인 사이트였는데, (극히 일부만 제외하고는) 딱히 지정된 텐트 패드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여기저기 설치해 둔 테이블 근처에 자리를 잡아 텐트를 펴 두면 되는 것이어서, 성수기에는 서로 풍경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워크인 캠핑장 입구 주차장에는 짐 운반용 공용 손수레가 있다


마음에 드는 자리가 있으면 짐 나르는 동안 이렇게 찜 해두기도 한다 (하지만 9월이라서 가능했겠지)


우리는 비록 RV 사이트에 자리를 잡았지만, 이튿날부터 이번 여행에 같이 동반하게 된 B 님, J 님 가족분들은 텐트 캠핑을 했기 때문에, 이곳에서 캠핑하는 내내 멋들어진 바다 풍경을 보면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좋은 사람들과 같이 캠핑을 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주말 장터에도 가서 신선한 지역 농산물들을 같이 사 오기도 하고 그걸로 같이 식사 준비도 하고 있으면, '아.. 식구라는 게 별 거인가? 이렇게 계속 같은 식탁에서 함께 밥을 먹다 보면 식구가 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여럿이 함께 캠핑을 다니면 부부간 의견 분쟁만 막아주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아예 단체로 여행을 같이 다니다 보니까 생각지도 못했던 혜택을 입게 되었다. 아내가 주도하는 아침 등산 강행군에 '나 하나쯤이야..' 하면서 빠져도 그리 심하게 야단맞지 않는다는 사실.. 그동안 끌려다녔던 등산 행군에서 남편이 아니라 베어벨 (Bear bell 곰 경보용 종)로 사용되었었다는 사실을 알고 좀 서글프긴 했지만.. 그래도 숙취에는 여전히 숙면이 정답이었다.


그래도, 며칠 후 추석날에는 날씨도 화창해져서, 둥실 떠오른 보름달을 나란히 보면서 감상에 젖기도 했다. 이렇게 추석날 여럿이 북닥거리면서 음식 준비하는 것도 오랜만이어서 신기한 감정이 들었던 것 같다. 내친김에 (참 구태의연하지만) 달을 보며 소원도 빌어보고......

저 멀리로 광역 밴쿠버 트와슨 (Tswwassen Ferry Terminal)과 빅토리아 근교 스와츠 (Swartz Ferry Terminal)를 왕복하는 페리가 지나간다.



일반적으로 워크인 캠핑장에는, 사이트 별로 각자 모닥불 화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공간에 공동으로 쓸 수 있는 모닥불 화로가 있는데, 이날은 마침 아무도 그 모닥불 벤치를 쓰지 않아서, 밤늦게까지 불멍과 보름달멍을 다같이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정신없이 마시면서 살아가는 얘기와 싱거운 농담들을 번갈아 나누느라 어떻게 시간이 흘러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음날은 밴쿠버 섬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헤어져야 하는 날. 걸프군도 섬들에 있는 캠핑장에는 RV에 물을 채우거나 정화조를 비우는 시설 (Sani-station)이 없는 곳이 많다고 해서 출발 전에 집에서 미리 물을 채운 후 출발해야 했는데, 하지만 주로 음용수와 양치질용으로만 사용했는데도 물탱크의 물은 금방 바닥이 나버렸다. 워낙 작은 카라반이라서 물탱크 용량도 적은 것도 있었지만 (80L), 아무래도 장기 캠핑을 할 때에는 적어도 3~4일마다 한번씩은 물을 채워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솔트스프링 섬에서의 마지막 날 캠핑은 갠지 근처에 있는 민영 캠핑장을 이용하기로 했고, 가서 물도 채우고, 배터리 충전도 하고… 그리고 뭣보다 좀 씻고 싶었다. 아내와 처제는 그래도 주중에 시내에 있는 공영 수영장에 가서 씻기도 하고 놀기도 하고 그랬지만, 나는 그동안 물수건으로 몸을  닦기만 했어서.. 이때 즈음엔 개인위생 상태의 한계에 달하는 순간에 봉착했다.  


갠지 시내로 들어가는 진입로 근처에 있는 모히나 크릭 캠핑장 (Mowhinna Creek Campground)은 작고 아담하지만, 매우 아름다운 곳이었다. 흔히 생각하는 그런 주차장 같은 RV 캠핑장이 아니라, 실제로 사이트가 어떤 곳은 경사로, 어떤 곳은 나무 수풀로 구분되어 있어서 나름 프라이버시가 보장되기도 했다. 뭐.. 프라이버시는 차치하고라도.. 간만에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니 정말이지 살 것 같았다. 아무리 카라반 안에서 비 새는 걱정 없이 따뜻하게 잘 잔다고 하더라도 캠핑은 캠핑인지라, 계속 바닷바람 맞아가며 식사하고 놀고 그랬던 피로가 쌓였던 것 같은데, 뜨거운 샤워 한방으로 씻겨 내려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럭클 주립공원 (Ruckle Provincial Park https://bcparks.ca/explore/parkpgs/ruckle/) : BC 주립공원 공식 홈페이지에 "걸프 군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 중 하나"라고 당당하게 기술되어 있는 곳.  총 8개의 RV 캠프 사이트 중에 4개가 예약이 가능하고, 20개의 워크인 텐트 사이트 중에 10개가 예약 가능하다는데, 이 사이트들보다 해안을 향해 펼쳐져 있는 사이트 미지정 캠핑장으로 유명하다. 약 50여 텐트가 수용 가능한 넓이의 초원 위 아무 곳에 텐트를 하나 쳐놓고, 가만히 앉아서 계속해서 가지각색으로 바뀌는 하늘과 바다, 그 위로 지나가는 배, 지나가는 고래 등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솔트스프링 섬의 경우 걸프 군도의 다른 섬들에 비해, 상업 구역이나 관광산업이 발전해 있어서 쇼핑이나 외식과 같은 시내 관광을 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또한, 럭클 주립공원 캠핑장 외에도 민영 캠핑장이나 민박 산업도 발달해 있어서, 꼭 캠핑을 하지 않더라도 며칠 동안 쉬고 오기에 알맞은 휴가지라고 할 수 있다.



가까운 시내 : 풀포드, 갠지

광역 밴쿠버로부터 접근성 : 1/5

이동통신 / 데이터 : 없음

프라이버시 : 2/5 (RV 사이트), 1/5 (워크인 사이트)

수세식 화장실 / 샤워실 : 없음

시설 관리 / 순찰 : 1/5

RV 정화조 : 없음

RV 급수 시설 : 없음

캠핑 사이트 크기 : 2/5 (RV 사이트), 원하는 만큼 (워크인 사이트)

나무 우거짐 : 4/5 (RV 사이트), 1/5 (워크인 사이트)

호숫가 / 강변 / 해변 : 있음

햇볕 : 2/5 (RV 사이트), 4/5 (워크인 사이트)





모히나 크릭 캠핑장 (Mowhinna Creek Campground https://mowhinnacreekcampground.com/) : 솔트스프링 섬 갠지 시내로 들어가는 길 근처에 있는 캠핑장으로, 섬을 종단하는 '풀포드-갠지 도로 (FulFord-Gange Road)'을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다가 불현듯 우측에서 튀어나오는 진입로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GPS 안내를 잘 받고 가는 것이 편하다. 전기/ 수도가 제공되는 RV 사이트가 12개, 그리고 10개의 드라이브인 텐트 사이트, 26개의 워크인 텐트 사이트, 2개의 캐빈을 제공하는데, 어느 사이트는 숲 속에, 어느 사이트는 양지바른 곳에 위치해서 (예약이 여유롭다면) 취향에 맞게 고를 수가 있다.

        


가까운 시내 : 갠지

광역 밴쿠버로부터 접근성 : 1/5

이동통신 / 데이터 : 장소에 따라 미미함

프라이버시 : 2/5 (RV 사이트), 3/5 ~ 4/5 (텐트 사이트)

수세식 화장실 / 샤워실 : 있음, 샤워실 유료

시설 관리 / 순찰 : 3/5

RV 정화조 : 없음

RV 급수 시설 : RV 사이트에 있음

캠핑 사이트 크기 : 2/5

나무 우거짐 : 1/5 (RV 사이트), 3/5 ~ 4/5 (텐트 사이트)

호숫가 / 강변 / 해변 : 없음

햇볕 : 4/5 (RV 사이트), 2/5 ~ 4/5 (텐트 사이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