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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선 Nov 24. 2021

가끔은 타협

칠리웍 호수 주립공원

뒤늦은 감이 있지만 백패킹에 대한 용어 정리를 하자면……


‘백패킹 (Backpacking)’의 사전적 의미는 문자 그대로 ‘배낭여행’이다. 그렇다. 커다란 배낭을 등에 메고, 끄라상과 까페오레를 훌쩍거리며, 낮에는 명승지에서 사진을 찍고, 밤에는 싸구려 유스호스텔에 묵는 그런 것 말이다. 다시 말해, ‘백패킹’이란 단어 그 자체에는 사실 어디에도 ‘노숙’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배낭 여행객들이 뉴욕의 박물관이나 뮤지컬 극장으로 놀러 가는 것이 아니라, 주로 요세미티나 그랜드 캐넌 같은 대자연을 느끼러 가다 보니, ‘백패킹’이라는 단어에 자연스럽게 ‘캠핑’의 의미가 포함되게 되었다. 실제로, 미국 국립공원 캠핑 예약 사이트에는 ‘Wilderness (Backpacking) Permit’이라는 섹션이 따로 존재한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따라쟁이로 유명한 캐나다에서도 당연히 ‘백패킹’이라는 단어에 ‘캠핑’의 의미를 부여해 사용한다. 캐나다의 국립공원이나 주립공원 예약 사이트에서는 ‘백패킹 (Backpacking)’이라는 단어보다는 ‘백컨트리 캠핑 (Backcountry - Wilderness Camping)’이라는 표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지만. 마치 캐나다의 공식 도량형이 미터법인데 실생활에서는 모두들 미국식 파운드법을 쓰는 것처럼, 실생활에서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스포츠용품점에서 캠핑 장비를 구매할 때, 모두 ‘백컨트리 캠핑’과 ‘백패킹’이라는 단어를 혼용해서 얘기하는 것이다.


캐나다에서 ‘백컨트리 캠핑 (Backcountry Camping)’이라는 단어를 쓰는 건, 차량으로 짐을 싣고 캠프 사이트 근처까지 이동하는 ‘프런트컨트리 캠핑 (Frontcountry Camping)’ 과 구분해서 사용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백컨트리 캠핑’과 ‘프런트컨트리 캠핑’의 가장 큰 차이는, 캠핑과 취사 장비들을 캠핑장까지 어떤 식으로 운반을 하는 것인가의 차이이며, 결국 아름다운 자연 관광명소에 얼마나 가깝게 다가가서 캠핑을 할 수 있는가의 차이가 된다. 그렇다면, 모든 ‘백컨트리 캠핑’은 ‘백패킹’인가? 캠핑장비들을 깜장 비닐봉다리에 담아 살랑살랑 들고 캠핑 장소까지 가는 게 아니라 배낭에 담아 간다면, 모두 ‘백패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걸 떠나서, 적어도 캠핑에 관한 주제로 얘기를 할 때는, 캐나다에서는 ‘백패킹’과 ‘백컨트리 캠핑’이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프런트컨트리 캠핑’역시, ‘차량 진입이 가능한 캠프 사이트 (Vehicle Accesible Sites)’와 ‘걸어 들어가는 캠프 사이트 - 워크인 사이트 (Walk-in Sites)’로 나눈다. 차를 몰고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에 따라 구분하는 걸 텐데, ‘워크인 사이트’의 경우 캠프 사이트 근처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다음, 캠핑과 취사 장비들을 수레나 손으로 들고 캠프 사이트까지 날라야 하는 반면에, ‘차량 진입 가능 사이트’는 캠프 사이트 안에 차를 주차할 수 있어서, 더 넓고, 더 편리한 캠핑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연하겠지만) ‘워크인 사이트’ 들의 풍경이 더 좋은 경우가 많다.


그리고 BC 주립공원 캠핑을 예약할 때에는 또, ‘백컨트리 예약 (Backcountry Reservation)’과 ‘백컨트리 허가 (Backcountry Permit)’가 따로 구분되어 있다. (아놔.. 참말로.. 여기까지 오면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지만) 최대한 간략하게 말하면, ‘백컨트리 예약’은 따로 텐트를 치도록 지정되어 있는 장소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어서 내가 묵는 사이트는 온전히 나만 사용하게 되고, 그 지정된 장소가 모자라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백컨트리 허가’는 텐트 패드로 지정된 장소가 없는 경우가 많고, 자신이 마음에 드는 장소에 그냥 텐트를 치고 캠핑을 할 수 있는 허가를 의미해서, 캠핑장에 따라서 텐트 패드를 만들어 뒀다고 해도 그 장소가 예약이 된 것이 아니며, 내 텐트 바로 옆에 다른 사람이 또 텐트를 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보통 그렇게 상식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


때문에, 백컨트리 허가라는 건 예약이라는 개념보다는 누가 캠핑을 하는지 인원 파악을 하려는 수단처럼 보인다. 하지만, 하나의 BC 주립공원에서 ‘백컨트리 예약’과 ‘백컨트리 허가’를 혼용하는 경우는 없다. 예를 들자면, ‘가리발디 주립공원’이나 ‘조프리 호수 주립공원’에서는 예약제를, ‘칠리웍 호수 주립공원’이나 ‘골든이어즈 주립공원’에서는 허가제를 시행해서, 예약 등반객과 허가 등반객이 섞이는 경우는 없다. 현재 BC주에서는 4개 주립공원에서 백컨트리 예약제를, 다른 32개 공원에서 백컨트리 허가제를 시행하는데 (https://bcparks.ca/registration/), ‘백컨트리 허가’ 비용은 2021년 현재 1박에 인당 5불이고, ‘백컨트리 예약’ 비용은 인당 10불에 예약비 6불 + 서비스 세금 5% ($0.3)이다. 






2018년 여름을 백패킹으로 불태울 것만 같았던 아내의 계획은, 여름에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 입은 무릎 부상 때문에 안타깝게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찰과상이라고는 하지만 무릎 부위는 생활하다가 은연중에 계속 사용하게 되는 곳이라서 계속 상처가 덧나고 또 덧나는 것을 반복했다. 결국 여름 동안에는 주로 RV 캠핑만 주로 하게 되었는데, 당시 우리랑 같이 캠핑을 다녔던 B 님과 J 님 가족에게는, 처음에는 같이 등산이나 백패킹을 갈 것처럼 약속을 하고서는, “아내가 다리를 다쳐서 저희는 못 가겠어요 (아픈 아내를 두고 제가 어떻게 혼자만 놀러 다니겠어요..)” 하며 발뺌을 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특히 J 님은 나 만큼이나 게으르고, 움직이기 싫어하는 성격이었으나, 아내가 B 님에게 잔뜩 바람을 불어넣는 바람에 억지로 혼자서 등산에 끌려다니게 되었다. 매우 미안한 일이었는데… 죄송합니다. 근데 그때 전 좀 쉬어야 했어요. 흑...


그리고 9월이 되고 아내의 무릎 부상이 어느 정도 아물고 나서, 칠리웍 호수 주립공원 (Chilliwack Lake Provincial Park)으로 트레일러를 끌고 캠핑을 가게 되었다. 칠리웍 호수 주립공원은 칠리웍에서도 한참  들어가야 하는.. 집에서 아무리 빨라도 2시간 정도는 운전을 해야 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여름에 캠핑 예약을 못 해서 어쩔  없이  곳으로 (그것도 샤워 시설도 없는 곳으로) 가게  줄만 알았는데.. 여기에서도 아내는  계획이 있었다.  주립공원에는 180 프런트컨트리 사이트가 5 루프로 나뉘어 있었지만, 바로 근처에 , 백컨트리 퍼밋 사이트들이 있어서, 그곳까지 걸어가면 백컨트리 캠핑을 하지 않더라도  광경은 즐길  있었던 것이다. 아내의 입장에서는, 백패킹을 싫어하는 남편을 배려하는 일종의 타협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 캠핑에는 또, 아내의 블로그 이웃이자 백패킹 전파자였던 L 님도 같이 동반했는데, 스키, 트레일 러닝, 바이크 라이딩 등에 선수급 경력을 가진 만능 스포츠 소녀였던 L 님의 페이스를 맞춰 따라가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던 기억이 난다.


노동절 연휴 주말은, 아니나 다를까. 고속도로에 놀러 가는 차량 행렬이 끊이질 않아서 운전하는 것만 해도 너무 힘들었다. 캠핑 트레일러를 가지고 다니면서부터는, 챙기고 싶어 하는 짐도 늘어나고, 아무래도 트레일러를 차에 연결하는 일도 있고 해서 출발 시간도 예전보다 늦어지게 되었는데, 5시 반쯤 출발했음에도 캠핑장에 도착했을 때쯤에는 이미 9시가 다 되어 있었다. 서둘러 트레일러를 세팅하고, 취사도구를 꺼내서 저녁을 준비하고, 먹고, 마시고, 사는 얘기를 떠들고.. 그러고 나니 이미 자려고 누웠을 때는 이미 1시 (그리고 자기 바로 30분 전까지 계속 먹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엔, 전직 제빵사였던 L 님의 회심의 역작 ‘버터 듬뿍 몬테크리스토 등장했다. 그것도 미리 잘라진 식빵이 아니라, 통식빵을 안을 파내고 슬라이스 햄과 치즈를 채워 넣은  버터에  프라이를  것이어서, 이것이 어떻게 캠핑장에서 가능한 음식인가.. 하며 놀락도 했고, 한편으로는 이번에도 만만치 않게 입이 호사스러운 캠핑이 되겠거니 했다.



그렇게 여유로운 아침 식사를 마치고 11시쯤? 간단한 하이킹을 하자고 해서 카메라를 챙겨 나섰다. 목적지는 우리 캠핑장에서 3km 정도 떨어져 있는 '린드먼 호수 (Lindeman Lake)’. 그때까지만 해도, 그곳이 유명한 백패킹 장소라는 걸 몰랐다. 아니, 알았다고 해도, 만일 접근이 쉬운 곳이라면 왜 프런트컨트리 캠핑장이 아니라 백컨트리 캠핑장으로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만큼 현명하지 못했었든지…


캠핑장에서 포장도로를 따라서 1.2km 정도를 가니 ‘린드먼 호수’ 백컨트리 캠핑 주차장이 나왔다. 그리고 목적지까지는 약 1.7km.. 뭐.. 이 정도면 껌이지.. 했는데, 700m 정도 평지에 가까운 길을 걷고 나니 그 이후 1km 동안은 계속 오르막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오르막이 300m라고 하니, 말하자면 30% 경사의 오르막을 1km 동안 계속 걸은 셈이었다 (어쩐지 하이킹 폴을 챙기더니만..).


게다가 짬을 내어 사진  찍으려고 하면 스포츠 소녀 L 님은 훨훨 날아다니고..  당시에 가지고 다녔던 DSLR 카메라는 소니 제품이어서 오래된 미놀타 렌즈와  맞았는데, 마침 그때 챙긴 3개의 렌즈 모두 금속 케이스 제품이라서 무겁기 그지없었다.. 내가 .. 겁도 없이 DSLR 카메라는 챙겨가지고..  이후로 산행을  때는 그냥 스마트 폰만 가지고 다니게 되었다.


그렇게 헐떡이면서 쫓아가다 보니까 어느새 호수가 보이면서, 주변으로 텐트와 해먹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경력이 많은 백패킹 선수들은 배낭에 그냥 가볍게 해먹이나 모기장, 그리고 침낭 정도만 넣고 다닌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있었는데, 이렇게 텐트 대신 해먹만 사용해서 캠핑하는 건 여기서 처음 보았다. 따로 캠핑장소가 지정된 것이 없고 이렇게 아무데서나 캠핑을 할 수 있는 ‘백컨트리 허가’ 시스템에서는 저렇게 해먹을 가지고 다니는 것도 가볍고 괜찮겠다 싶었다. 물론 모기에 잘 안 물리는 체질이어야겠지만.

아직 늦더위가 있어서인지, 해먹만으로 캠핑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무리 지정된 캠핑 장소가 없다 하더라도 호숫가에 텐트를 치는 건 불법이다. 물론 이렇게 말 안 듣는 사람들도 있지만.



지정된 캠핑 패드가 없다는 건 아무 곳이나 적당한 곳에 텐트를 쳐도 된다는 뜻이었고 (호숫가에서 캠핑하는 건 금지되어 있다),  다시 말해, 하이킹을 하는 사람도 다른 사람들 텐트 옆으로 휙휙 지나다녀도 된다는 뜻이 되었다. 그렇게 텐트촌들을 뚫고 지나가다 보니 옥색의 호수가 나왔다. 아내는 냉큼 신발을 벗고 호수 안으로 들어갔는데, 바로 저 위에서 호숫물을 정수해 식수로 사용하는 걸 본 나로서는, 무좀균이 듬뿍 들어있을 내 발을 호수에 담그기 미안했다. 그냥 시원한 산들바람에 땀을 식히는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땀이 어느 정도 식고 나자, 아내와 L 님은 '그린드롭 호수 (Greendrop Lake)'까지 더 가보고 싶어 했는데, 아무리 더 이상의 오르막이 없다고는 했지만, 산기슭을 따라서 4km 넘게 가야 하는 거리였기 때문에.. 나로서는 매우 회의적인 입장을 표명할 수밖에 없었다. 아... 물론 아내의 무릎 상태를 걱정하는 자상한 남편 스탠스도 잊지 않았다. 결국 내 설득이 먹혔는지, 아니면, 이미 점심시간이 지났던지라 갔다가 오게 되면 무척 배가 고플 것 같아서인지, 모두 선선히 캠핑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칠리웍 호수 주립공원 (Chilliwack Lake Provincial Park  https://bcparks.ca/explore/parkpgs/chilliwack_lk/) : 밴쿠버에서 150km 정도 동쪽에 위치한 주립공원으로 광활한 등산로와 여러 백컨트리 캠핑장으로 유명하다. 고속도로 출구에서 나와서도 칠리웍 강을 따라 1시간 정도 더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데, 180여 개의 프런트컨트리 캠핑 사이트는 칠리웍 호수 근처에 배치되어 있고, 그 북쪽으로 더 걸어 올라가면, ‘린드먼 호수 (Lindeman Lake)’, ‘그린드롭 호수 (Greendrop Lake)’, ‘플로라 호수 (Flora Lake)’, ‘라듐 호수 (Radium lake)’ 등 4개의 작은 호수들과 그 주변의 백패킹 캠핑장소들을 만날 수 있다.


180여개의 프런트컨트리 캠핑장 역시 ‘린드먼 루프 (Lindeman Loop)’, ‘그린드롭 루프(Greendrop Loop)’, ‘페일페이스 루프 (Paleface Loop)’, ‘플로라 루프 (Flora Loop)’, ‘라듐 루프 (Radium Loop) 등, 총 5개 지역으로 구분되는데, 이중 ‘라듐 루프’의 사이트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크고 진입로도 넓어서 RV 캠핑에 적당하다


백패킹을 계획하고 있다면, 반드시 백컨트리 허가를 받아야 한다. 온라인 (https://www.discovercamping.ca/BCCWeb/Memberships/CustomerOverNightMemberships.aspx)을 통해서 하거나, 대부분의 백패킹 캠핑장 입구에서는 아직도 셀프서비스 옵션을 제공하고 있어서, 백패킹 신청서를 작성하고 5불짜리를 동봉해서 신청함에 넣으면 된다.



가까운 시내 : 칠리웍

광역 밴쿠버로부터 접근성 : 2/5

이동통신 / 데이터 : 없음

프라이버시 : 3/5

수세식 화장실 / 샤워실 : 없음

시설 관리 / 순찰 : 1/5

RV 정화조 : 있음

RV 급수 시설 : 있음

캠핑 사이트 크기 : 2/5 ~ 3/5

나무 우거짐 : 3/5

호숫가 / 강변 / 해변 : 있음

햇볕 :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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