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숨은 공로자 시리즈 9편]
우리는 와인을 빚는 자연(테루아), 미생물(효모), 그리고 와인을 지켜낸 인간의 투쟁(금주법)을 만나보았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다룰 공로자는 흙이나 포도나무가 아닌, 단 한 장의 '종이'입니다. 바로 1855년에 만들어진 '보르도 메독 와인 등급(Bordeaux Wine Official Classification of 1855)'입니다.
오늘날에도 와인 한 병에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가격표의 근거가 되고, 전 세계 와인 시장을 움직이는 이 '권위'는 대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놀랍게도 그 시작은 숭고한 와인 평론이 아닌, 지극히 실용적이고 상업적인 목적에서였습니다.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는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의 주도로 개최된 국제 박람회로, 프랑스의 산업과 예술, 문화적 우수성을 세계에 과시하기 위한 목적에서 기획되었습니다. 이 박람회는 5월 15일부터 11월 15일까지 약 6개월간 파리 샹젤리제 공원에서 열렸으며, 총 27개국이 참가하고 5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방문하였습니다.
박람회의 중심에는 산업 궁전(Palais de l’Industrie)이 있었는데, 이는 최신 기술과 제품을 전시하기 위해 새로 지어진 대형 전시장이였고, 또한 예술 전시관에서는 들라크루아, 앵그르 등 당대의 유명 화가들의 작품이 소개되며 예술적 위상을 드높였습니다. 이 박람회는 단순한 전시 행사를 넘어 프랑스를 세계적인 문화·산업 국가로 자리매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특히 이 박람회를 계기로 보르도 와인의 공식 등급이 처음으로 제정되었는데, 이는 오늘날까지도 와인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제도로 남아 있습니다.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는 이후 세계 엑스포(EXPO)의 전신으로 평가되며, 국제박람회기구(BIE)가 설립되기 전까지 세계 각국의 기술과 문화를 교류하는 장으로 기능하였습니다.
때는 1855년,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 3세는 파리에서 열릴 만국 박람회(Exposition Universelle de Paris) 준비에 한창이었습니다. 그는 전 세계에 프랑스의 위대함을 과시하고 싶었고, 그중 핵심은 단연 '와인'이었습니다.
그는 보르도 상공회의소에 "박람회에 출품할 보르도 최고의 와인 목록을 만들라"고 지시합니다. 하지만 수백 개의 샤토(Château, 와이너리) 중 무엇이 최고란 말인가? 박람회는 코앞으로 다가왔고, 모든 와인을 일일이 시음하며 등급을 매길 시간은 없었습니다.
보르도 상공회의소는 이 어려운 임무를 와인 중개상(Courtiers) 조합에게 떠넘깁니다. 매일 시장에서 와인을 거래하며 각 샤토의 명성과 가치를 가장 잘 알던 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중개상들은 불과 2주 만에 목록을 완성합니다. 그들의 기준은 '맛'이나 '품질'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기준은 단 하나, '지난 100년간의 시장 가격'이었습니다.
가장 오랫동안, 가장 비싸게 팔려온 와인이 곧 최고의 와인이라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논리였습니다.
그들은 당시 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1등급부터 5등급까지 총 61개(레드 와인 60, 화이트 와인 1)의 샤토를 줄 세웠습니다.
1등급 (Premiers Crus): 샤토 라피트-로칠드, 샤토 라투르, 샤토 마고, 샤토 오브리옹 (4개)
2등급 (Deuxièmes Crus): 14개
3등급 (Troisièmes Crus): 14개
4등급 (Quatrièmes Crus): 10개
5등급 (Cinquièmes Crus): 18개
이렇게 탄생한 목록은 단지 박람회용 팸플릿에 불과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목록은 지난 170년간 보르도 와인의 '헌법'이자 '신분제'가 되었습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18세기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된 금융 명가로,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가 다섯 아들을 유럽 각지에 파견하여 런던, 파리, 빈, 나폴리 등 주요 금융 중심지에 은행을 세움으로써 세계 최초의 국제 금융 네트워크를 구축하였습니다. 이들은 나폴레옹 전쟁과 산업혁명 시기에 각국 정부와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며 국제금융의 황제로 불릴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단순히 와인을 ‘투자 상품’으로 본 것이 아니라, 가문의 권위와 문화적 위상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와인 사업에 뛰어들었고, 당시 보르도 와인은 유럽 상류층과 영국 귀족 사회에서 최고의 사치품으로 여겨졌고, 금융 명가가 와인을 소유한다는 것은 곧 사회적 지위를 상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로스차일드 가문은 보르도(Bordeaux) 지역의 메독(Médoc) 지구에 위치한 두 개의 샤토를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1853년 영국 지파의 나다니엘 드 로스차일드가 샤토 무통을 인수하여 ‘샤토 무통 로칠드’로 이름을 바꾸었고, 1868년 프랑스 지파의 제임스 드 로스차일드가 샤토 라피트를 인수하여 ‘샤토 라피트 로칠드’로 자리매김하였다. 라피트는 곧바로 1등급에 포함되었으나, 무통은 2등급에 머물렀다. 이 불균형은 이후 수십 년간 로스차일드 가문 내부에서도 중요한 화제가 되었으며, 결국 1973년 샤토 무통 로스차일드가 유일하게 등급을 상향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이어졌다.
오늘날에도 로스차일드 가문은 Rothschild & Co라는 이름으로 글로벌 금융 그룹을 운영하며, 와인과 금융 두 영역에서 여전히 세계적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저는 금융권출신으로 영국식 발음인 로스차일드라고 부르는데 프랑스식 발음은 로칠드라고 하네요. 다음 글 COPILOT에게 받은 답변입니다. "라피트 로칠드 와인의 실제 라벨에는 “Château Lafite Rothschild”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 표기는 프랑스어식 발음으로 읽히며, 와인 업계에서는 보통 “샤토 라피트 로칠드”라고 부릅니다.
영어권에서는 “로스차일드(Rothschild)”라고 발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프랑스어권에서는 “로칠드(Roch-ild)”에 가까운 발음을 사용합니다.
한국 와인 시장에서는 프랑스식 발음을 따라 “라피트 로칠드”라고 표기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즉, 라벨에는 영어식 철자가 그대로 쓰이지만, 실제 발음은 프랑스식으로 “로칠드”에 가깝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사진) Chateau Mouton Rothschild Artists Labels | Christie's
이 등급이 얼마나 철옹성 같았는지는 단 하나의 예외 사례가 증명합니다. 1855년 당시, 뛰어난 품질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살짝 모자라 2등급으로 분류되었던 '샤토 무통 로칠드(Château Mouton Rothschild)'가 있었습니다.
소유주였던 필립 드 로칠드 남작은 이를 평생의 수치로 여겼습니다. 그는 수십 년간 품질을 혁신하고, 피카소, 샤갈 등 당대 최고의 화가들에게 라벨을 맡기는 예술 마케팅을 펼치며 끊임없이 1등급 승격을 로비했습니다.
마침내 1973년, 프랑스 농업부 장관의 승인으로 '샤토 무통 로칠드'는 2등급에서 1등급으로 승격됩니다. 1855년 이래 최초이자 유일한 등급 변경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역설적으로 1등급의 권위가 한 나라의 장관이 움직여야 할 만큼 강력하다는 것을, 그리고 이 신분제를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전 세계에 각인시켰습니다.
어떻게 170년 전 상인들이 만든 '가격표'가 오늘날까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질까요?
자기 실현적 예언: 등급이 발표되자, 1등급 샤토들은 '최고'라는 명성을 얻었습니다. 이 명성은 더 높은 가격을 불렀고, 샤토는 그 돈으로 최고의 포도밭 관리, 최신 설비, 최고의 와인메이커에 투자할 수 있었습니다. 즉, '1등급이라 비싼 것'이 아니라, '1등급이 되었기에 최고를 유지할 돈이 생긴 것'입니다. 등급이 스스로의 권위를 증명해내는 '자기 실현적 예언'이 된 것입니다.
명확한 브랜드 가치: 복잡한 보르도 와인 세계에서 '1등급'이라는 딱지는 소비자에게 가장 확실하고 단순한 품질 보증수표였습니다. 이 목록은 그 자체로 가장 강력한 마케팅 도구가 되었습니다.
시장의 안정성: 와인 투자자들과 수집가들은 이 '변하지 않는' 등급을 사랑했습니다. 이것은 와인의 가치를 매기는 안정적인 기준점, 즉 '금본위제'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1855년 보르도 등급은 와인의 맛을 결정하는 테루아나 효모와는 다릅니다. 그것은 와인의 '가치'와 '운명'을 결정한 보이지 않는 공로자(혹은 족쇄)입니다.
나폴레옹 3세의 과시욕과 중개상들의 실용주의가 만나 탄생한 이 종이 한 장은, 170년이 지난 지금 '보르도'라는 와인 제국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기둥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목록이 아니라, 스스로 권력이 된 '보이지 않는 왕관'인 것입니다.